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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남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영문의 영화읽기] 영화 "대단한 유혹"

본문

 
 
우리는 일생을 살아가며 몇 번이나 거짓말을 할까요?

어쩌면 참말만을 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명제를 역설적으로 드리는 질문이 된 것 같습니다.

다시 질문을 드리지요? 오늘은 어떤 거짓말로 자신의 삶을 변명하며 살아가십니까? 때려 치고 싶은 직장에 나가는 이유가 가족들을 살리기 위함이라고 위안하셨습니까? 아니면 승진을 위해 마음에 들지도 않는 윗사람에게 모닝커피 한잔을 권해드리며 그것도 가족과 사회를 위한 것이라고 위로하셨습니까?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 사실 수 있다는 분이 계시다면, 그 분은 참으로 운이 좋으신 분들입니다.

저는 매일 거짓말을 합니다. 제가 하는 일이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막연하고도 알량한 정의감으로 매일 거짓말을 합니다. 잠들 무렵 자신에게 더 솔직하리라는 다짐을 하지만 다음날 저는 또 다른 거짓말을 하며 저 자신의 존재를 알려고 할 뿐입니다.

분명한 것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식하고 존중하는 만큼만 사람들은 남을 위해 혹은 사회를 위해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주제는 거짓말에 대한 진실된(?) 영화이야기입니다. 그것도 120명이 단 한 명의 젊은 의사 한명을 상대로 벌이는 집단 거짓말에 대한 것입니다. 캐나다 동부 연안의 해링톤 섬을 실제 모델로 촬영한 영화 ‘대단한 유혹(원제 Seducing Doctor Lewis)’은 이렇듯 거짓말로 시작해 삶에 대한 진실로 끝나는 영화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전혀 혐오스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유쾌합니다.

관객들은 마을사람들의 거짓말이 들키지 않도록 마음을 졸입니다. 얼뜨기 의사 ‘루이스’를 빼고 관객과 마을 사람들은 모두 한 마음이 되어 ‘루이스’를 속입니다. 우선 그들이 왜 거짓말을 하게 되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캐나다 퀘벡 주에 있는 외딴 섬 ‘생 마리’마을. 그들은 가난했지만 행복했고 열심히 일했으며 바다를 사랑했고 돈을 더 벌기 위해 남을 괴롭힌 적도 없었으며 누구보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평생 실천해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8년 전부터 120명 남짓한 마을 사람 전체가 연금에 의존해 살아가게 됩니다. 이 마을 사람들에게 더 이상 미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 미래가 없는 것일까요? 단지 돈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죽은 친구의 연금을 대신 타먹으면서도 삶을 이어나갈 이유가 있어야 하지만 이미 이 마을 어디에도 긍지와 자존심은 없습니다. 섬 주민을 대표하는 시장마저 가난과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고 경찰직 공무원이 되어 육지로 도망가 버린 섬. 평생 유일한 삶의 수단이었던 어업이 망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살길은 단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플라스틱 공장을 섬에 유치하는 것이지요. 환경오염을 무릅쓰고 그 일을 하려고 해도 난관은 또 있습니다. 5만 달러라는 큰 돈과 5년 이상 계약할 의사가 필요한 것이지요. 돈은 둘째 치더라도 몬트리올 근처에 있는 모든 의사에게 편지를 보내도 답은 오지를 않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주민이라고는 120명 남짓이 전부인 이 섬에 의사가 있기를 기대하기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결코 의사를 유혹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렵더라도 자신의 삶의 사유방식을 지켜나가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마지막 순간, 자칭 시장 ‘저맹’은 거짓말을 하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자신을 아버지처럼 믿고 따라온 성형외과 의사 ‘루이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 아닙니다. 삶을 저버리더라도 양심과 자존심마저 죽이지는 못한다는 삶에 대한 역설적인 여유입니다. 이 영화는 한 편의 우화와도 같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많은 지혜와 반성이 녹아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생 마리" 라는 섬은 자본주의의 홍수 속에 도도하지만, 근근이 흘러가는 나눔과 인간이 지닌 양심의 흔적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생 마리’섬과 화려한 네온사인의 숲에 가려있는 대학로의 학림다방이 겹쳐졌습니다. 삐그덕거리는 계단 앞에 서있는 하얀 아크릴 간판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오늘날 학림다방은 과거 독재와 민주를 위해 싸웠던 50년, 60년대의 역사를 뒤로 한 채 자본의 거대한 흐름 속에 떠있는 외로운 섬과 같다.’

그렇습니다. 섬을 둘러싼 바다물결은 이제 비정한 자본으로만 보입니다. 과거 그 물결은 ‘생 마리’ 사람들의 삶을 지탱해준 고귀한 창고였지만 이제는 육지와 이 섬을 단절시키는 차가움일 뿐입니다. 생존을 넘어 섬을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같은 이유로 자신이 살아온 방식을 바꿀 수 없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습니다.

평생을 살아온 마을을 골프장 건설로 인해 혹은 아파트 건설을 위해 송두리째 빼앗겨 버려야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고 해야만 합니다. 서울의 목동, 상계동이 그러했고 경기도의 분당, 일산에 살았던 많은 사람이 그러합니다. 자신들이 원하지도 않는 스포츠인 크리켓을 지켜보면서 ‘루이스’를 유혹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환호하는 모습에 저는 마음이 숙연해짐을 느꼈습니다. 의사로 상징되는 현대 자본의 도도한 물결에 수치심을 뒤로 한 채 머리를 조아리는 우리의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과연 마을 사람들은 ‘루이스’를 유혹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지키고 살아가야할 이유를 지키려고 했을 뿐입니다. 영화 중반에 등장하는 크리켓 경기는 ‘루이스’를 기쁘게 하기 위해 거짓말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생 마리’ 사람들에게는 거대한 의식의 하나로 그려집니다.

온 마을 사람이 수건과 커텐으로 하얀 유니폼을 밤새 만들고, 고기 잡을 때 가장 중요하게 쓰이던 노를 배트로 만들고, 생소한 규칙을 하나둘 익혀나가는 모습은 섬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묻어나옵니다. 이 영화에서 ‘루이스’는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마을사람들의 집단 거짓말을 몰랐던 것으로 그려집니다. 과연 그럴까요? 아들의 죽음마저 거짓말로 꾸미는 ‘저맹’의 모습을 통해 루이스는 일찌감치 마을사람들의 사기극을 알면서도 모른 체 할 지도 모릅니다.

살아가다보면 우리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에 휘말리게 되고 체념하는 순간 어렵지만 용서하고 미움을 털어내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말로 대변되는 마을 시장 ‘저맹’의 외침은 비정해지고 있는 우리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을 찌릅니다. 

“우리가 왜 거짓말을 했냐고? 섬을 지키고 싶어서지. 왜 섬을 지키냐고? 아침에 눈을 뜰 이유가 생기기 때문이야. 우리가 원하는 것은 목숨을 부지할 연금이 아니라 자존심이라고. 돈은 써버리면 없어지지만 그 돈으로 인해 상처받은 수치심은 쉽게 없어지지 않아.” 

살아가야할 이유가 분명히 느껴지는 계절입니다. 다시 꽃을 피우기 위해 자신의 몸을 스스로 털어내는 나무들처럼 우리를 둘러싼 불필요한 자본의 물욕을 떨치고 싶은 시간들입니다. 그리고 1년 내내 잃었던 자존심을 되찾는 시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작성자이영문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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