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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에 접근하는 것도 장애우의 권리

번역 연재 - 미국 장애우 운동사(22) 컴퓨터가 가져다 준 행복

본문

저자: 조셉 피 쉐피로
 이 책을 쓴 조셉 피 쉐피로는 미국의 대표적 일간지인 유에스월드앤리포트지 기자로서 사회정책에 관한 다수의 기사를 썼다.
 그는 미국 알리샤 페터슨 재단의 장학금을 받아 미국 장애우 인권운동을 연구해서 이 책을 썼다.

역자: 서동명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 재학하고 있다.

동정은 싫다 
제7장 선정적인 네온 휠체어(The screaming Neon Wheelchair)

과학기술의 발달은 장애우를 더욱 외롭게 하기도 한다. 장애우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쉽게 사용할 수 없다면 일반 사회와의 거리는 점점 더 벌어질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과학기술을 자기 것으로 가질 수 있는 장애우도 점점 늘어났다. 그리고 장애우들도 접근이 어려운 빌딩에서부터 접근하기 어려운 컴퓨터를 그들의 기본적인 평등이라는 권리를 위배하는 장벽으로 보기 시작하였다.


  과학 기술에 대한 신뢰는 한 편으로는 위험하다. 발명된 기계가 오히려 장애우를 일반 사회에서 고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화기는 발명된 지 백 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청각장애우들과 만날 수 있었다. 1964년에 과학자이면서 청각장애우인 미국인 로버트 와이트브레크트가 청각장애우를 위한 TDD(원격통신기기)를 발명하기 전까지는 청각장애우와 전화는 전혀 별개의 존재였고, 기술이 만든 일반 사회와의 거리감을 극복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 후에도 TDD 전화기는 그 기기를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만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또 다른 형태로 청각장애우들은 일반 사회에서 고립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가장 먼저 발명된 시스템은 한정된 작용만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는 한 쪽 에서 TDD를 사용하여 메시지를 보내면, 그것을 목소리로 바꿔주는 중앙 교환기기도 만들어졌다.

  물론 이것은 그 반대로도 가능하다. 세인트 루이스 집안에서는 1969년 처음 이 전화기를 설치했는데, 한 달에 2달러 정도만 더 내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6개월 내에 문을 닫고 말았다. 보급이 얼마 되지 않아 여러 모로 사용에 제한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후 1993년에 이르러 비로소 약 30개 주에서 이러한 연결망이 설치되었다. 이것은 미국장애우법(ADA)에 의해서 반드시 설치하여야 하는 것이었고, 이러한 연결망은 국가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설립될 수 있었다. 이 때 비로소 청각과 언어에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911의 응급전화부터 피자배달까지의 전화기에 대한 완전한 접근을 보장하게 되었다.


 과학기술, 장애우를 고립시키기도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달은 도리어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일반 사회로부터 고립시킬 수 있다고 세계장애우협회 데보라 카플란은 경고하였다. 예를 들어 ‘전자 보도’가 휠체어사용자에게는 장애가 될 수 있는 것이고, 새로운 전화기가 보쳥기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1천3백만 시각 장애우를 위한 기술 발전은 문맹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테이프 녹음기와 인쇄된 컴퓨터의 발명은 시각장애 학생들이 교육을 받는 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도구에 대한 지나친 믿음의 결과. 시각장애우 가운데 점자을 배우려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결과를 낳았다.

  오늘날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미국사람 중 12%만이 점자를 읽을 수가 있다. 그리고1829년에 시각장애를 가진 프랑스인 루이스 브레일에 의해서 발명된 점자를 가르칠 수 있는 교사도 크게 모자라게 되었다.

  오늘날 많은 시각장애우들과 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점자를 시대에 뒤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케네스 실버만과 같은 시각장애우는 이것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실버만은 항공우주가학기술의 기술적인 부분을 많이 알아야 했다. 그는 이것을 위해 녹음 테이프를 돌려가면서 정보를 찾는다는 것은 비실용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 녹음테이프를 통해서 그런 정보를 찾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점자를 배우는 것만이 더 이상 사회보장장애연금으로 살아가지 않고 직업을 가지게 되는 길이라고 생각하였다.


 점자에 대한 서로 다른생각

  점자에 대한 각기 다른 의견은 시각장애우사회를 둘로 나누기 시작했다. 이것은 일조의 교육에 대한 분쟁이 아니라 권리에 관한 것이었다. 시각장애우로 구성된 시각장애우연맹은 모든 시각장애학생들에게 점자를 교육하도록 하는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연맹의 마크 마우어는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 그리고 일자리를 가져야 될 나이의 시각장애우가운데 70%가 실업상태라는 수치를 예로 들며 단순히 쓰고 읽을 수 있기 위해서라도 점자 사용법을 알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 쪽에서는 점자를 가르치는 것이 때로는 부적당하다고 주장했다. 시각장애우 가운데85%는 자여 시럭이 남아 있어서 글씨를 확대하면 읽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미국시각장애우재단가 같은 집단은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었고, 미국시각장애우협회와 같은 집단은 장애우와 비장애우에 의해 함께 운영되고 있엇다.

  미국시각장애우재단의 수잔 수펀진은 흰종이에 하얀 모양으로 적혀 있는 점자를 손이 아니라 눈으로 읽은 시각장애아동을 처음 보았을 때 매우 놀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각장애우연맹의 마우어는 망막염과 같은 병을 가진 시각장애는 진행성이기 때문에 지금은 글씨를 확대하면 읽을 수 있지만 결국에는 읽을 수 없으니 점자교육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하였다.

  그런데 점자 배우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장애우가 된다는 낙인 때문에 제한된 시각을 인정하는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수 많은 부모들은 자녀가 시각장애를 가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주하원의원인 딕 에드렁은 이야기하였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점자의 사용을 점점 더 억제하는 것은 사실이다. 반면 점자의 부활도 눈앞에 보다 생생하게 나타나고 있다. 결코 비싸지 않은 점자 프린터와 점자로 변환해 주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복잡한 기술서적과 과학서적 등을 점자로 더욱 쉽게 바꿔주고 있다, 어떤 지역에서는 심지어 일간지도 점자로 변환해 주며, 뉴스속보까지도 자신의 컴퓨터로 전송받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과학기술에서 풀어야 하는 가장 어려운 부분은 사람들이 이러한 기계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 점이다. 기술 발전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도구들을 선뜻 사용하는 데에는 많은 장벽이 남아 있다.

  영국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과학기술로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예가 될 것이다. 그리고 퇴직한 미 공군의 카메라맨, 밥 마기 또한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호킹과 마기는 둘 다 심한 신체장애와 싸우고 있었다. 이 두 사람 모두 걷거나 말을 할 수 없었다. 아이슈타인 이후에 최고로 머리가 비상한 물리학자로 알려져 있는 호킹은 컴퓨터 음성합성기를 통해 캠브리지대학교 세미나에서 자신이 의견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 단어를 손으로 살짝 찍으면 그 단어들을 조합해서 전자 목소리가 말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첨단기술은 호킹이 우주와 블랙홀의 이론을 계속해서 증명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러나 미국 유타주 웨스트 벨리스의 마기는 호킹에게 제공되었던 그 컴퓨터기기를 가질 수 없었다. 대신 부인인 클라우디아와 마치 초등학생들이 알파벳이 쓰여진 종이쪽지를 사용하는 것처럼 글이 쓰여진 녹색종이를 가지고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클라우디아는 밥이 그위 눈을 깜박일 때까지 각각의 단어를 지적하거나 혹은 ‘에스’를 표현하기 위해서 그의 머리를 약간 흔드는 들의 동작으로 단어나 문장을 만들었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밥은 그의 기본적인 욕구와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클라우디아와 밥은 많은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크나큰 어려움을 겪으면서 밥은 “나는 마치 관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죽고 싶다”라고 절규하면서 몹시 힘들어했다.


 어떻게 하면 보다 쉽게 접근할 것이냐

  과학기술의 발전과 이것을 실제 필요한 사람이 사용하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이다. 호킹은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었고, 컴퓨터회사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사람에게 소프트웨어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에 이러한 시스템을 사용할 수가 있었는 지 모른다.

  클라우디아 마기는 키보드에 적외선 광선을 컴퓨터키보드에 쬐어 컴퓨터를 조작하는 컴퓨터 시스템의 가격을 물어보았다. 약4천5백불의 돈을 마기가 지불할 수 는 없었다.

  이들 부부도 1986년 밥이 병으로 인해 직장에서 은퇴를 강요받기 전까지는 남부러울것 없이 잘 살았었다. 그러나 밥의 발병 후 클라우디아는 밥을 돌보기 위해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밥이 장기간 입원을 하게 되면서 입원비만 1만7천불이 넘었다. 빚은 갈수록 산처럼 불어나고, 이들은 점점 끝이 보이지 않는 수렁 속에 묻혀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의 병상태를 감당할 수 있다. 그러나 밥이 말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가장 큰 고통이다. 나는 그가 말을 할 수 있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하지만 우리는 그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없다”고 클라우디아는 이야기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비용은 일반적으로 보험처리가 안된다는 점이다. 밥 마기의 개인보험으로 요양원에 있던 초기에 3천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컴퓨터 음성합성기는 보험 적용을 받지 못했다. 워싱턴 D.C. 국립 재활병원에 근무했던 드류 바타비아는 사설보험은 비싼 시스템에 대해서 비용 지급을 거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왜냐하면 재원의 고갈은 다른 보험회사에 비해 경쟁에서 떨어지도록 만들 수도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열려 있는 그러나 제한된 문호

  과학기술에 대한 접근은 그가 어느 주에 살고 있는가. 그리고 무슨 공적 연금제도하에 있는가에 따라 각각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 퇴역 군인의 경우 거의 대부분의 지출사항을 보상받을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중요한 자금의 원천이기도 한 주별 직업재활 프로그램 지원자금은 때때로 곧 바닥을 드러냈다. 그래서 많은 학교에서는 단지 학교에 있는 시간에만 학생들에게 이러한 장치를 제공해 준다. 보스턴 아동병원 하워드 쉐인은 “나는 월요일부터 금요일, 그리고 아침 8시에서 오후3시까지만 말할 수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였다.

  그리고 미국 노인의료보험(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미국과 캐나다의 보험)은 몸의 일정 부분을 대신하는 보조기구에는 비싼 가격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또 일반 보청기도 제외된다. 그러나 이식수술은 의료보험이 적용되고 있다.

   더구나 이러한 규정은 주마다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 예를 들어, 매사츄세츠에서 65세미만 저소득 장애우를 위한 구민의료보장제도는 한 개의 보청기에 대해서는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옆의 버몬트 주에서는 미성년자를 위한 보청기만 의료보험 혜택이 있다. 메사츄세프에 건너간 코네티컷에서는 국민의료보장제도를 통해 21살까지는 양쪽 보청기를 모두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한 쪽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런 규정은 원칙도 없이 실시되고 있다“고 몬타나 대학 원조기술 정책 전문가인 알렉산드라 엔더스는 불평하였다.

   심지어 돈이 있더라도 정보를 잘 몰라 무작정 이 기기들을 찾아 나가야 한다. 크라우디아 마기는 사고를 당한 이후 컴퓨터 음성합성기를 사용하는 장애우 남편을 가진 한 부인을 우연히 알게 되어 그러한 기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정보를 알려주는 어떠한 센터도 존재하지 않고 있다”고 세계장애우협회의 주디휴맨 지적한다. 스웨덴에는 나라에서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기관 가운데 기기를 사기전에 도구들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기술 원조센터도 있는데 말이다.

  한편 몇몇 새로운 것들도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아틀란타에 기반을 둔.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IBM 전국지원센타는 1만9천여 개 정도의 정보를 기록하여 놓았다.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는 야퀼린 브랜드라는 사람이 애플컴퓨터의 지원을 받아 부모들과 아이들이 시험하여 볼 수 있는 지원도구들로 채워진 장애아동컴퓨터그룹을 세웠다.

  물론 모든 도구들이 가격이 비싸거나 첨단기술인 것은 아니다. 극장과 회의실은 몇 백 달러에서 몇 천 달러 정도면 청각장애우에게 도움이 되는 시설을 설치할 수 있다. 보청기는 단지 몇 백 달러 정도면 낄 수 있었고. 가벼운 휴대용 TDD는 1백 달러 미만의 돈으로 살 수 있다.

  그리고 1990년. 미국 의희는 새로운 텔레비전에는 청각 장애우들이 볼 수 있도록 자막처리를 위해 ‘디코더 칩’ 을 삽입하도록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한편 전화벨이 울리거나 누군가가 문을 두드릴 때 청각 장애우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는 불이 들어오는 장치는 단지 몇 달러면 가능하다.


 장애우만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특히 이 도구들은 장애우만의 시장을 넘어보다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어 갔다. 목욕탕에서 뜨거운 물이 소용돌이쳐 올라오는 장치인  ‘자쿠지’ 는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8살 아들의 고통을 덜게 하기 위해서 발명한 자무지라는 사람의 이름을 따서 세상에 나왔다.

  오늘날 그 아들인 케네스 자쿠지는 그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휠체어사용자가 길을 건너기 위하여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연석을 없애버린 것이 자전거 사용자와 유모차 사용자들도 편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가 생각하는 과학기술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IBM 센터를 운영하다 1991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매리 패트 라다바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이것은 역사적인 예에서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1843년에 특허를 받은 첫 번째 타자기는 시각장애우를 위한 도구로서 착상되었던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장애우와 비장애우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디자인이 디자이너와 건축가 사이에 새롭게 유행하기 시작하고 있다. 레버 핸들즈(Lever Handles)는 관절염과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이 문을 열 때 더 쉽게 열기 위해서 창조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두 손에 가득 무언가를 들었거나 혹은 손이 젖었을 때도 편리하게 사용 할 수 있다. 숫자가 커다랗게 써진 시계나 마이크로파 오븐은 시력이 낮은 사람에게 이익이 되지만, 어두운 곳에서 이 기계를 읽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득이 된다. 건축학자들은 계단이 없는 출입문이나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선반이 있는 집을 만듦으로써 노인들이 더 이상 집에서 사는데 자신의 능력을 위협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
  때로는 과학기술은 장애우에게서 발전하여 비장애우에게 적용하기도 한다.컴퓨터에 의해서 통제되는 환경제어시스템은 난방장치,에어컨,전등,텔레비전 등을 켜고 끌 수 있는 것인데 집안에서 돌아다니기도 힘든 지체장애우에게 특히 편리하다. 그리고 이것은 시간을 절약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역시 마찬가지로 매력적이다.

  ‘Bulter in a Box'라고 불리는 환경조절시스템은 말에 의하여 인지하고,그 말에 대해 “예, 주인님”이라고 답한다. 그러나 이 음성인식장치는 원칙적으로 버튼조차 누를 수 없는 전신마비 장애우에게 특별히 유용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때로는 사람들이 기계를 두려워하거나 혹은 이것과 함께하는 것을 불편해 하기  때문에 사용하기를 꺼리기도 한다. 또 일부는 장애우, 노인으로 낙인 찍히는 것이 두려워서 이러한 도구를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한다.노인들이 휠체어나 보행기를 거부하는 것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다.에베레스트와 제닝스는 바퀴 셋이 달린 모터 스쿠터를 노인들에게 많이 팔았는데, 이것을 구입한 사람들은 휠체어를 탔을때 자신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 했던 사람들이었다.

 가수 스티비 윈더는 전자키보드와 신디사이저를 경험한 가장 최초의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1980년대에 이미 그는 스캐너와 음성합성기기를 통해 편지와 책을 읽었던 최초의 사람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하다.


 “컴퓨터가 나를 행복하게 한다”

  정부, 자선단체, 그리고 개인기업들은 과학기술에 대한 혁신적인 프로그램을 세워 왔다.

  장애 근로자에게 여러 가지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준 회사에 대해서는 사무소가 세금을 감면해 주기도 한다. 왜냐하면 은행들은 일반적으로 보장구개발을 위한 사업에 대출을 거부하기  때문에 뉴욕등을 포함한 주 당국과 미국뇌성마비협회와 같은 단체들은 장애우가 일정한 설비를 사용하고, 빌리고 혹은 구입하기 위해 낮은 이자로 자금을 빌려주고 있었다.

  또 다른 협회는 사고로 장애를 입기 쉬운 농부들을 위한 원조기술보조금프로르램을 만들었다. 크라이슬러 모터스와 같은 자동차회사는 차량을 장애우용으로 개조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1천 달러를 다시 환불해 주었다. 전국기독인연합등의 단체들은 마기와 같은 사람들에게 업무용 컴퓨터를 증정하였다. IBM과 APPLE사도 장애우 컴퓨터 구입자들에게 가격을 할인해 주기도 했다.

  밥 마기는 그가 죽기 몇 달 전에 말하는 컴퓨터를 가질 수 있었다. “다시말을 할 수 있게 돼 그는 무척 행복해 했다”고 클라우디아는 회상하였다. 근육이 계속 약해지고 심지어 타이프 치는 것도 어려워졌을 때도, 그는 월토츠가 컴퓨터에 설치해 준 비행기폭과 비디오 게임을 계속하였다. 크라우디아는 때때로 침대맡으로 와서 그와 함께 이 게임을 하기도 했다.

  “그건 아주 어리석은 게임이지만 그가 나보다 더 잘하곤 했다. 그의 장애상태에도 불구하고 건강유지에 도움이 될 만큼 게임의 효과는 믿기 어려운것이었다”고 클라우디아는 회상하였다. 이 컴퓨터와 함께, 밥 마기는 그가 죽기 전에 간절하게 원했던 평화를 가질 수 있었다.

  클라우디마 마기는 그 컴퓨터를 역시 루게릭 병으로 죽어가고 있는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 그들은 또한 자신들의 생활을 도와줄 수 있는 컴퓨터를 간절하게 원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그 부인이 죽었을 때, 마기는 그 장치를 ALS협회에 기증해서 이것이 다시 다른 가족에게 사용될 수 있도록 했다. 마기가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이러한 기술들을 좀 더 일찍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알았다면 그녀의 남편은 이것을 더 많이 유용하게 사용하였을 텐데...

  밥 마기가 1989년에 사망한 이래로, 기술의 필요에 대한 요구는 좀 더 투쟁적인 태도로 제기돼 왔다.

  “대부분의 장애우들은 자신들이 기술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을 믿기 시작했다. 이것은 더 이상 사치가 아니다”라고 기술정책그룹 RESNA의 성원이었던 카렌 플랭클린은 이야기하고 있다.

  플랭클린이 이야기하듯이 새로운 투쟁적인 태도들은 최근 장애우 권리에 기반한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그들은 접근이 어려운 빌딩에서부터 접근하기 어려운 컴퓨터를 그들의 기본적인 권리인 평등에 위배한 장벽으로 보기 시작하였다.(계속)

글/ 서동명

작성자서동명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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