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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유일한 정신병입니다

[이영문의 영화읽기] "브로크백 마운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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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은 유난히 남자의 사랑에 대한 논란이 가득합니다. 사극 ‘왕의 남자’가 흥행 신기록을 세운 것부터 일본 영화 ‘메종 드 히미코(이하 히미코)’, 보수적 색채의 아카데미 수상작 ‘브로크백 마운틴(이하 브로크백)’에 이르기까지 온통 남성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로 들썩입니다.

비단 우리나라 신문이나 방송에 국한된 현상이 아닙니다. 일본과 미국신문에서도 이 세 영화를 묶어 동성애에 대한 세 나라의 코드가 일치했다는 기사제목이 나올 정도입니다. 심지어는 AP통신에서는  ‘왕의 남자’를 관람한 노무현 대통령과 ‘브로크백’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텍사스 출신의 부시 대통령(공교롭게도 이 영화 주인공은 텍사스 출신의 카우보이입니다)을 비교하며 한국이 동성애 문화에 더 관용적이라는 어설픈 기사가 나올 정도입니다. 과연 그러한가요? 

브로크백’이 아카데미 시상대에서 4개의 상을 휩쓰는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군대내 동성애자 인권침해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지금도 뜨겁습니다. ‘브로크백’에 대한 이 글을 준비하는 동안 저는 우연하게도 사건 당사자에 대한 평가입원의 주치의로 의사소견서를 제출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영화와 현실이 마구 교차되고 혼란스럽습니다. 결국 성정체성으로 고민하는 21살 젊은이의 인권과 치료를 위해서도 저는 ‘브로크백’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전히 사회의 벽은 두텁고, 마치 영화 ‘브로크백’의 산 정상에 보이는 흰 눈과도 같이 차갑기만 합니다. 잠시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미국의 대표적 보수지역인 와이오밍과 텍사스주에서 살아가는 두 명의 카우보이가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양을 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합니다. 20살의 젊은이 잭과 애니스는 우연히 술에 취한 채 하룻밤을 함께 보내게 되고 서로를 사랑하게 되지만 현실을 거부하지 못한 채 헤어지게 됩니다.

서로를 너무 그리워하지만 현실에 대해 용기를 낼 수 없는 두 사람은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자식도 낳고 현실을 살아가게 됩니다. 마지막 다툼 끝에 헤어진 이후 4년 만에 재회하는 잭과 애니스의 표정에는 그리움과 사랑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현실의 벽에 부딪힌 두 사람에게 사회적 관습과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불안감은 영화 내내 도사리고 있습니다.

오직 브로크백 마운틴만이 두 사람을 말없이 반겨줍니다. 20년의 세월이 지나 잭의 죽음이 있고나서야 자신이 잭을 사랑한다는 것을 애니스는 깨닫게 됩니다. 딸의 결혼소식을 전해 들으며 두 사람의 피가 묻어 있는 셔츠와 브로크백 마운틴의 사진과 함께 애니스는 두 사람의 사랑을 지켜나가겠다는 맹세를 합니다. 닫힌 옷장 뒤로 차가운 와이오밍의 들판이 푸르게 지나가며 영화는 끝납니다.    

숙명적인 남성 직업을 나타내는 카우보이는 이 영화의 매복지대입니다. 가장 남성다워야 한다고 생각되는 직업에 동성애의 교집합은 분명 비대칭적 구조로 위장되어 있습니다. 어린시절 게이를 너무도 싫어했던 아버지의 강압으로 자신의 동성애 코드를 모두 억누르며 살아가야하는 애니스에게 동성애자인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죽음과도 같은 두려움입니다.

실제로 와이오밍은 1998년에 게이라는 이유하나로 비동성애자들에게 매튜 세퍼드라는 젊은 청년이 구타당해 숨진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동성애자에 대해 미국사회는 관대하리라는 추측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아직도 한달에 2명꼴로 미국 동성애자들은 살해되고 있습니다. 신체의 죽음 못지않게 정신적 공황을 견디어 나가야 하는 것은 한국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이러한 본능과 죽음 사이의 깊은 심리적 공황을 메워나가는 것이 바로 잭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려지고 브로크백 마운틴은 편안함을 줍니다. 예나 제나 산은 그리움과 편안함을 주는 심리적 원형인가 봅니다.

사랑에 대해 여러분은 어떤 정의를 내리십니까? 물론 어리석은 질문에 불과한 것이지만 각자가 내어넣을 수 있는 답이 아마도 있으리라 봅니다. 저는 ‘사무엘 샘라드’라는 정신분석학자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유일한 정신병이다.’

그렇습니다. 잭과 애니스의 사랑도 그러하고 ‘왕의 남자’의 공길과 장생의 사랑도 그러하며 우리네 마음에 자리한 사랑도 그러합니다. 단지 성적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탄압받고 그 사랑마저 불신당하지만 그 사회의 편견에 당당하게 맞서고 있는 이 땅의 동성애자들에게 이 영화가 조그만 위안이라도 되기를 기원합니다. 

작성자이영문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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