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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이영문의 영화읽기] 모터싸이클 다리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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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기운이 온 천지를 감돌고 있습니다. 혹시 겨울여행을 준비하고 계신지요? 새해 맞이 여행, 눈꽃여행, 겨울산행 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행의 목적은 잡으셨는지요?

새로움을 다짐하고 변화를 원하는 분들이라면 이미 여행 준비의 반을 끝내신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아무런 목적 없이 그냥 떠나는 여행이 우연하게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오늘 소개할  ‘모터싸이클 다이어리(Motorcycle Diary)’가 바로 그런 목적 없는 여행을 떠난 두 젊은이의 변화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입니다.

먼 훗날 쿠바혁명에 참여하고 지금도 라틴 민중들의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체 게바라의 젊은 날을 엿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떠벌이 생화학자인 알베르토는 23세의 잘생긴 의과대학생 푸세(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와 8천킬로미터에 달하는 남미대륙을 횡단하는 여행을 시작합니다.

목적은 그저 지도책에서 보던 남미대륙을 눈으로 직접 보자는 것이고 경비와 계획은 아예 없습니다. 손에 든 것은 오로지 지도 한 장과 포데로사(아름다운 여인이라는 뜻입니다)로 불리는 모터싸이클이 있을 뿐입니다. 안데스산맥을 넘어 칠레 해안을 달리고 사막과 아마존을 건너며 베네수엘라에 도달하는 4개월이라는 긴 여행은 의과대학 졸업을 눈앞에 둔 푸세에게는 큰 모험이었습니다.

더욱이 푸세는 천식을 심하게 앓고 있어 여행도중에 천식발작으로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여행은 처음부터 그들의 계획과 다르게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텐트는 날아가 버리고 알베르토의 말발을 무기로 유명한 의사행세를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그토록 믿었던 포데로사는 정비사의 아내에게 추근거리다가 도망치면서 소떼를 만나 완전히 망가져버립니다. 그렇지만 낭만과 모험정신으로만 가득했던 여행에서 점차 푸세는 세상에 대해 참모습을 알게 됩니다. 여행을 하면서 거꾸로 목적이 생긴 것이지요.

자기의 땅에서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쫓겨다니는 젊은 부부의 눈에서 푸세는 세상이 결코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배웁니다. 죽어가는 인디오 할머니 앞에서 자신이 아무런 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기도 합니다. 또한 자신들의 문화를 이식시키기 위해 스페인 사람들이 얼마나 무모하고 잔인하게 잉카문명을 파괴했는지를 느낍니다.

긴 여행 끝에 아마존강가의 나환자촌에 도달했을 때, 체 게바라는 자신이 그동안 배우고 흠모하던 의학이라는 학문의 한계를 절실하게 깨닫기 시작합니다. 모든 사람들과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베네수엘라에 도달한 두 사람은 먼 훗날을 기약하며 헤어집니다. 8년 뒤 쿠바에서 그들은 재회합니다. 영화는 50년 전의 그 날을 회상하는 실제 인물 알베르토의 주름진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끝납니다.

이 영화에 대한 평은 대체적으로 우호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부류도 있습니다. 가령 지나치게 체 게바라를 영웅화했다는 지적이 그것입니다. 남미 백인지식인들에 의해 체 게바라의 사상을 편리하게 제단하고 인디오들의 삶을 종속적으로 설정하는 할리우드식 감동법이라는 것이지요.

실제로 이 영화의 제작자는 할리우드의 대표 감독이자 배우인 로버트 레드포드입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을 감수하고라도 이 영화는 쿠바,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등의 남미대륙과 유럽에서 호평을 받았습니다. 체 게바라의 모습이 자본주의 침식을 위한 관광상품으로 개발되든가 젊은이들의 호기를 불러일으키는 선동적인 것으로 이용되든간에 그건 각자의 관점입니다. 어차피 두 쪽 모두 그의 모습을 자신들이 편리한 방향으로 해석하는 것이니까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영화를 통해서도 느끼지만 체 게바라는 결코 이념보다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혁명가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념으로 무장하고 냉철한 판단력을 소유한 혁명가의 모습과 그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른바 ‘낭만 빨갱이’의 전형적 인물입니다.

러시아혁명의 트로츠키, 쿠바혁명의 체 게바라, 우리나라 사회주의 운동의 박헌영, 여운형 그리고 조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 선생 등이 가지는 공통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자신들의 의식에 가득한 상태에서 정권을 장악하는 혁명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설혹 성공한 혁명 뒤에 관료화 되어가는 기득권의 모습에서 그들은 배척당하고 숙청당하는 비운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체 게바라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낭만과 이상에 대해 얘기합니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낭만주의자고 도저히 구제할 길 없는 이상주의자라고, 우리는 불가능한 것을 생각한다고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한다면,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맞는 말이다. 우리는 ‘그렇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체 게바라의 이 말은 다음과 같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과도 일치합니다.

“학문이란 민중의 삶을 이롭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는 더 이상 학문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두 번 보았습니다.

두 번째에는 의과대학생들이 동행하였습니다. 그 사이에 남양주에 있는 다산 유적지를 두 번 다녀왔지요. 분명 이런 의식적 행동은 체 게바라의 젊은 날에 저와 의대생들을 감정이입시키고자 하는 유치찬란한 낭만이었을 겁니다. 혹은 실패한 혁명가의 모습에서 저를 위로하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는 이 영화를 보는 동안 제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강렬한 느낌이었습니다.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고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명제를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체 게바라와 다산 선생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들이 성공한 혁명가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단지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위해 자신을 변화시킨 용기와 그런 삶을 선택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화가 날 때 우리는 이 영화를 기억해야 합니다. 결코 세상이 우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니까요.

자, 여러분들의 겨울여행을 위한 준비가 끝나셨는지요? 그리고 다음과 같은 체 게바라의 여행소감을 마음 한 곁에 실어가십시오. 

‘이제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건강한 여행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작성자이영문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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