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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문 의 영화읽기] 로버트 알트먼 유작영화 ‘프레리 홈 컴패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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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에 개봉한 ‘라디오 스타’를 보신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저도 그 영화를 소개해 드렸지요. 작지만 소중한 이야기처럼 그려지는 그 영화는 입소문을 타고 관객이 200만을 넘었습니다. ‘라디오 스타’에 감동받은 관객들은 대체적으로 착하신 분들이 많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과연 왜 그럴까요? 저는 그 답을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서에서 찾습니다. 이를 사자성어로 대별하자면, 단연코 권선징악(勸善懲惡)으로 요약됩니다. 수많은 설화와 야사에 얽힌 이야기들은 다시 이 주제와 연관됩니다. 여전히 우리 민족의 영화와 소설은 권선징악, 즉 선악의 이분법에 몰입되어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라디오 스타’와 유사한 주제를 가진 로버트 알트먼의 영화가 개봉되었습니다.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2주를 겨우 버티다가 문을 닫았지요. 아마도 그 2주가 연장된 것도 이 영화가 알트먼 감독의 유작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오늘 소개할 ‘프레리 홈 컴패니언(Prairie Home Companion, 2006)’은 거장의 죽음과 맞물려 영화 제목과 동일한 라디오 프로그램의 종언을 조용히 그려낸 수작입니다.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에 위치한 피츠제럴드 극장에서 진행되는 주말 라디오 쇼 ‘프레리 홈 컴패니언’은 30년 동안 그곳 사람들에게 위안과 웃음을 선사하는 공개프로그램입니다(‘라디오 스타’의 공개방송 장면과 매우 흡사하지요).

영화는 그 프로그램의 마지막 생방송 하루를 다루고 있습니다. 텍사스 주의 갑부가 그 영화관을 인수해 멋진 주차장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프로그램 진행자인 개리슨 케일러(실제로 이 영화에서 동일한 역할을 합니다)는 그날이 마지막 방송임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동안 출연했던 많은 가수들도 케일러와 함께 마지막임을 느끼지 못합니다. 주변에 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서로 옥신각신 다툽니다.

이 프로그램과 생사고락을 함께 한 이들은 오늘을 끝으로 뿔뿔이 흩어져야 합니다. 연출자는 여전히 그 날의 일정표를 손에 쥐고 진행자와 가수들 사이를 오가고, 오늘 처음 엄마를 따라 온 꼬맹이 가수(린제이 로한 분)는 끝까지 노래를 하지 않겠다고 우깁니다. 보디가드로 나오는 케빈 클라인은 노인 가수의 갑작스런 죽음을 처리하고 있고 무대 뒤에서 스탭들은 진행자와 농담을 하며 평소와 똑같이 분주합니다.

천사로 분한 버지니아 메드슨(‘사이드 웨이’의 멋진 여자배우를 기억하시는지요)만이 혼자 이 방송을 연장시켜보려고 노력합니다. 모든 가수들은 수 십 번을 더 불렀을 것으로 보이는 컨추리송과 포크송을 재미있게 열정적으로 노래합니다.

놀라운 것은 가수로 분한 많은 배우들이 실제로 노래를 한다는 것이지요. 그 중에서도 메릴 스트립의 노래는 영화의 압권입니다. 이 영화의 메릴 스트립의 연기를 보면서 저는 하느님이 참 불공평하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기가 막힌 천재 배우에게 또 다른 신의 목소리를 선사하시다니 말입니다.

이 모든 장면들을 천사는 응시합니다. 버지니아 메드슨이 입은 흰색 코트는 천사의 날개와 동일합니다. 더 이상 붙잡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해 어느 누구하나 불평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막막해진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없습니다.

이들의 관심사는 오직 그날의 공연에 있습니다. '내일 비록 세계의 종말이 오더라도....'로 시작되는 스피노자의 아포리즘은 바로 이 영화의 하루에 비견할 만합니다.
그들에게는 오늘만이 소중한 듯 보입니다.
바로 이점이 우리 영화의 권선징악적 구도와 틀립니다.

단지 이 영화는 지나간 시간과 기억에 대한 우리의 존경과 감사하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우리의 꿈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슬픔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사귀어 온 벗이 떠날 때의 아픔을 그리고 있습니다. 마지막이라는 것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안다는 것과 느끼는 것은 이처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프레리 홈 컴패니언'은 우리의 삶이 라디오 프로그램처럼 매일 진행되어야 할 생방송이며 오늘의 끝을 시작으로 내일이 다시 진행됨을 암시합니다.

지나간 것은 아름답다
이제 문둥이 삶도 아름답다
또 오려는 문드러짐도 아름답다


한센병으로 돌아가신 한하운 시인의 싯구절입니다. 처절한 삶을 사셨으면서도 여전히 삶을 관조하는 시인의 회상이 담긴 내용이지요. 새해 들어 시작과 끝을 준비하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모든 분들의 과거가 아름다울 수는 없지만 지나간 것에 대한 아름다움을 간직하려는 여유가 생겨나기를 기원합니다. 저 또한 이 글을 빌어 제가 개인적으로 속했던 정신과 식구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Show Must Go on! 건강하십시오.

작성자이영문 (아주대학교 정신과 교수)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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