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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의 자취방과 고백

[주제가 있는 이야기 3] 이 가을에 생각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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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쯤 나는 단과대 학생회장으로 입후보하게 되었다. 선거를 진행하다보니 정말 힘든 일이 많았다. 어느날 밤 무거운 마음으로 보슬비를 맞으며 멍청히 학교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러다 학교 앞 신호등 앞에서 우연히 두 선배를 만나게 되었고 그중 여자 선배집으로 몸을 말리러 가게 되었다. 원래부터 친한 사이가 아니어서 약간 어색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단 몸을 말릴 곳이 필요해서 아무말 없이 따라나섰다.
  한 쌍의 햄스터와 상자 위에 놓여진 컴퓨터며 옷걸이 등이 살림의 전부인 그야말로 평범한 자취방이었다. 수건으로 머리를 닦고서 대충 씻은 후 자리에 누웠다. 방안이 따뜻했다. 쌀쌀해진 날씨에 비까지 맞아 얼어있던 몸이 풀려왔다.
그렇게 노곤해져 있는 가운데 선배언니가 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려면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헤어지려고 해. 그래서 가슴이 너무 아파....”
  그것이 우리가 개인적으로 나눈 첫 대화였다.
  그때까지 내게 있어 그녀는 항상 대범해 보이고 자신감있는 어려운 선배일 뿐이었다. 학생회 활등을 통해 봐온 선배는 늘 개성이 강하고 여성문제를 고민하면서 학생운동도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후배들의 선망을 받아오던 사람이었다. 그런 선배가 내 앞에서 애인이야기를 하면서 힘들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학교에서 만나게 되면 선배는 내심 쑥스러워 했고 우리는 같이 밥을 먹고 비디오를 보고 산책을 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가 살아온 어렸을적 이야기, 중고등학교 시절 말썽 피웠던 이야기, 사랑했던 사람들,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털털했다. 청바지에 남방, 티 ,조끼 종류의 옷을 즐겨입었고, 운동화에 묻은 페인트가 무언가에 깊이 빠져 사는 사람임을 보여 주었다.
  그녀는 나에게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많은 것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녀 앞에만 서면 그녀를 짜증나게 하곤 했다. 어느새 이런 것들이 쌓이면서 선배와 나는 점점 멀어지고 서로의 마음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졌다.
  그렇게 자연히 연락이 끊어졌다. 지금은 그녀의 눈빛, 운동화, 그녀가 생일 선물로 받았던 셔츠의 색깔, 그리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던 모습만이 기억에 남아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 선배 옆에 선 내 모습은 너무나 어렸다. ‘그녀가 기억하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그 선배는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며 무슨 생각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문득 평범한 그의 일상도, 목소리도, 그녀에게서 나던 냄새까지 그리워진다.

 

글/ 김순미(우석대 특수교육학과 4년)

작성자김순미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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