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달자 할머니는 이것만은 알았다. > 문화


김달자 할머니는 이것만은 알았다.

노순택의 사진이 사람에게 (서른두번째)

본문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에 사는 예순다섯 살 김달자 할머니는 지난 11월 18일 새벽밥을 지어먹고 부산행 버스에 올랐다.

김달자 할머니는 도대체 APEC이 뭔지 잘 몰랐다.
김달자 할머니는 APEC에 모인 21개국 정상과 통상장관들이 대체 뭔 얘기를 나누려고 하는지 세세하게 알지는 못했다.
김달자 할머니는 그런 걸 왜 부산에서 하는지 잠시 궁금했지만 굳이 알려고 하지는 않았다.

평생 땅만 파고 살아온 김달자 할머니는 농사에는 전문가였다.
씨앗을 뿌리고, 김을 매고, 거두고… 작은 볍씨가 다시 나락으로 손에 쥐어질 때까지 거쳐야 할 숱한 과정을 할머니는 훤히 꿰고 있었다.
자식 기르고, 삶을 이어오게 한 고마운 농사가 이제는 빌어먹을 짓이 됐다는 것도 알았다.
이렇게는 살 수 없어 한 많은 인생을 끊어버린 젊은 농사꾼들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APEC이 뭔지는 잘 모르지만, 농사꾼들 대책 없이 죽이는 짓거리라면 하덜 말아야 하리라.

할머니는 새벽밥을 지어먹고 버스에 올라 부산에서 내렸다. 초겨울 바람이 찼다. 농민들을 막아선 시커먼 갑옷의 젊은이들은 때려죽이기라도 할 듯 매서웠다. 겁나는 집회를 마치고 할머니는 다시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할머니는 경찰의 뭇매를 맞고 죽은 한 농민의 소식을 들었다.
복잡한 세상에서 아는 게 별로 없는 김달자 할머니였지만, 이것만은 알았다.
사람이라면, 이래선 안되는 법이라는 걸.

노순택 (사진가) http://nohst.simspace.com
작성자노순택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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