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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좁쌀 한 알 장일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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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성현/글씨 그림 장일순/ 펴낸 곳 도솔출판사/가격 9,800원

 

 

문 열고 아래로 흐르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이 떠나가신지 어느덧 10년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아련한 기억으로만 남게되고 서서히 잊혀지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라 하건만 선생님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사무치게 그리워지니 까닭 모를 일입니다. 선생님과 늘 곁에서 함께 했던 여러 어른들은 세월의 깊은 주름과 듬성듬성한 흰머리를 하고서도 여전히 술한잔 나누시다 선생님 이야기를 할 때면 눈시울을 붉히시곤 합니다. 아마도 당신들 첫사랑의 가슴 아픈 기억조차 그토록 애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선생님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10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선생님을 이야기하는 것은 개개인의 작은 깨달음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자식을 낳아 보아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고 하지 않습니까. 시간이 흐르고 이런 저런 일들을 겪어내면서 문득 문득 선생님의 마음을 느끼는 뭐 그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기억으로만 겉돌던 당신의 살아가신 모습들, 애정이 가득한 말씀들의 의미가 "나"와 일체가 되는 그런 체험들이 다시 선생님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겠지요. 그러고 보면 무위당 선생님은 원주라는 작은 도시에서 일생을 살아가시면서도 참으로 많은 분들에게 화두를 주신 분이었다고 봅니다. 사실 각자가 살아가고 있는 바로 그 자리가 도량이요 수행처라고 보면 저 먼 산속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당신의 삶으로, 때론 술자리의 그냥 지나가는 말씀으로 이렇듯 소중한 일깨움을 주셨으니 참으로 고맙고 소중한 분이셨음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제 마음에도 늘 살아있는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문열고 아래로 흐르라"는 것이지요. 사실 선생님을 기억하는 많은 분들이 저마다 선생님의 삶의 철학이 "밑으로 기어라"였다고 말씀하시니 새삼 특별할 것도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제게는 처음에 들었을 때 별다른 이야기 같지 않던 이 말씀이 시간이 흐를수록 큰 무게감으로 다가옵니다. 문을 연다는 것, 타인에게 나를 송두리째 열어버린다는 것, 참으로 충만한 사랑과 열정이 없이는 또 나를 텅 비워버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겠지요. 그 마음으로 함께 살아가는 많은 이들을 보듬으며 나아가라는 당신의 말씀이 제 기억 속에 반복되고 있습니다. 언젠가 그 말씀이 삶이 되어 녹아버리기를 기다리면서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씀이 진부해져버린 요즘 세상에 무위당 선생의 삶은 갈 길을 잃어버린 많은 이들에게 단비가 되어주리라고 생각합니다. 진리는 교리로 박제화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님을, 또한 문자화된 도덕이나 윤리로써 전해지는 것이 아님을, 진리란 그 시대의 아픔과 밑바닥과 함께 하며 생성되는 것임을, 바로 그럴 때라야 진리가 우리를 충만하게 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타인을 향해 문을 열어젖힐 수 있는 강렬한 에너지가 되는 것임을 무위당 선생님의 삶을 통해서 느껴보시길 기원하는 마음에 두손모아 "좁쌀한알"이라는 이야기보따리를 권합니다.

글 최혁진

 

작성자최혁진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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