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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진의 음악여행(4)]

끝없이 변신하는 팝계의 카멜레온 맨 데이빗 보위 (David Bowie)

본문

 
팝 음악계에서 오랜 세월동안 거의 멈추지 않는 왕성한 활동을 해온, 그리고 “변신의 왕자”로 불리고 있는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본명은 데이빗 로버트 존스(David Robert Jones)이며, 1947년 1월 8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는 지난 60년대와 70년대에 음악인으로는 최고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고 포크 가수, 양성 소유자, 외계인, 데카당트, 현대적인 록 가수 등 여러 가지 모습으로 불리고 비추며 활동해 왔다. 그리고 그의 이런 여러 모습은 각각 많은 모방자와 추종자들을 만들어냈다.
가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사실이기도 한데, 데이빗 보위의 여러 앨범 재킷이나 사진, 또는 뮤직비디오를 보면 그의 눈이 각각 달리 보인다. 처음엔 잘못 봤나?하며 넘어가게도 되지만, 사실 그의 눈은 각기 다르고 특별하다. 결과적으로 짝짝이 눈인 데이빗 보위의 눈은 과연 어떤 사연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사실 그의 눈은 한 쪽은 파란색, 한 쪽은 녹색이며 동공의 크기도 달라 처음 보는 이들에게는 신비한 느낌까지 준다. 그래서 혹자는 콘택트렌즈로 연출을 한 것이라 단정짓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의 눈은 원래 파란색이었다. 하지만 1962년 그가 학교를 다닐 무렵에 그의 오랜 친구와 그 친구의 여자친구를 두고 크게 싸우다가 맞아서 동공이 마비되었다고 한다. 그 후부터 그의 왼쪽 눈은 빛에 따라 녹색이나 올리브색으로 보이게 된 것이고 시력을 잃게 되었다.

자, 그럼 이제부터 그의 음악 여정을 알아보자. 어린 시절의 데이빗 존스(David Jones)는 13살 때부터 색소폰을 불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가 상업적인 음악가로 활동하기 3년 전엔 다니던 고등학교를 떠나 여러 밴드들을 결성하며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런 많은 밴드 생활을 하다가 1966년에 당시 유명한 인기 그룹 몽키스(Monkees)의 데이비 존스(Davy Jones)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이름을 마침내 데이빗 보위로 바꿨고 싱글들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이어 1967년엔 몇 주를 스코틀랜드에 있는 사원에서 보냈다고 하고, 그 후 유명한 마임극단의 견습생이 되었는데, 그 때 익힌 마임 실력이 그의 변신과 현란한 스테이지 매너와도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 후 런던의 스피크이지(Speakeasy) 클럽에서 미국 태생의 여성 안젤라 바넷(Angela Barnett)을 만나 1970년 결혼했지만, 1980년에 이혼하고 만다.
그 후 그의 이름을 알린 초기 대표곡이자 유명한 노래인 <스페이스 오디티(Space Oddity)>가 수록된 앨범  a맨 오브 워즈, 맨 오브 뮤직(Man of Words, Man of Music) b은 미국 로켓의 달 착륙과 알맞게 시기가 맞아떨어진 채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유럽에서 히트를 쳤지만, 미국에서는 1973년에서야 지각 발매되어 차트 15위까지 올랐었다.
데이빗 보위는 그가 좋아하는 예술가 앤디 워홀(Andy Warhol), 그리고 그룹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의 도시인 뉴욕에 헌정하는 앨범  a헝키 도리(Hunky Dory) b를 냈다. 여기에는 그의 명백한 주제곡으로 불리고 아직도 각종 영화, CF, 오락 프로그램 등에 쓰이는 <체인지(Changes)>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때부터 그의 정신없는 변신은 예고된 것이었다.
1971년 말에는 그가 이미지를 바꾸기 시작했는데, 1972년 1월 유명한 잡지 멜로디 메이커(Melody Maker)에서 자신이 게이임을 밝혔고, 다시 새롭고 극적인 면으로 그의 작업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데이빗 보위의 이미지로 아직도 사용되고 있는 ‘지기 스타더스트’(Ziggy Stardust)는 어떻게 탄생됐을까? 이 묘한 이름은 어느 날 그가 기차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본 런던의 한 양복점의 이름(Ziggy"s)에서 따왔다고 한다. 알고 나니 좀 싱거워지긴 하지만 뭐 어쩌랴 그렇게 지은 것을…. 그는 이 캐릭터가 의상에 큰 비중을 둘 것이었기 때문에, 이름을 ‘지기’라고 했다고 밝혔었다. 이로부터 데이빗 보위는 마침내 ‘지기’가 되었고 나머지 밴드 멤버들은 ‘더 스파이더스 프롬 마스(The Spiders From Mars)’가 되었던 것이다.
초 히트 곡 <스페이스 오디티>로 데이빗 보위는 그가 꿈꾸던 수퍼스타가 될 수 있었는데,

 
미래적인 의상을 입고 게다가 메이크업까지 하고, 밝은 오렌지색 머리를 한 데이빗 보위의 라이브 공연은, 런던과 뉴욕에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이어 머리를 자르고 금발로 물들이며 소울 양식도 수용한 보위는 첫 미국 차트 1위 히트 곡인 <페임(Fame)>을 내놓았고 그는 LA로 이사하며 미국 팝 문화에 정착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보위는 삶이 뻔해진다고 불평을 하며 로스앤젤레스를 떠났다고 하는데, 참 변덕도 심하지?! 어쨌든 뻔한 삶이 싫어 미국을 떠난 데이빗 보위는 이후 독일 베를린에 정착하기 전에 삼 년 만에 처음으로 영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는 거기서 그림을 그리거나, 미술을 더욱 체계적으로 공부하거나, 기이한 뮤지션인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와 작업하면서 거의 은둔생활을 했다. 그리고 이 사이 재미있는 사실은,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유럽과 미국에서 팝 피아니스트로서 투어 공연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유명한 유진 올먼디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에 프로코피에프의 ‘피터와 늑대’의 녹음을 제안하기도 했고, 1977년의 남은 기간은 왕년의 명 여배우들인 마를린 디트리히, 킴 노박과 함께 “저스트 어 키골로 (Just a Gigolo)”에서 연기를 하면서 보냈다고도 한다.
게다가 연이어 다양한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언더 프레슈어(Under Pressure)라는 곡에서는 그룹 퀸(Queen)과 공동 작업을 했었고 또 왕년의 미녀 배우 나스타샤 킨스키 주연의 영화 “캣 피플(Cat People)”의 사운드트랙 중, 조르지오 모로더가 만든 주제곡의 가사를 썼고 보컬을 담당하기도 한다. 이후에는 배우로 더 바쁜 나날을 보내기도 했는데, 영화 “더 휴거(The Hunger)”에서는 150살 된 뱀파이어 역을 맡기도 했다는 것이다.
1980년대에 접어들자 그는 앨범  a랫츠 댄스(Let"s Dance) b로 차트 정상에 다시 복귀했다. 이 앨범은 <렛츠 댄스>, <모던 러브(Mordern Love)>, 그리고 <차이나 걸(China Girl)>이 차트 상위 20위 내의 기록을 만들어냈는데, 게다가 이 곡들을 위해 또 다른 하나의 혁신적인 뮤직비디오들을 만들기도 했다. 계속해서 화제는 이어져 갔는데 데이빗 보위와 롤링 스톤즈의 믹 재거(Mick Jagger)는 너무나도 감동적으로 아프리카 난민을 돕기 위한 라이브 에이드(Live Aid)에서 팝의 고전인 <댄싱 인 더 스트리트(Dancing in the Street)>를 듀엣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1989년에 보위는 자신의 실험적 밴드인 팀 머신(Tin Machine)을 결성했다. 이 그룹은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일련의 클럽 활동으로 데뷔했는데, 1989년 그들의 앨범은 그 전까지의 보위의 앨범에 비해서 더 거칠고 기타에 중점을 두었는데, 이 앨범은 그 전까지 보위의 몇몇 앨범보다 좋은 평가를 받았었다.
그러다가 데이빗 보위는 다시 세계 토픽을 장식하게 되는데, 1992년에 마침내 당시에 너무 유명하던 소말리아 출신의 수퍼 모델인 이만(Iman)과 웨딩마치를 울리게 된다.  1993년의 앨범  a블랙 타이 화이트 노이즈(Black Tie White Noise) b는 보위가 그의 아내에게 바치는 앨범이라고 했는데, 이 앨범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대중을 흥분시키는 데에는 실패하게 된다.

 이제 60세를 바라보고 있는 그이지만 누구도 그를 늙어가는 노인이라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보이지도 않는다. 아직도 실험적인 음악을 계속해서 발표하는 데이빗 보위 그는 아마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변신과 실험을 계속 할 거라고 대부분의 측근들은 확신하고 있는 편이다. 또 언제 쇼킹한 뉴스를 전해줄라나??!!~~~.
                      글 성우진(대중음악평론가, 방송작가)

 

작성자성우진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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