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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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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요? 올해 스물여덟 살이에요.

집은 한강이 보이는데 있어요. 집에 가서 큰 창문으로 보면 강 가운데를 기차가 뱀처럼 꼬리를 흔들며 달리는 모습이 보여요. 그 집에는 아버지 어머니가 살아요. 누나는 시집가서 따로 살아요. 그런데 지금 엄마는 새엄마예요. 나 낳자마자 친엄마는 죽었어요. 누나가 나를 길러줬어요. 누나가 나를 아홉 살까지 길러주고 시집가버렸어요. 그래서 나는 나 같은 정신지체 장애인들이 모여 있는 특수학교에 가야 했어요.

학교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했어요. 그 다음에는 다른 특수학교에 갔는데 그 학교에서는 일 년 밖에 있지 않았어요. 사고가 나서 나는 학교를 떠나야 했어요. 어느 날 내가 학교 담벼락에서 떨어졌어요. 갑자기 친엄마가 보고 싶어서 담을 넘다가 떨어졌어요. 그래서 다리가 부러지고 많이 아팠어요.

   
   
아버지가 학교에 찾아와서 집에 가자고 해서 아버지 집에 갔어요. 집에 갔는데 새엄마가 학교에 있지 왜 집에 왔냐며 막 야단쳤어요. 밥도 주지 않고 라면만 줬어요. 아버지도 내가 뺀질이 짓 한다고 맨날 야단만 쳤어요. 그래서 집에 있기가 싫었어요. 아버지 어머니가 괴롭히니까.

그리고 새엄마가 무당이에요. 그러니까 내가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새엄마가 맨날 비나이다 비나이다 그러는데 어떻게 집에 있을 수 있겠어요? 내가 아버지 집에 있을 때는 할 일이 하나도 없으니까 하루 종일 텔레비전만 보고 있었거든요. 그랬더니 텔레비전만 본다고 새엄마가 때리질 않나, 어떤 때는 아버지가 내가 말 안 듣는다고 때리고, 그래서 집에는 있기가 싫었으니까 집에서 도망 나왔지요.

집을 나왔는데 갈 데가 없으니까 서울역으로 갔어요. 서울역에는 그냥 잠자러 갔어요. 잠은 지하도 바닥에서 자고 낮에는 직장 알아보러 다녔어요.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녔어요. 그러다가 착한 아저씨 만나서 신설동에서 학원 전단지 뿌리는 일을 했어요. 한 달 월급으로 삼 만원을 받았어요. 그 일을 일 년 반 동안 했어요. 잠은 그냥 서울역 입구 지하도에서 잤어요. 추워서 이가 덜덜 떨려도 그냥 옷 덮고 잤어요.

그 다음에는 술집에서 일 했어요. 같이 잠자는 아저씨가 겨울에 바람 많이 부니까 바람 불지 않는 데서 잘 수 있는 데를 소개해준다고 해서 따라가서 술집에서 일 했어요. 거기서 컵 닦고 청소하고 화장실 치우고 그랬는데 주인이 월급도 주지 않고 부려먹기만 했어요. 잠은 술집에서 잘 수 있어서 좋았지만 월급을 주지 않으니까 내가 나와 버렸어요.

그 다음부터는 갈 데가 없으니까 하루 종일 지하철을 타고 계속 돌았어요. 밥은 꼬지해서 먹었어요. 꼬지가 뭐냐고요? 사람들에게 돈 달라고 하는 거예요. 어느 날 낮에 내가 술을 먹었거든요. 그런데 배가 많이 고팠어요. 어질어질 하고 금방 쓰러질 거 같아서, 배가 너무 너무 고프니까 그 짓을 한 번 해봐야겠다는 용기가 생겼어요. 그래서 지하철을 타고 사람들한테 장애인인데 도와주세요. 한 푼 보태주세요, 라고 구걸해서 밥을 사먹었어요.

잠은 계속 서울역 입구 지하도에서 잤죠. 그런데 거기서 잠을 자면서 사람들한테 많이 맞았어요. 코피가 터지고 이빨이 부러졌어요. 서울역 입구 지하도에는 대장이 있거든요. 대장이 내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막 때렸어요.

어느 날은 내가 장애인이라고 만만히 보고 대장도 아닌 사람들이 나에게 막 발길질을 했어요. 그래서 잠자는 곳을 을지로 입구 지하도로 옮겼거든요. 그런데 거기서도 많이 맞아서 다시 동대문운동장역 지하도로 옮겨가서 잠을 잤는데, 사람들이 나한테 꼬지 하라고 강요하질 않나, 가서 돈 벌어 오라면서 맨날 때리는 바람에 오래 있을 수가 없었어요.

나도 사람이니까 맨날 맞고만 있을 수 없으니까 어떤 날은 내가 술 먹고 덤비는 날도 있었어요. 술을 막 먹고 나도 괴로우니까 건드리지 말라고 사람들한테 막 덤볐어요. 그렇게 치고 박고 싸움도 하게 되고 그러니까 거기도 못 있게 되고, 이번에는 서울대입구역에 가서 잤어요. 낮에는 역 대합실 의자에 앉아 있었어요. 배고프면 쓰레기통도 뒤지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빵 하나 사달라고 그래서 돈 주면 빵 사먹고 그랬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역에 있는 의경들한테 잡혀서 방범수사대에 끌려갔어요. 어떤 여자가 대합실 만남의 장소에서 지갑을 잃어 버렸는데 내가 훔쳐갔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끌려가서 엄청나게 많이 두드려 맞았어요. 의경들이 내가 훔치지 않았는데 훔쳐간 지갑 빨리 내놓으라고 그러면서 막 때렸어요. 그런 일이 있어서 지금도 서울대입구역은 절대 안 가요.

갈 데가 없으니까 다음에는 사당역으로 갔어요. 낮에는 사당역 안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역 지키는 아저씨들이 대합실에서 못 자게 막으니까 밤에는 역 바깥으로 나가서 사당역 근처 주차장에 있는 의자에서 잤어요. 춥지는 않았어요. 그 때는 여름이었으니까 하나도 춥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날씨가 추워지면서 밖에서 잘 수 없으니까 사당역 바로 옆에 있는 낙성대역에 가서 잤어요. 역 대합실에 있는 의자에서 잤는데, 어떤 때는 역 지키는 아저씨들이 쫓아내고 셔터를 내려버려서 셔터 옆 땅바닥에서 그냥 잤어요.

그렇게 맨날 밖에서 자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눈 내리는 겨울하고 마음이 괴로울 때는 더 힘들었어요. 힘들 때는 어쩔 수 없이 술을 먹었어요. 하루에 소주 다섯 병을 먹고 잔 적이 많았어요. 소주 먹고 자면 하나도 안 추우니까 거의 매일 술을 먹고 잤어요. 돈이 없을 때는 술도 못 먹고 그래서 잠이 오지 않으니까 밤새 거리를 돌아다녔어요. 돈이 없으면 술도 못 사먹지만 밥도 못 먹었어요.

주머니에 돈 한 푼 없는 날은 그냥 굶었어요. 그러다가 배가 너무 고프면 꼬지 일을 했어요. 배가 너무 고픈데 집도 없고 부모도 없다고 사정하면 사람들이 천 원도 주고 백 원도 주고 그랬어요. 물론 돈을 안 주는 사람이 더 많았지만, 구걸해서 주머니에 돈이 생기면 그걸로 밥도 사 먹고 술도 사먹고 양말도 사고, 벌이가 좋은 날에는 오락실에 가서 놀기도 하고 그랬어요.

구걸해서 번 돈은 그렇게 다 까먹었어요. 옷은 안 사 입었어요. 빨래를 할 수 없으니까 옷이 더러워지면 쓰레기통에 버리고 딴 옷으로 갈아입었어요. 서울역 지하도에서 잘 때 어떤 아저씨가 가르쳐줬어요. 미아리에 있는 성가병원에 가면 옷을 그냥 나눠준다고, 그래서 옷이 더러워지면 거기 가서 새 옷으로 갈아입고 왔어요.

참, 나도 들고 다니는 가방이 있었어요. 옷 중에서 좋은 옷은 더러워도 버리지 않고 가방 속에 넣어 두었거든요. 가방 속에는 옷뿐만 아니라 칫솔도 있고 수건도 있어요. 그런데 가방을 찾을 수가 없어서 속상했어요. 가방 봉천동에 있는데 내가 찾으러 갈 수 없었어요.

내가 사당역에 있을 때 어떤 아저씨가 같아 가서 자자고 해서 따라 갔는데 좁고 지저분한 방이었어요. 거기다가 가방을 놔뒀어요. 내가 가방을 왜 못 찾으러 갔냐면 내가 빵과 콜라를 먹지도 않았는데 방 앞에 있는 가게에서 나한테 자꾸 외상값을 달라는 거였어요. 내가 안 먹고 그 아저씨가 갖다 먹었는데 가게에서는 자꾸 나한테 외상값 팔천 오백 원을 갚으라고 얘기하고 조르는 거였어요. 그래서 돈이 없으니까 가방을 못 찾았어요.

잘 데가 없으니까 땅바닥에서 자면 간혹 집 생각이 날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새엄마가 있는 집에는 가고 싶지 않았어요. 대신 아버지가 보고 싶으면 어쩌다 한 번씩 집에 전화했어요. 전화해서 아버지 어떻게 지내세요, 라고 물어봤어요. 그러면 아버지는 어디 아프지 않느냐고 얘기해요. 그러면서도 집에 들어오라는 말은 하지 않았어요.

실은 내가 진짜 보고 싶은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라 시집간 누나였어요. 아파서 누워 있을 때는 누나가 많이 생각났어요. 누나가 정말 보고 싶은데 아버지가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지 않아서 전화를 걸 수 없었어요. 내가 누나 전화번호를 가르쳐달라고 하면 아버지는 시집가서 잘 살고 있는 애 걱정 끼치지 마라며 절대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 어떤 날은 누나가 너무 보고 싶어 하루 종일 누나 생각만 하며 지내기도 했어요.

아무튼 그렇게 서울에서 몇 년을 떠돌다가 전철을 타고 수원역으로 가게 됐어요. 수원역에 왜 갔냐면 역을 새로 지어서 깨끗하고 또 역 안에 백화점과 극장이 있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구걸을 하려면 어쨌든 사람들이 많아야 하니까 수원역으로 간 거였어요. 그리고 또 수원역에는 아는 아저씨들이 하나도 없으니까 그래서 돈을 뺏길 염려도 없으니까 거기 가서 살기로 한 거죠.(계속)

작성자이태곤 기자  a352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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