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패 신부님이 말라깽이 스님을 만났을 때
노순택의 사진이 사람에게 (스물네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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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에겐 더 이상 물러설 자리에 없었기에 '한 치 물러섬'의 양보를 뉘라도 말할 처지가 되지 못했습니다. 스님은 이미 이천이년부터 국토순례와 삼보일배, 목숨 건 단식투쟁을 해 왔던 터였으니까요.
"사람이 죽어 가는데, 체면은 무슨 체면…"
쓰레기차 위에 올라가 젊은 진압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위정자에게 독설을 내뱉다가 몽둥이에 맞고 방패에 찍히는 '깡패 신부' 문정현 신부님과 천성산 도롱뇽 살리자고 인간의 편리를 가로막으며 생떼를 쓰는 '말라깽이 스님' 지율 스님은 정치하시는 높은 분들에겐 얼마나 '암'적인 존재겠습니까. 눈엣가시도 저런 눈엣가시가 따로 없을 겁니다.
저 눈엣가시들이 몸을 던져 말하는 바는 단지 '생명', 그 외침뿐입니다. 외침의 방식은 사뭇 달라도 그들은 일신의 안위 따위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온 몸을 던져 생명파괴를 막고자 한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사람 죽이는 전쟁과 도롱뇽 죽이는 전쟁같은 개발공사가 닮은 것처럼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무라도 박수를 치며 응원을 보내고, 서명에 참여하고, 동전 몇 푼을 통에 넣을 수는 있습니다. 우리의 월급봉투에서, 우리가 구입하는 거의 모든 물건값에서 '자동으로' 빼내간 세금으로 엉뚱한 돈잔치를 벌이는 못된 위정자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는 길은 '아무라도 할 수 있는' 이 작은 참여로만 가능할 것입니다.
이천사년 칠월 이심삼일, 삼복더위 속 말라깽이 단식 스님을 깡패 신부님이 찾아갔을 때만 해도 스님이 다시 백일간의 저 지겹고 처절한 단식을 엄동설한 이천오년의 벽두까지 끌고 갈 줄은 몰랐습니다. 신부님도, 스님도 몰랐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몰라요. 다만 '있는' 생명을 '있도록' 싸울 뿐…
다만 '있을'생명을 '있게 하도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할 뿐…
노순택 (사진가) http://nohst.simspace.com
작성자노순택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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