무엇을 위한 캠페인인가 > 문화


무엇을 위한 캠페인인가

조선일보, 중앙일보 이웃돕기 캠페인 속, 숨겨진 이데올로기 찾기

본문

파이가 있다. 파이는 크던 작던 나눠먹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작은 파이를 나눠먹으면 아무도 배부르지 않으니 큰 파이를 만들 때까지 나눠주지 않겠다고 주장한다. 너무 배가 고프니 지금 그대로의 파이라도 조금씩 나누어달라고 하면 그는 그렇게 나눠먹다 보면 모두 굶어 죽는다고 협박한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파이를 못 먹어 “배고파”라고 벽에다 쓴 아이를 보여주면서 그를 위해 빵 부스러기라도 모아보자 모금을 시작했다. 이럴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슨 꿍꿍이가 있는 입에 발린 소리’일까 하는 의심이 앞서지만 그래도 그의 변화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십시일반 주머니를 열 것이다. 그러면서 이 사람이 이제부터 파이를 나눠주자고 말하겠지 기대하게 될 것이다.


이웃돕기 캠페인,
‘기업하기 좋은 사회, 가진 자가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데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실제 이와 같은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다. 빈곤층의 문제를 부각시키면서 그들을 돕자는 『조선일보』의 <우리 이웃>캠페인과 『중앙일보』의 <We start운동>이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평소 ‘분배’라는 말만 꺼내면 ‘포퓰리즘’이라는 재갈을 물려 입을 막아 버리던 신문이 우리 사회의 빈곤 문제에 대해 ‘절대 공감’을 표명하고 나섰다.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말하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속에서는 경제논리가 우선이라고 모르쇠로 일관하던 신문이 갑자기 장애우, 외국인 노동자 등 소수자의 인권 문제가 너무 심각하다고 규탄한다.
사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이후 우리 사회의 중산층 비율이 줄어들고 빈부격차와 불평등이 심화됨에 따라 신용불량자, 비정규직 노동자, 건강보험료 체납자 등 이른바 ‘신 빈곤층’의 생겨났다. 하루 3명 꼴로 생계형 자살을 한다는 경찰청의 통계가 나올 만큼 빈곤 문제는 위험수위에 와 있다. 따라서 보수 언론이 빈민·장애우·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 교육권, 건강권 등 다양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는 것은 뒤늦더라도 반가운 일이다. 게다가 두 신문의 사회적 영향력을 생각하면 그 공익적 효과에 대한 기대치도 매우 크다. 하지만 강력한 의제설정 능력을 가지고 있는 언론인만큼 그들이 펼치는 캠페인이 생색내기에 그치지는 않는지, 빈민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캠페인 현황과 씁쓸함
『조선일보』는 2004년 1월 1일부터 달동네, 탄광촌, 외국인 노동자, 난치병 어린이, 미아, 장애우, 결식아동, 교통사고 유자녀, 보훈 가족 등 빈곤층의 생활상을 알리는 <우리이웃> 기획 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또‘우리이웃 네트워크’를 출범시켜(2004년 2월 6일 출범) 지하방 환풍기 달아주기, 용천 참사 성금 모금, 공부방 업그레이드 운동, 빈민 건강 돌보기, 헌혈운동, 기부 활성화 유도, 자원봉사 유도 등 다양한 캠페인도 진행하고 있다. 이 신문은 캠페인에 대한 홍보보다 궁핍한 빈민의 실상을 알리는 기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처럼 눈물샘을 자극하는 기사는 기업이나 개인의 주머니를 여는 데는 효과적일지 모르지만, 빈민을 구호와 동정이나 받기를 바라는 수혜자로 전락시킬 우려가 있다. 또한 제목이나 사진, 내용도 모두 지나치게 극단적인 경우만을 부각시킴으로써 자칫 그들의 인격권을 침해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좀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빈곤층은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동등하게 권리를 누려야 하는 주체이지 동정이나 수혜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빈곤’은 단발적 관심 끌기 사안이 아니다
『중앙일보』는 『조선』보다 뒤늦은 5월 3일에 빈곤층 아이들의 ‘가난, 대물림을 끊어주자’는 ‘We Start 운동본부’를 발족시켰다. 『중앙』은 특별히 빈곤 아동의 건강과 교육, 인권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운영위원회 등의 탄탄한 조직을 꾸리고 사업을 진행한다는 특징이 있다. 기사는 『조선』과 큰 차이가 없이 빈곤 아동의 현황, 참가단체의 활동 내용, 자원봉사 및 기부 활성화 홍보 등이 주를 이루었다. 그런데 『중앙일보』의 6개월 분 온라인 영어 학습권 선물이나 무료과외 실시 등은 빈곤층 자녀의 교육권 확보를 위해 가장 바람직한 프로그램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빈민층 자녀가 평등한 교육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 볼 때, 일정 기간동안 무료 사교육을 시켜주자는 것은 단발적 수혜이며 ‘구호물품이 오는 대로 무조건 나눠주기’식의 전시행정이 아닌가 생각된다. 교육문제는 단기간에 효과를 내기 힘들다는 점에서 특히 긴 안목을 가지고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따라서 소수의 ‘공부방 업그레이드’보다는 학교에 도서관과 보건실처럼 방과후 공부방이 정착되도록 지원하고 자원봉사 캠페인을 하는 등 운동의 혜택이 모든 지역에 안정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한다. 또한 아동문제에만 초점을 맞춘 점은 돋보이나, 빈곤은 가정과 사회에서부터 발생하는 종합적인 문제라는 점을 간과하고 아동의 문제에 대해 대중적인 처방만 쫓아가는 사업이 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

『조선』·『중앙』, 한 입으로 두말하지 말길
이런 저런 우려의 말은 나오지만 연말연시의 의례적· 일회성 행사와 다르게 지속적으로 어려운 이웃을 조망하고 돕는 캠페인이 진행되는 것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따라서 캠페인이 가장 효율적으로 빈민문제 해결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걱정하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지도 모른다. 두 신문사가 초심을 잃지 않고 차별화 된 사업을 꾸준하게 진행한다면 기부나 봉사가 정착되지 않은 우리 문화에 일대 혁명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한겨레』가 나눔을 실천하는 풀뿌리 단체 지원을 주목적으로 하는 <나눔으로 아름다운 세상> 캠페인을 5월 18일부터 펼치고 있어서 이러한 움직임에 가속도를 붙여줄 것이라 본다.
그러나 『조선』·『중앙』이 한 입으로 두 말하는 것은 태도를 보이는 것은 감시하고 경계해야 할 점이다. 복지는 자발적인 기부와 자원봉사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경제, 국방, 교육 등에 밀려 항상 후 순위에 있는 복지 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언론이 앞장서 미흡한 복지 문제를 지적하면서 개선을 요구하고 더 나아가 재정 확보를 위한 다양한 검토에 긍정적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기간에도 ‘선 성장 후 분배’만을 외치며 “경제 성장이 없으면 분배도 없다”, “경제성장이 이루어지기 전에 시행하는 복지제도는 포퓰리즘이다”라는 태도를 확실히 하고 있다.

캠페인 이면에 숨은 빈부격차 갈등 부추김
평등주의는 아편, 분배는 하향평준화?

이러한 『조선』의 주장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예를 들기도 바쁠 정도이다. 『조선일보』 5월 4일자 사설 <‘가난은 제도 탓’에 깔린 위험신호>에서는 ‘국민 이념성향 조사결과’를 토대로 “‘가난은 제도 탓, 나라 탓’이란 정서의 바닥에는 ‘내 이웃이 잘살기 때문에 내가 못산다’는 심리가 깔리게 된다. ‘있는 자들로부터 빼앗아 없는 자에게 나눠주겠다’는 포퓰리즘 정치의 토양이 바로 이것이다.”라고 분배에 대한 경계심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2월 25일자 사설 <불황과 포퓰리즘에 멍든 서민의 1년 >에서도 “입만 열면 분배와 복지를 논(論)해온 노무현 정권 출범 1년도 채 되지 않아 왜 서민들은 생계의 낭떠러지에서 굴러 떨어지고, 왜 계층 간 소득격차는 더 벌어졌는가.” 라고 비판하면서 “분배와 복지정책으로 이들을 돌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경제규모를 키워 고용을 늘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한다. 특히 5월 10일자 사설 <평등주의 ‘아편’ 끊어야 나라가 산다>에서는 현 경제상황에 대한 조선일보·갤럽의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국민의 경제관이 친(親)사회주의적, 친분배적, 친평등주의적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라고 판단하였다. 이 사설은 평등주의를 ‘아편’으로, 분배를 ‘대중에 정서에 영합해 하향 평준화를 양상하는 길’로 일축하고 그럴 경우 “기업과 재산가는 해외로 빠져나가고, 거리에 실업자가 넘치는 하향적(下向的) 평준화라는 국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처럼 빈민 문제 자체에 대해서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극단적인 모습을 그려내면서 한편으로는 복지와 인권의 제도적인 해결을 말하면 ‘아편’이니 ‘포퓰리즘’이니 하면서 ‘족쇄’부터 채우려 드는 태도는 너무 이중적이다. 복지제도는 경제의 성장여부와 상관없이 꾸준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부유세에 대해서 찬성하는 국민에게 ‘평등주의 아편’을 끊으라고 경고나 하려 든다면 『조선』의 캠페인은 배고픈 사람들에게 가끔씩 기부도 하고 도움도 줄 테니 조용히 하라는 입막음용 요식 행위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분배? 좋아, 그래도 결론은 선(先)경제성장
『중앙일보』도 조선의 이러한 논조와 거의 맥을 같이 하고 있다.  4월 21일자 사설 <‘반(反)시장주의’ 걱정부터 없어져야>에서 “경제개혁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나눔과 배려를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우선순위다. 우리 경제현실에서 무엇을 먼저 해나가는 것이 나라 전체에 유익하냐의 문제다.”라면서 정부와 집권여당이 “적극적으로 시장주의나 친(親)기업주의적 원칙을 강조해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빈곤은 사회문제, 빈민은 대상이 아니다
『조선일보』는 현재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분배에 대한 절실한 욕구를 “이 정권 출범 이후 정치권과 친정부 미디어가 집요하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나누고, ‘배운 자와 못 배운 자’를 갈라 세우면서 이런(빈부) 격차와 갈등을 선거전략으로 이용하고 확대 재생산해온 결과가 더해진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5월 10일자 사설 <평등주의 ‘아편’ 끊어야 나라가 산다>) 그러나 그들이 ‘친정부 미디어’라고 지칭한 어떤 미디어도 『조선일보』 <우리 이웃> 캠페인만큼 ‘못 가진 자’의 현실을 상세하게 그려내지 못했다. 그러나 정부와 친정부 미디어가 ‘빈부 격차와 갈등’을 선거전략으로 이용했다고 비판받아야 한다면, 그것을 ‘기업하지 좋은 사회, 가진 자가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데 이용하는 태도 역시 비판받아야 한다.
분명한 것은 ‘빈부 격차와 갈등’과 사회적 약자의 고통은 실제로 매우 심각하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외국인 노동자 인권침해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는 제도적 문제점은 외면한 채, 그들의 가난과 건강을 걱정해주는 캠페인은 되지 않아야 한다. 상처를 클로즈업하여 눈물 흘리게 하고 반창고 값이나 내라는 식의 캠페인이 아니라, 국민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공감대를 형성하여 제도적 개선까지 끌어가는 견인차 역할을 해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글 김언경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주부모니터 교육팀장)


 

작성자김언경  webmaster@cowalknews.co.kr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함께걸음 과월호 모아보기
함께걸음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8672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노태호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