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 장애 불구, 신기의 연주 선보인 라운 소사 내한 연주회 열려 > 문화


오른손 장애 불구, 신기의 연주 선보인 라운 소사 내한 연주회 열려

문화마당 세계의 장애예술가, 황금의 왼손, 피아니스트 <라울 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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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으로 장악하는 88개의 건반

  그 이름 보다 ‘황금의 왼손’으로 먼저 기억되는 라울 소사(Raoul Sosa)의 피아노 리사이틀이 지난 6월 12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 열렸다.

  처음 그의 내한 공연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내는 자못 야릇한 호기심과 설레임에 사로잡혀 있었다. 왜냐하면 피아노를 치고 가르치는 한 사람의 직업인이기에 앞서 나 또한 소아바리를 앓아 양쪽 다리는 물론이고 약간의 왼팔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성공적인 음악가로서 활동하던 중 1979년 불의의 사고로 오른손 손가락의 기능을 잃게 됐으나 이를 훌륭하게 극복한 후 계속 피아노 연주자의 길을 가고 있는 라울 소사의 인생 역정은 남다른 관심과 경외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나의 개인적인 관심과는 달리 오른 손 장애를 가졌다는 연주자의 특성이 애호가들의 흥미를 돋우지 못한 때문인지 아니면 요즘같이 어려운 경제 사정이 반영된 탓인지 그날 객석에는 빈자리가 많이 눈에 띄였다.

  나는 객석에 낮아 초조하게(?) 그의 연주를 기다렸다. 드디어 그가 무대에 가로놓인 피아노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연주를 하기 위해 건반 위에 한 손으로 올렸을 때 객석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첫 곡은 바흐와 바이올린 곡으로 작곡한 것을 브람스가 왼손만을 위한 피아노 곡으로 만들었다는 샤콘느 라단조였다. 첫 곡이 끝나갈 무렵 화음과 멜로디는 물론이고 아르페지오와 트레몰로, 그 밖에 전체 건반을 장악하는 솜씨는 거의 신기에 가까웠다.

  라울 소사는 경이로운 음악적 재능으로 피아니스트로서 뿐만 아니라 지휘자, 작곡자 등의 영역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며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뛰어난 음악가이다. 신기에 가까운 음악성과 완벽한 무대로 세계 음악계를 열광시키면서 비평가들로부터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음악인 중 한명’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그이다.

  피아노 연주자로서는 거의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오른손 장애라는 불행이 음악가로서의 그의 길을 막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 때부터 왼손만을 사용하는 피아노 연주에 자신의 전 인생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그는 신체적 장애를 훌륭히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한 손만 사용하는 놀라운 피아노의 기교를 개발하여 지독하게 어렵게 작곡된 곡들도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연주해내고 있다. 그는 이렇게 타고난 음악성과 노력으로 세계 음악계의 정상급 연주자 중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는 연주자로 자리잡게 되었다.


 절도 있는 연주자세 잃지 않는 위대한 스승

  그는 몬트리올의 세인트 레너드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재직하면서 많은 정상급 오케스트라들도 객원 지휘하고 있다. 이미 10대 초반부터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들도 실내 악곡들을 작곡하기 시작했으며, 자신의 고향인 아르헨티나에서 ‘히브릭 소사이어티 공쿠르’와 ‘쥬네스 무지칼 콩쿠르’에서 우승한 그는 청년 시절에 ‘마리아 카날스 콩쿠르’, ‘올리비에 메시앙 콩쿠르’, ‘쇼팽 콩쿠르’와 ‘반 클리번 콩쿠르’ 등에서 우승과 입상을 하면서 국제 음악계에 등장하게 되었다.

  세계 곳곳의 많은 방송국들로부터 자주 초청 연주회를 갖고 있는 그는 1978년 캐나다 음악협회가 수여하는 최우수 실황음악회의 주인공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같은 해 녹음한 슈베르트 전곡 음악은 비평가들로부터 열정적인 찬사를 받았다. 최근에 발매된 왼손만으로 연주한 CD를 통해서도 그의 탁월한 음악성과 테크닉을 확인할 수 있다.

  1990년과 1991년 연속해서 일본과 중국에서 순회 연주회를 가진 그는 그때 일본의 비평가들로부터 ‘황금의 왼손으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그는 현재 몬트리올 음악원 교수로 재직중이며, 세계 곳곳에서 개최되는 페스티발과 콩쿨에서 연주자로, 지도 교수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날 연주에서 그는 펠릭스 불루멘펠트의 연습곡 op 36, 막스 레게의 네 개의 특별한 연습곡, 고도프스키가 쇼팽의 원곡을 왼손만을 위해 편곡한 네 개의 연습곡, 알렉산더 스크리아빈의 서주와 야상곡 op 9번 외에 라울 소사 자신이 왼손 연주를 위해 편곡한 파가나니 주제에 의한 카프리치오소, 스트라빈스키의 오케스트라곡을 편곡한 불새 등을 연주했다.

  그는 시종 오른 팔을 무릎에 올려놓고 건반에서 눈을 떼지 않는 자세로 연주를 했다. 그것은 대부분의 다른 연주자들이 화려한 연주 포즈를 구가하는 것과는 대비되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절도있는 몸짓과는 달리 한 곡씩 연주가 끝날 때마다 객석의 열기는 점점 더 높아져 갔다. 뿐만 아니라 매번 청중들이 앉아 방향을 따라 일일이 몸을 돌려가며 답례하는 그의 모습에서 겸허한 연주자의 일면을 읽을 수 있었다.

  뜨거운 기립 박수와 함성에 대한 답례로 그가 세 번째 앵콜곡을 연주했을 때 나는 ‘오늘 이 연주회에는 그의 음악을 들을 마음의 준비가 된 사람들만 왔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처음 연주회장에 들어와서 느꼈던 빈 자리에 대한 섭섭함을 지웠다. 아울러 좋은 연주자와 청중이 음악을 통해 어떻게 교감할 수 있는가를 눈으로 확인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내 기억에는 그 동안 피아노 공부에 대한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나 자신의 게으름 보다는 내심 왼팔 장애에 책임을 떠맡기고 자학하고, 체념하고 합리화해버린 경험들이 숱하게 쌓여있다. 나는 하필이면 왜 이렇게 어려운 피아노 치기를 시작했을까, 혹시 자고 일어나면 거짓말처럼 왼팔이 완전해지는 방법 같은 건 없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 적도 있었다.

  나는 지금도 라울 소사의 피아노 연주를 듣던 그날 밤을 꿈처럼 기억한다. 간혹 도저히 믿기지 않는 어떤 사실을 보았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마법이라고 한다. 그날 연주를 통해서 그는 내 마음에 단단히 마법을 걸어놓고 가버렸다. 자칫 회의와 좌절의 늪에 빠져 버릴 수도 있었을 불행을 극복해낸 위대한 스승의 모습으로.


글/ 심성은 (빗장을 여는 사람들 회원, 피아노학원 원장)

작성자심성은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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