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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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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둘러싸인 남쪽 작은 도시에 집을 나가버린 아버지도 정신지체 장애우, 엄마도 정신지체 장애우, 초등학교 3학년과 5학년에 다니는 두 딸도 모두 정신지체 장애우인 보기 드문 장애우 가족이 살고 있었어요.
도시는 주민들 대다수가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거든요. 그래서 도둑질도 없고, 사람들이 서로 욕을 하지도 않았고, 싸우는 일도 별로 없는, 평화가 강물처럼 넘쳐흐르는 작은 도시였어요. 그런데 이건 비밀인데요. 글쎄 이 도시에서 장애우 가족을 둘러싸고 끔찍한 일이 벌어졌답니다.  
산의 나무들이 울긋불긋한 색깔으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 가을의 어느 날 이었어요. 도시의 안녕을 책임지고 있는 검사 아저씨가 있었거든요. 이 아저씨가 화가 아주 많이 났어요. 부하를 부르더니 사람들이 선량하다고 믿고 있는 주민 네 명을 지목해 붙잡아 오라고 시키는 거였어요. 검사 아저씨가 붙잡아 오라고 지목한 사람은 도시의 외곽 마을에서 가난하게 사는 남자 네 명이었어요. 64세 할아버지, 54세 아저씨, 42세 아저씨, 그리고 26세 청년이었는데 사람들은 이 남자들에게 도둑질도 당하지 않았고, 남자들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본 적도 단 한 번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왜 남자들이 굴비처럼 줄줄이 엮여져 감옥에 가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어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남자들이 저지른 죄를 알 수 없었던 주민들은, 검사 아저씨가 밤새 마누라한테 바가지를 긁혀서 엉뚱한데 화풀이를 하는 거다. 아니면 승진을 앞두고 더 높은 곳에서 실적을 추궁 당해 별일도 아닌데 무리해서 사람을 잡아 가두는 거다. 격론 끝에 둘 중 하나가 틀림없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그래서 밥은 굶어도 불의를 절대 용납하지 못하는 주민들은 검찰청에 몰려가, 왜 선량한 시민을 잡아다가 가두냐, 월권 행위 아니냐, 무리한 강압수사 자행하는 검사는 각성하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시위를 벌였어요.
당연히 난처해진 것은 검사 아저씨였어요. 왜 남자 네 명을 붙잡아 콩밥을 먹여야 하는지 그 이유를 주민들을 상대로 직접 설명해야 했거든요. 이유를 말하지 않으면 밤에 집으로 가는 길에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르는 돌팔매질을 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신변이 걱정됐던 검사 아저씨는 내키지 않았지만 왜 시골 마을에 가면 그거 있잖아요. 삑 하는 소음에 이어 주민 여러분 어쩌고 하는 확성기, 그 확성기 마이크를 들고 작은 도시에 평지풍파를 일으킨 사연을 얘기하기 시작했어요.     
“험 험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정신지체 장애를 가지고 있는 가족입니다. 우리가 돌봐야할 그들을 장애 때문에 사리분별이 미약한 점을 이용하여 그들과 평소부터 잘 알고있던 주위 사람들이 돈을 주고 성적 만족을 취한 사건으로 문명사회에서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사건입니다.
저는 정신지체 장애우의 인권을 보호하고 나이 어린 초등학교 여학생들을 상대로 돈을 주고 성을 사는 행위를 엄벌함으로써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고뇌에 찬 결단 끝에 가해자들을 구속했습니다.
현재 가해자들 중 하 아무개와 장 아무개는 성폭행 사실을 인정하고 있고, 구 아무개와 김 아무개는 성폭행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피해자 집에 간 적은 있는데, 하지는 않았다고 발뺌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가해자가 인정하지 않으면 혐의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운 게 아니냐는 얘기도 있지만 수사 결과 가해자 중 구 아무개는 아이들 엄마와 공공근로를 같이 했습니다. 공공근로반장의 신분을 이용해 아이들 엄마와 성행위를 하다가 아이들도 건드린 것으로 결론 났습니다.
그리고 악질은 김 아무개인데 이 작자는 강제로 아이들하고 성행위를 했습니다. 잠자는 아이들을 강제로 덮친 것입니다. 물론 본인들은 부인하지만 수사 결과 속속 혐의사실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에, 이번 사건이 백일하에 드러나 경위를 설명 드리면, 제보는 없었고, 한 달 전부터 소문이 돌았습니다. 정신지체 아이들을 상대로 성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제가 수사에 착수한 것입니다. 이번 사건을 수사하면서 본인이 무엇보다 마음 아팠던 것은 피해자 가정이 누가 돌봐주는 사람도 없고, 사실상 버려진 상태에 있었던 가정이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말씀은 드리려 하지 않았지만 내친김에 말씀드리면 수사를 진행하다보니 성폭행 외에도 이 불쌍한 가족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 사람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 엄마 명의로 신용카드를 발급 받아서 사용하고 다닌 주민도 있는데, 여기서 누구라고 거명하진 않겠지만 그 사람 알아서 자수하세요…”
검사 아저씨의 해명이 확성기를 타고 도시로 퍼져나가자 도시가 발칵 뒤집어졌어요. 성폭행 피해자가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 그것도 일가족이라는데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지요.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이번에는 왜 네 명의 남자가 일가족을 성폭행 했는지 그 이유가 몹시 궁금했어요. 이럴 때 재빠르게 나서는 사람이 있죠. 바로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 도시에서 발행되고 있는 시민의 신문 기자 김 아무개가 검사 아저씨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과속을 해서 검찰청을 찾아갔어요. 그런 다음 검사 아저씨를 졸라 이번 사건에 대한 결정적인 증언을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모 초등학교 특수학급 교사인 정 아무개 씨에게 들었다는 고급 정보를 캐내는데 성공했어요.
다음날 도시에서 발행되는 유일한 신문인 시민의 신문에는 ‘성폭행 사건의 진실을 말한다’라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은 인터뷰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어요.  
인터뷰는 ‘일가족 성폭행 사건이 벌어지기까지에는 어떤 내막이 있는 것일까, 기자는 모 초등학교를 찾아가 정 교사를 만났다. 그는 아이들에게서 성폭행 사실을 최초로 전해들은 당사자고 또 피해자 가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그를 통해 이번 사건의 내막에 생생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는 내용으로 시작하고 있었지요.     
 
- 아이들 장애 정도는.
“아이큐 68에서 74 정도다. 경계급이라고 보면 된다.”
- 일가족이 모두 정신지체인이라는 게 이해가 안 가는데.
“내가 봤을 때 아이들 아버지가 정신지체인이 된 것은 교육을 못 받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선천적으로 정신지체인 것 같고, 엄마는 고아원에서 큰 여성이고, 아버지는 집이 가난하니까 학교를 못 간 것 같다. 혼자 살다가 고아원에 들어가서 아이 엄마를 만나 결혼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아이 아버지는 한동안 읍사무소에서 청소원으로 일했다. 그러다 바람나가지고 집을 나가 버렸다. 가정이 복잡하다.”
- 재산은 없나.
“아무 것도 없다. 뭔 재산이 있겠나”
- 아이들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은 언제 알게 됐나.
“아이들이 작년에 얘기해서 알게 됐다. 사실은 그전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아이들을 상대로 간접적으로 성교육을 시켰다. 그러다가 아이들 얘기를 듣고 엄마를 불러서 아이들이 성폭행 당한 사실을 알고 있냐고 물어 봤는데 알고는 있었는데 분별할 능력이 없는 것 같았다. 정상적인 엄마라면 충격 받고 흥분하며 난리쳤을텐데 그냥 이 놈의 가시내가 그런 짓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계속 그런다. 이 말만 하더라.”
- 아이들 엄마의 정신지체가 어느 정도인가.
“아이들 수준이다. 작년 일 년 동안 엄마도 데려다 가르쳤다. 그랬는데 아이들 둘 보다 공부를 더 못했다. 지능이 아이들 수준 정도 된다고 보면 된다.”
- 아버지는 어떤가.
“아이들 아버지가 집을 나가기 전 청소원으로 일했는데, 정신지체인들은 보편적으로 보면 군것질이 심해가지고, 경제적인 능력도 없지만 경제적인 관념도 없는 것 같다. 청소원으로 일해서 생활보장은 됐는데 월급을 타면 이틀 내에 다 써버리더라. 부부가 인형 뽑기를 하는데, 저기 인형 좀 봐라. 인형이 우리 교실에 세 보따리나 있다. 모두 부부가 갖다 준 것이다.
왜 이런 짓을 하냐고 물으면 심심하니까 한다고 대답한다. 결국 부모는 아이들을 돌볼 능력이 없고 주위에 누가 챙겨줄 사람이 없다보니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것 같다.”
- 아이들이 뭐라고 하던가,
“아이들이 돈이 있을 리가 없는데 과자를 사먹길래 물어보니까, 아저씨가 사줬어요, 아저씨가 돈 줬어요. 그러더라. 예쁜 구석이라곤 요만큼도 없는 아이들에게 누가 돈을 주겠나, 아이들에게 친절을 베푼다는 것은 뭔가 조건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 꼬치꼬치 캐물으니까 처음에는 대답을 안 했다. 그래서 아저씨들 따라가면 안 된다고 계속 교육을 시켰다. 그러던 중 올해 아이들이 얘기를 하더라. 자기가 했다는 얘기는 안 하고 큰 아이가 동생이 뭣했대요.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자매가 성폭행 당한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됐다.”
- 구체적으로 어떻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얘기인지.
“아이들이 성폭행을 당한 계기는 동네 아저씨들이 집에 와서 돈을 주고 엄마와 성행위를 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저씨들과 하는 것을 아이들이 봤다. 아이들이 보는데서 그 짓을 해서 아이들이 배운 것 같다. 큰 아이한테 물어봤더니 지금 5학년인데 1학년 때부터 했다고 하더라.”
- 그 동안 몇 차례나 성폭행을 당했다고 하던가.
“횟수는 알 수 없다. 아이들은 숫자도 제대로 세지 못한다. 그런 아이들한테 몇 번 했냐고 물어보면 뭘 알겠나. 한 두 번 당했다면 모르겠지만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당했을텐데……”
- 혹시 임신하지는 않았나.
“이제 5학년이다. 아직 아기다. 체구도 작아서 5학년 중에서도 제일 앞줄에 선다.”
- 결국 어른들이 나쁘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엄마와 성행위를 하러 왔다가 엄마가 없을 때 아이들한테 그 짓을 한 것 같다. 누가 돌봐주는 사람도 없고, 만약 아이들 가족을 보호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어른들이 성폭행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정신지체인들은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 농촌에는 아이들을 보호해 줄 곳이 없다. 이대로 놔두면 아이들은 또 어른들에게 성폭행을 당할 것이다.”

사람들은 인터뷰 기사를 읽고 다양한 반응을 보였어요. 어떤 사람은 혀를 끌끌 차며, “가난이 죄여, 가난이 원수지, 집이 번듯했으면 성폭행을 당하지 않았을텐데 가난하니까 아이들이 몇 푼 돈에 당한 거잖아…”라며 한숨을 토해냈고, 어떤 사람은 “이 기회에 똥도 오줌도 못 가리는 남자들 거시기를 싹둑 잘라버려야 돼. 아니 어디 그 짓을 할 데가 없어 아버지도 없는 불쌍한 아이들을 상대로 그 짓을 하냐구, 짐승보다 못한 인간들이지…”라고 분노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것뿐이었어요. 자기 일이 아니니까, 자기가 당한 일이 아니니까 사람들은 빠르게 그 사건을 뇌리에서 지워갔어요. 결국 피해자만 불쌍하게 된 거죠.
이 사건은 누가 뭐래도 빈곤이 어떻게 한 가정을 파괴시키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읽힐 수 있는 사건이었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잊으면 안 되는데,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가슴에 깊이 묻어두고 대책을 마련해줘야 했는데, 사람들은 자기 일이 아니니까 나는 모른다고 외면했어요.
그렇지만 생각해 보세요. 특히 아이들이 성폭행을 당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한 엄마의 성을 파는 행위는, 가장인 아빠가 가출하고 난 후 혼자서 두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벌어졌잖아요. 말하자면 성폭행 가해자가 던져주는 몇 푼의 돈이 이 가족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던 거지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엄마가 장애우였다는 거예요. 자기 방어 능력이 없는 장애우가 일제 시대 정신대보다 더 심한 농락을 당했는데 이 사건을 어떻게 쉽게 잊을 수 있는 건가요?
훗날 어렵게 정신지체 장애를 갖고 있는 엄마가 입을 열었어요. 엄마는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그래서 도시를 떠나 자신이 자란 고아원에 가서 꼭꼭 숨어살고 싶다고 울면서 말했어요.
“저는 주로 집에서 성폭행을 당했어요. 한 번 할 때마다 남자들이 만 원도 주고, 오천 원도 주고 그랬어요. 많이 당했죠. 여러 번 당했어요. 내가 성폭행을 당한 것은 우리 집 아저씨가 없어서 당한 것 같아요. 내가 부엌에서 일하고 있으면 남자들이 와서 애기 아빠 있냐고 물어봐요. 그래서 없어요. 그러면 들어와서 돈줄께 가만히 있어 그러면서 그 짓을 했어요. 그 짓을 하고 난 후 남자들이 쥐어주는 몇 푼 돈으로 가게 가서 쌀을 사고 연탄을 샀어요.
그전에는 돈을 빌려서 먹고 살았어요. 나라에서 배급 나오기 전에 돈이 떨어져서 쌀이 없으면 밥을 먹을 수 없으니까, 이웃집에 사정해서 돈을 빌려서 쌀을 조금 사고 배급 나오면 또 갚고, 그렇게 살았어요.
나라에 장애우 등록을 안 한거는요. 동사무소에서 등록하려면 아이들 아빠를 데리고 오라고 그러는데 아이들 아빠가 집을 나가고 없어서 못했어요. 내가 남자들과 그 짓을 해서 돈을 버는 걸 물론 아이들이 알고 있죠. 큰딸이 본 적이 있어요. 구 아무개와 방에서 그 짓을 하고 있는데 딸이 봤어요. 그 사람은 돼지고기도 갖다주고 쌀도 갖다주면서 친절하게 대해줘서 알게 된 사람이에요.
 아이들이 성폭행을 당한 것은 잘 몰랐어요. 내가 알았으면 남자들을 가만두지 않았을 거예요. 이런 말하면 집안 창피지만 아이들이 학교 갔다오면 가방 던져놓고 공부는 잘 안 하거든요. 밖으로 쏘다니는데 그런 아이들을 남자들이 자기 집으로 불렀나봐요. 맛있는 것도 사주고 돈도 준다고 그러니까, 얼른 따라간 거죠. 나는 돈이 없어서 아이들 과자도 못 사주거든요.
우리 아랫집에 하 아무개라고 예순 넘은 할아버지가 살고 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할아버지에게 나도 당했는데 큰딸도 당하고 작은딸도 당했어요. 온 식구가 성폭행을 당한 거죠. 나는 괜찮지만 우리 가시내들 둘 다 성폭행을 하도 많이 당해서 항문이 빨개졌어요. 그렇지만 병원에는 돈이 없어서 한 번도 데리고 가보지 못했어요.
이렇게 사는 게 너무 힘들고 이 도시가 지긋지긋해요. 아이들하고 내가 자란 고아원에 가고 싶어요. 어릴 때부터 자란 곳인데 거기 가면 밥은 먹여주니까, 그 짓을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으니까, 거기 가서 살고 싶어요…”
엄마 곁에는 유난히 눈동자가 까만 미화가 서 있었어요. 미화는 12살이거든요. 엄마가 우니까 미화가 화가 났나봐요. 미화는 “아저씨들 다 나빠!” 그러더니 시키지도 않았는데 흥분해서 남자들에게 성폭행 당한 사실을 털어놓기 시작했어요.
“아저씨들이 막 했어. 바지 벗기고 막 했어. 맨날 맨날 막 했어. 아저씨들이 과자 사줄게 돈  줄게 그러면서 집으로 불렀어. 그러면 동생하고 같이 갔어. 아저씨들이 동생이 보는 데서도 바지 벗기고 막 했어. 그리고 노는 날에는 아저씨들이 부르지 않고 집에 찾아와서 막 했어. 엄마가 잘 때 막 했어. 아팠지만 참았어. 끝나면 아저씨들이 천 원도 주고 오백 원도 주고 그러니까, 그 돈으로 과자 사먹을 수 있으니까 아파도 참았어.”
그런데 도시에는 어렵게 사는 사람을 도와주라고 나라에서 임명한 사회복지사가 있었어요. 그러면 미화네 가족이 이 지경이 되도록 사회복지사는 뭘 하고 있었던 걸까요?
사실 사건이 알려지게 되면서 제일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한 건 누구도 아닌 바로 사회복지사 아저씨였어요. 사람들이 사회복지사가 할 일을 제대로 안 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비난을 퍼부었으니까요.
그렇지만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사회복지사들은 격무에 시달리고 있어요. 돌볼 가정은 많은데 인원은 부족해, 세세하게 어려운 가정을 챙길 수 없는 거죠. 그러니까 사회복지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거죠. 내친김에 사회복지사 아저씨 말도 들어보세요.
“평소 저소득층 가정에 생계비를 지급하는 일을 주로 하고, 3개월에 한번씩 집을 방문해서 조사를 실시합니다. 솔직히 아이들이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것은 짐작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가정은 제가 헌 옷 같은 것도 챙겨주고 무척 신경을 많이 쓴 가정입니다.  하지만 제가 신경을 쓰면 뭐합니까, 부모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데, 부모의 무관심 때문에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제 업무가 많다 보니 사실상 개별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챙길 수는 없다는 겁니다. 내가 혼자서 저소득층 가정 1016세대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최소한 200 가구 당 한 명씩 사회복지사가 있어야 하는데, 혼자서 1000세대를 넘게 담당하고 있습니다. 여기다가 위에서 무슨 교육이라도 받으라는 연락이 오면 사실상 업무 마비상태를 겪는 거죠. 평소에 제가 밤 10시까지 야근하고 퇴근합니다. 그래도 역부족입니다.”
그 후 미화네 가족은 어떻게 됐냐구요?
지금도 그 도시에서 살고 있다고 하네요. 여전히 성폭행을 당하는지 안 당하는지는 확인해보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평화가 강물처럼 넘치는 도시니까 더 이상 남자들이 아이들을 건드리지는 않겠죠. 사람을 믿을 수밖에요. 사람을 믿어야죠. 왜냐하면 미화네 가족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안 그런가요?

글 이태곤 기자   


 

작성자이태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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