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이 있는 이야기] 꽃병 > 문화


[감동이 있는 이야기] 꽃병

본문

 내가 이제껏 만난 사람들 중에서 가장 화가 나 있던 사람은 오른쪽 다리에 뼈암을 앓은 젊은이였다. 그는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뛰어난 운동선수로 알려져 있으며, 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아름다운 여자들을 사귀고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는 등 신나는 삶을 살았었다.

 그런데 암 진단을 받고 이 주일 만에 그는 오른쪽 다리를 무릎 위에서 절단해야 했다. 그의 생명을 구해준 절단 수술이 한편으로는 그의 삶을 끝내고 말았다.

 오늘날엔 이렇게 화가 나 있는 젊은이들이 자신을 파멸로 이끌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도 많다. 그는 더 이상 학교에 가지 않았고, 술을 과다하게 마시기 시작했고, 마약도 하기 시작했다. 자기를 흠모하던 여자들을 일체 피했고 친구들도 만나지 않았다. 그리고 연달아 차 사고를 냈다. 결국 그의 운동 코치가 나에게 전화해서 그 젊은이를 좀 만나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몸매가 단단하고 잘생기고 자부심이 강했으며, 또 철저히 자신을 외부로부터 고립시키고 있었다. 나는 그 젊은이의 분노를 이해 할 수 있었다. 그는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며 모든 건강한 사람들을 증오했다. 그리고 자신이 너무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두 번째 상담을 하러 왔을 때 나는 그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전달할 수 있도록 스케치북을 주었다. 그리고 그의 몸을 그려보라고 했다. 그는 꽃병을 하나 그렸다. 그런데 그 꽃병은 한가운데가 깨져서 벌어져 있었다. 그는 이를 앙 다물고 검정색 크레용으로 깨어진 틈을 자꾸만 검게 칠해서 결국은 종이가 찢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눈물을 흘렸다. 분노의 눈물이었다. 그 그림은 한 다리를 잃음으로 해서 그가 겪고 있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강력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깨진 꽃병에는 물을 담을 수 없었으며 따라서 다신 꽃병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가 없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팠다. 그가 방을 나가고, 나는 그림을 접어서 잘 두었다. 너무 중요한 그림이어서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그의 분노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어느 날 상담이 시작되기 전, 그는 신문에서 찢어온 종이 조각을 내밀었다. 오토바이 사고로 다리를 잃은 한 젊은이에 대한 기사였다. 의사들이 그 젊은이의 상태에 대해서 한 말이 길게 적혀 있었다. 나는 기사를 다 읽고 그를 바라보았다.

 “의사들은 바보 천치예요. 아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그가 격분해서 말했다.

 그 다음 몇 달 동안 그는 그런 기사들을 더 많이 가지고 왔다. 어떤 것은 신문에서 오렸고 어떤 것은 잡지에서 찢어왔다. 집에 불이 나서 크게 다친 소녀에 대한 기사도 있었고, 과학 실험을 하다가 폭발이 나서 손을 잃은 소녀에 대한 기사도 있었다. 그런 기사들을 읽을 때마다 그는 항상 의사들과 부모들을 심하게 비난했다.

그 후 우리는 그와 같은 상황에 있는 젊은이들에 대한 얘기를 하며 상담 시간의 대부분 보내게 되었다. 그가 말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해요. 아무도 도와주려고 하지 않아요.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아는 사람조차 없어요.”
 그는 격분해서 몸을 떨었다. 하지만 이제 그의 분노 뒤에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자라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나는 용기를 얻었다. 그래서 젊은이에게 그가 나서서 그들을 도와  주겠느냐고 물어 보았다. 처음에 그는 깜짝 놀라며 ‘싫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담을 마치고 방을 나가며 그는 자기처럼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우리 병원엔 세계 각처에서 찾아온 환자들이 많이 있었으므로 그 젊은이가 관심있어 하는 종류의 환자를 찾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럼 한번 알아보겠다고 대답했다. 그로부터 몇 주일이 지나지 않아서 젊은이는 자기와 비슷한 경우를 당해서 외과병동에 입원한 젊은 환자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병동에서 들어올 때마다 그는 많은 얘깃거리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그가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다는 사실을 무척 기뻐했다. 어느 누구도 도움이 될 수 없었던 때에 그 젊은이가 나서서 도움이 되었던 적도 종종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기 부모님과 친구들과도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다른 사람들이 그를 더 잘 이해하고 그가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알도록 도와주었다.

 젊은이가 이룬 성과에 만족한 외과 의사들은 더 많은 환자를 소개해 주었다. 젊은이는 다시 공을 가지고 놀게 되었고, 의사들과도 가끔 시간을 같이 보내게 되었다. 의사들과 친해지며 그는 의사들을 조금씩 존경하게 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그의 분노는 점점 가라앉아서 이제는 혼자만의 봉사단체 같은 것을 만들었다. 나는 그저 바라보고, 듣고, 감사해했다. 그가 한 일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어떤 소녀에 대한 것이었다. 그녀의 집안 내력은 정말 비극적이다. 유방암으로 엄마가 죽었고, 언니가 죽었고, 사촌이 죽었고, 여자 동생 하나가 화학요법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이제 겨우 21살이 된 그녀는 양쪽 유방을 모두 잘라내야 했다.

 무더운 여름 한 낮에 그는 반바지를 입어서 인조다리가 그대로 드러나게 하고 그녀를 찾아갔다.

 하지만 심한 우울증에 빠진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침대에 누워서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는 자기가 아는 방법을 총 동원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자기 몸의 일부분을 절단해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대담한 농담도 했고, 화도 내 보았다. 그래도 반응이 없었다. 라디오에서 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실망해서 그는 일어섰다. 그리고 그녀의 반응을 얻기 위해 마지막 방법으로 인조다리를 풀어서 쿵 소리가 나도록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러자 깜짝 놀란 그녀가 눈을 번쩍 뜨고 처음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한 때 대학에서 가장 춤을 잘 추던 젊은이는 음악에 맞추어 손가락을 튕기며 한 다리로 춤을 추었다. 그리고 그러는 자신이 우스워서 큰소리로 웃었다. 잠시 후엔 소녀도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춤을 출 수 있으면 나는 노래를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이 소녀는 나중에 그의 친구가 되어서 환자들을 방문하러 같이 돌아다녔다. 그녀는 대학에 다니고 있었으므로 그에게 학교로 돌아가 심리학을 전공하도록 이끌었다. 그러면 그의 꿈을 더 전문적으로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결국 그는 그녀와 결혼했다. 그가 다리를 잃기 전에 사귀었던 여자들과는 매우 다른 여자였다.

 벌써 오래 전에 나는 그 젊은이와의 상담을 끝냈다. 마지막 상담을 하던 날 우리는 그 동안 함께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았다. 넘어가기 힘들었던 때도 있었고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던 때도 있었다. 챠트를 뒤지다가 2년 전에 그가 그렸던 그림을 발견했다. 그림을 펴서 보여주며 이 그림을 기억하냐고 물어봤다. 그는 종이를 받아들고 잠시 들여다보았다.

 “그런데요...”

 그가 입을 열었다.

 “이 그림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어요.”

 나는 놀라서 크레용박스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노란 색을 고르더니 병에 깨진 틈에서부터 종이 끝까지 많은 선을 그었다. 밝은 노란 색의 선이 힘차게 그어졌다. 나는 이해하지 못하고 잠시 바라보았다. 그는 나를 보고 웃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깨진 틈을 짚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바로 여기서 빛이 나오고 있어요.”

  고통은 완전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고통을 겪으므로써 힘을 얻어 완전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은 기독교에서 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종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년 동안 암환자들을 돌보며 다른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들의 상실과 고통의 치료를 도와주며 나는 이런 믿음을 영적인 가르침이나 종교적 믿음이 아니고 결국 자연의 한 법칙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그런 믿음을 하느님께서 가르쳐 주셔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을 참을성 있고 조심스럽게 관찰함으로써 배우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고통은 삶의 힘을 만든다. 어떤 때 그 힘은 분노로 나타나고 어떤 땐 비난과 자기연민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것 또한 삶을 사랑하고 감사해 할 줄 아는 용기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글/ 레이첼 나오마 레멘  (의학박사)
   도서출판 이레 (가장 절망적일 때 가장 큰 희망이 온다)중에서

작성자레이첼 나오마 레멘  webmaster@cowalknews.co.kr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함께걸음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함께걸음 과월호 모아보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8672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노태호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