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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여기에 있긴 있는데 여기 있는게 안보여?

장애여성공감 연극팀 ‘춤추는 허리’가 전하는 ‘장애여성의 생애사’

본문

 

 
“여기에 있긴 있는데 여기 있는게 안보여?”
무려 16자. 대체로 제목은 극의 특징을 잘 담아 기억하기 쉽도록 짧게 짓는 게 원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긴 제목을 붙인 이유가 뭘까?
이 제목 안에 이 연극의 주제인 ‘장애여성의 생애’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결코 긴 제목이 아니다. 아니, 이 제목은 ‘경상도 말의 압축률’을 초월할 정도로 함축적으로 지어졌다. 혹시 ‘경상도 말의 압축률’을 모르는 사람을 위해 부언하자면, 경상도 말은 “이 물건이 당신 것입니까?”를 단 세 마디 “니끼가?”로, “네, 그것은 제 물건입니다”를 단 두 마디 “인 도!”로 압축해서 표현해 준다. 놀라운 압축률이지 않은가? 그러나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데도 잘 눈에 띄지 않는 ‘장애여성의 생애’를 16자 속에 이렇게 잘 담아 낸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번 연극의 모든 내용은 함께 준비한 사람들의 경험에서 나온 거예요. 제목 역시 팀장인 박주희씨의 경험에서 나온 거죠.” 공감의 정영란 사무국장의 말이다. 제목의 아이디어를 얻은 그날, 박주희씨는 연극 연습을 하러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엄마의 손을 잡고 걸어가던 꼬마가 갑자기 휠체어를 타고 있는 박씨 곁에 다가와 “어머나, 다리가 없어~!” 하더란다. 박씨는 “여기 있잖아~”라며 꼬마에게 자신의 작은 다리를 보여주었지만, 꼬마는 박씨의 다리를 보고도 여전히 “다리가 없어~! 다리가 없어~!”라고 하더라고.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다르다’는 이유로 존재 자체가 부정되는 순간이었다.
“이런 일은 반복적으로 경험되는 일들이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키높이에서 앞만 보고 걸어가요. 그래서 휠체어를 탄 우리는 눈앞에 분명히 있는데도 눈에 보이지 않죠. 걸어가다 부딪히면 그때서야 ‘어머나’하고 우리의 존재를 인식해요. 장애여성의 삶이 이제까지 그래왔다고 생각해요.”

장애여성 당사자가 직접 풀어가는 이야기
이 연극이 기존의 연극과 가장 다른 점이라면 장애여성 당사자가 직접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연극팀은 벌써 지난 7월 말부터 8월 말까지 워크숍을 열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대부분 비슷한 느낌의 경험들을 했죠. 집안에서 형제들이 아니면 언제나 혼자 놀아야 했던 어린시절. 과잉보호를 하던 부모님. 초경을 시작하면서 가족들로부터 걱정의 말을 들어야만 했던 사춘기. 형제자매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없었고 타인들의 시선에 갇혀 결혼은 물론 연애조차 어려운 2~30대.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늙어가는 장년기….” “노년기는 없네요?”하고 던진 기자의 질문에 정영란씨는 “최고 연장자가 아직 마흔둘이거든요”하며 웃는다.
이렇게 워크샵을 통해 시나리오가 만들어지고 그 시나리오 중에서도 걸러내고 또 걸러내서 지금의 연극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진수만 모아진 장애여성의 경험들은 연극 속에서 장애로 인해 소꿉놀이에선 언제나 할머니가 아니면 아기를 해야 했고 그도 아니면 놀이터에 혼자 버려져 밤늦도록 누군가 데리러 오길 기다려야 했던 ‘어린시절의 나’, 친구라고는 거울과 라디오뿐이었고 초경을 시작하자마자 “저것도 여자라고 초경을 한다”는 걱정 섞인 말을 들어야만 했기에 월경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갖게 된 ‘사춘기의 나’, 사랑을 해서 결혼을 하면서도 양가의 반대로 축복받지 못한 결혼, 그리고 모든 게 나의 장애 때문으로 귀결되어 어렵기만 했던 결혼생활, 그리고 이혼을 겪게 되는 ‘2~30대의 나’,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여전히 독립하지 못한 채 독립을 꿈꾸며 엄마와 함께 늙어가는 ‘장년기의 나’로 상징화되어 표현되었다.
연극의 내용 자체는 밝지 않지만 시종일관 이야기를 풀어가는 자세만은 어둡지 않았다. 이미 이야기를 풀어내고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상처가 치유되었기 때문에 여기에 유머를 담을 여유까지 생기지 않았을까? 이 연극을 준비하면서 서로 공감대를 형성했을 뿐 아니라 일치하는 경험들 속에서 장애여성에게 가해진 사회적 억압과 차별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닫고 ‘장애를 가진 여성’으로써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었다는 공감 측의 말이 연극을 통해 그대로 느낌으로 전해졌다.

새로운 형식의 창조 - 언어가 아닌 동작과 안무, 스크린 자막의 사용
연극팀은 내용면에서만 다른 게 아니다. 장애여성의 문제를 ‘직접’ 드러내고 표현하기 위

 
해 몇 가지 독특한 형식들도 개발했다. 몇몇 연극배우의 경우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의미전달이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연극팀은 또다른 표현형식을 창조했다. 즉, 언어가 아닌 동작과 안무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려고 애썼고, 연극공연의 모든 대사는 스크린을 통해 자막처리 되었다. 이것은 그대로 청각장애우를 위한 것이 되기도 했다.
“이번 연극을 준비하면서 제일 어려웠던 건 연습 장소문제였어요.” 9월부터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꼬박 5일을 연습했던 연극팀은 건국대 근처의 동부여성발전센터와 정립회관, 고대 학생회관 등을 떠돌아다니면 연습해야 했다. 게다가 이번에 터진 정립회관 사태로 정립회관은 제대로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쫓겨나야 했다고. 그래서 장소가 협소해 동선을 그려가며 연습하는 것도 어려웠고 화장실도 3층에 하나 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고대 학생회관에서 연습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전용연습실이 정말 필요하다고 말했다.
작년에 이미 장애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주제로 한 연극 ‘갑자기’를 무대에 올린 바 있는 연극팀 ‘춤추는 허리’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연극무대에 올림으로써 자존감을 가짐과 동시에 연극을 접하는 다른 장애여성에게도 힘을 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길 원한다”고 밝혔다. 벌써부터 그들의 다음 연극이 기대된다.

 

글 조은영기자 / 사진 장애여성공감

 

작성자조은영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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