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불온한 꿈
노순택의 사진이 사람에게 (스물여덟번째)
본문
두 개의 꿈을 꿀 수 없기에 / 오늘도 간절한 마음으로 / 우리의 싸움이 이기는 날 / 그 날을 위해 고향을 지킨다
올해 일흔한 살 잡순 홍남순 할머니는 스물네 살에 팽성으로 시집을 왔다. 남편과 바다를 메워 죽을똥 살똥 다 싸가며 땅을 일궜다. 오남매를 키워 시집장가 다 보내고 살아온 것도 그 땅 덕분이었다. 한낮의 땡볕 아래서 대추리 미군기지 철조망 옆 밭에 팥을 심던 홍남순 할머니는 "미군놈들 기지확장 문제 때문에 이 나이에 죽을 맛을 다 본다"며 울먹거렸다.
칠십 평생을 땅만 일구며 살아온 조창목 할아버지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팽성 도두리 벌판에서 주최한 평화미사 도중 복받쳐 오르는 설움을 눈물로 토해냈다.
여든여덟 살 잡순 조선례 할머니는 해방 뒤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대규모로 확장된 기지에 밀려 집과 땅을 빼앗겼다. 미군 불도저는 이주할 틈도 주지 않고 논밭을 짓이기고 담을 허물었다. 무서워서 오들오들 떨기만 했지, 한 마디 대꾸 할 줄 몰랐다. 할머니의 옛집 위에서 지금은 미군 비행기가 뜨고 내린다. 지금 대추리는 진짜 대추리가 아니다. 밀리고 밀려와 가까스로 터를 잡은 가짜 대추리다. 진짜 대추리를 그리는 할머니의 꿈은 미군을 섬기는 이 땅에서 불온하다.
강제이주가 할퀸 50년 전의 상처가 아직 남아 있는데, 또다시 떠나란 말인가. 미군을 위해? 평택 팽성읍 대추리 농민들은 K6미군기지 입구에 자신들의 불온한 꿈이 담긴 팻말을 세워두었다.
노순택 (사진가) http://nohst.simspac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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