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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장서가에서 뽑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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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합

  한창훈은 저널리즘으로부터 전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솔 출판사)와 <가던 새본다>(창작과비평사)로 섬과 바다의 작가라고 호명받았다. 어김없이 <홍합>에서도 질척한 갯벌향이 물씬 풍긴다.

  전남 여수에 자리잡은 홍합공장을 주무대로 한 소설의 배경 속에는 여성 노동자 아줌마들이 왁자하게 살아가고 있다. 문체의 세련됨, 환각과 소비풍경의 이미지 그리고 존재의 시원으로의 회귀라는 90년대 소설의 주류적 흐름과는 인물 성정부터가 범상치 않다.

  그렇다고 <홍합>이 위와 같은 현상을 역류시켰던 80년대 민중소설의 노동자 계급의 당파성을 주창하지도 않는다. 싱겁기까지 한 표현을 하자면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그저 그런 사람들은 그저 그만한 연민으로 그럴싸하게가 아니라 그저 그렇게 (편하게) 그려 놓았다.

  '문학은 인간학이다‘라는 명제에 그 어떤 경향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면 한 쪽으로의 극단적 편향은 문학에 대한 조사(弔詞)이자 소설적 인간이 살과 뼈가 없는 해골의 얼굴일 것이다.

  한창훈은 일단 자연스런 능청과 입담 걸쭉한 해학으로 생활의 구체성을 담아냄과 동시에 그의 문학적 인간의 얼굴을 펄펄 살아나게 한다는 점이 최고의 미덕이다.

  또한 한국 문학사의 저변에 깔린 토속적 에로티시즘을 한창훈만의 독특한 문체로 소설의 맛깔스런 재미를 선사한다. 그래서 한창훈의 작품세계의 눈은 김홍도의 민중적 사실주의와 신윤복의 풍속 에로스가 역사를 거슬려 기이한 인연을 맺었다고 할 수 있는 당대의 만화경이다. 고통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당대 민중들의 희로애락과 자연적 욕구에 대한 건강한 분출을 농담 짙은 묵(墨)으로 한 시절의 터널을 소설이라고 하는 역마로 통과시킨다.

  그리고 터널을 빠져 나오면 홍합공장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키 작은 풀꽃이 바람에 흔들리던 속울음 마냥 독자들 가슴엔 어느 새 말 못할 연민이, 훌쩍 훌쩍 피어난다. 이 땅을 살아갔던 평균적 인물들의 눈부신 삶에 대한 동병상련이자 삶이란 모름지기 사람의 추악(醜惡)까지 포함하는 숭엄성임을, 이를 포착해내는 민중적 생명력에 대한 경외감일 것이다.             <한창훈, 한겨례 신문사/7천원>

 

21세기의 대화
 
  억겁의 바닷물결 위에 은빛 도장을 찍는 월광에 역사적 한 개인이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한다. 역사의 문맥을 거두절미하는 내용 왜곡이 한 당파의 이익을 위해 극단의 시대를 조장하는 파시즘의 땅에서는 달빛만이 그들의 천길 낭떠러지 고통을 교교히 비출지 모른다. 달빛이 스미는 곳은 다름 아닌 감옥의 창살이기도 하고 망명의 땅이기도 하다.

  사슬의 육에는 정신의 자유와 교직하며 저 망망대해를 연모하는 폭포의 절정을 토해냄을 선대이래, 역사는 한 개인의 영혼의 고행을 통해 보여준다.

  그 역사적 개인의 평균적 삶에 대한 열망은 신화이고자 하지 않지만 역설적으로 시대의 엄중함을 핑계삼아 역사는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극단의 시대가 낳는 아이러니이자 왜곡된 역사의 문맥이 찾아내고자 하는 진리는 달빛처럼 외로이 빛난다는 자연의 가르침일 수 있다. 송두율 또한 저 망명의 땅에서 월광에 비친 망망대해의 자유이자 그 바다에 은빛 도장을 찍는 차가운 이성이다. 그의 글은 동서양 이론의 바다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해박함, 명료한 분석과 면밀한 실증 그리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불순한 내용 왜곡의 문맥을 투명하게 드러낸다.

  공시적인 당대비편과 통시적인 역사비평의 결합을 이루어내는 <21세기의 대화>의 산모는 지적 성실함과 극단의 시대를 돌파하고자 하는 한 지성인의 치열한 고뇌이자 어둔 하늘을 비추는 월과의 고독한 빛, 이 싸늘하도록 따뜻하고자 하는 모국 사람이 빚어내는 또 하나의 역설이다. 극단의 시대가 배타할 수밖에 없는 신화라고 후대는 기록할지 모른다.          <송두율, 한겨레신문사/8천원>

 

글/ 이재필 (논장서적 대표)

작성자이재필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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