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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없고 ‘장애’만 있는 인간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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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에서 방영하고 있는 ‘인간극장’은 다큐멘터리이지만 웬만한 드라마 못지않은 인기로 사랑 받고 있다. 주로 서민들의 일상을 담담히 소개하며 소박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여줌으로써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는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괜찮은 프로그램에서 작년 한해 장애우를 주인공으로 다룬 것이 무려 10회나 된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소외계층이라 할 수 있는 장애우를 많이 소개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내용면에서는 비장애우들을 소개할 때와 좀 다르다. 대부분을 장애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오히려 시청자들에게 장애우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세상에 사는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 주고 있다.


장애우, 가족을 힘들게 하는 존재?

인간극장은 장애우를 한 인간으로서 비추기보다는 장애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럽게 사는지, 가족들에게 어떤 희생을 요구하는지를 중점적으로 부각한다. 장애우를 잘 알지 못하는 시청자라도 금방 인식할 수 있는 사항들-장애로 인해 어떤 불편이 있는지, 주변 사람에게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등-을 설명하기 위해 방송 분의 70%~80%를 할애하여 장애의 어려움만을 보여준다.
작년 한해동안 인간극장이 방영한, 장애우가 주인공인 몇 개 프로그램에서 그 예를 들어보겠다.

 
'세진이 이야기' ⓒKBS  
선천성 기형장애 때문에 의족을 착용해야하고 손가락이 두개밖에 없는 소년을 다룬 ‘세진이 이야기’편에서는 장소가 바뀔 때마다 세진이가 힘들게 의족을 벗었다 신었다 하는 장면을 자세하고도 반복해서 조명한다. 학교 장면에서도 수업을 받고 다른 급우들과 어울리는 장면은 외면하고 의족에 문제가 있어서 고통스러워 하다가 결국 병원으로 향하는걸 보여준다. 그리고 의족 때문에 맘껏 뛸 수 없고 자주 넘어진다는 걸 강조함으로써 의족을 사용해도 장애아는 여전히 힘들게 살아간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워터보이 현이’의 주인공인 권현 군 편에서는 난치병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한번 만으로도 엄청난 고통을 느끼는 골절을 소년을 소개 할 때마다 뼈가 53번이나 부러졌다는 것을 수십 번 얘기한다. 더구나 골절부위를 보여주느라 16세 소년의 옷을 벗기는 것도 주저 하지 않는다. 가족들이 차에 태울 때 짐짝 들듯이 소년을 들고 가는 장면도 수시로 나온다. 한창 친구들과 놀 나이지만 학교를 벗어나면 친구 하나 없는 외로운 존재인 소년이라서 부모님은 아들을 위해 자신들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일 하면서도 언제든지 아들이 부르면 달려가서 도와줘야 하고, 어머니는 등하교 지원은 물론이고 수영지도, 체력훈련지도에다 친구가 없는 아들의 말동무까지 한다. 그러느라 부모는 자신들만의 시간을 갖기가 거의 불가능 하다고 넋두리를 한다.

난치병 때문에 휠체어를 타는 여성이 등장하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엄마’편에서 유미 씨는 씻는 것, 먹는 것, 입는 것 등 모든 일상생활을 남편에게 의존해야 하는 존재다.

유미 씨는 아기에게 먹일 우유하나 타주지 못하는 불쌍한 존재로 묘사하기도 한다. 아기가 아파도 혼자 병원에 데려 갈 수조차 없는 한심한 엄마며 아기가 눈앞에서 침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남편은 하루 종일 유미 씨 옆에서 온갖 시중을 다 들어주며 집안 살림은 물론이고 아기까지 기르느라 많은 희생을 하면서 사는 천사 같은 남자로 소개하고 있다.

전신마비장애우 구족화가 임형제 씨를 다룬 ‘아버지의 정원’편에서는 사고로 장애우가 되면서 한때는 모든 꿈을 접었고 타인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시시콜콜하게 묘사한다. 음식도 먹여주어야 하며, 파리나 모기가 성가셔도 쫓을 수 없고, 화가면서도 화폭의 위치 변경이나 물감하나 혼자 힘으로 이용 할 수 없는 불쌍한 사람이라는 점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부모님은 아들을 위해서 사고 후 17년째 24시간을 매달려 힘겹게 살아간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자신이 하던 일도 포기하고 아들을 위해 빚까지 얻어서 야산을 정원으로 개발하고 있고, 어머니는 아들을 씻겨주고 먹여주고 입혀주느라 잠시도 자리를 비우기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KBS  
‘사랑하기 때문에’ 주인공인, 목발을 사용하는 유경화 씨(24세) 또한 어머니에게 모든 것을 의존해야만 하는 존재로 소개하고 있다. 경화 씨를 17년째 업어서 등교시키고 있으며 양말도 신겨줘야 하고, 화장실 갈 때도 도와줘야하고, 학교에서도 옆에서 일일이 수발을 해줘야만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가능하다고 얘기한다.

어머니는 자기 생활은 포기한 채 24시간 딸을 위해서 살고 있는 가여운 존재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을 전공하고 있는 경화 씨의 그림을 소개 할 때도 장애와 연관지어서 소개한다.
활동성이 부족해서 다른 꿈은 모두 포기하고 가만히 앉아서 할 수 있는 그림을 전공으로 택할 수밖에 없었으며, 장애로 일상생활은 불편하지만 그림 속에서만은 자유롭게 날아다닌다며 장애 때문에 생기는 불편만을 강조하기 바쁘다.
 
'워터보이 현이' ⓒ KBS  

인간극장에는 ‘인간’인 장애우가 없다

인간극장은 내내 장애 때문에 못한 것, 포기한 것을 속속들이 캐내서 보여준다. 마치 죽은 자식 나이 세듯 끊임없이 강조해 시청자들의 눈물샘만을 자극한다. 그리고 자녀의 장애 때문에 부모들은 자신의 일이나 꿈을 접어야 하고, 취미 생활이나 친구 등을 만나는 것도 사치일 만큼 24시간 수발을 들며 희생하는 존재라고만 얘기한다.

이렇게 장애에만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을 보고 시청자들은 감동을 느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장애우에 대한 거부감도 동시에 들 수 있다.
장애우와 가족들이 불쌍하기는 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며 장애우를 실제로 만나는 상황이 오면 한 인간으로 대면하기 보다는 도움을 주어야만 하는 부담스런 존재로 인식해 피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도와줄 가족이 없거나 있더라도 바빠서 여력이 없는 가족들과 사는 장애우들은 운이 없는 사람들이니 생활시설로 가서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도록 만들 수 있다.

이렇듯 인간극장은 사람들의 장애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부분을 장애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을 조명하는데 할애하느라, 정작 주인공이 가진 인간적인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이, 인간극장이 다루는 장애우들 삶에는 그 사람의 인생관이 어떠한지, 어떤 취미가 있는지, 어떤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지 같은 인간적인 모습이 없다. 사람은 없고, 다만 장애만 있을 뿐이다.
작성자심승보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문화센터 방송모니터단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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