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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문 의 영화읽기] 영화 ‘오래된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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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세상이 변해간다는 것을 언제 느끼시나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머리에 문득 새치가 늘어난 것을 보았을 때인가요? 아니면 서재에 빛바랜 책 속에 수십 년 전 메모를 우연히 발견한 때인가요? 어느 영화에서 여주인공은 먼지를 보며 세월을 느낀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그런 세월에 대한 영화입니다.
1980년대 광주를 배경으로 이념과 사랑에 대한 우리의 연민을 이야기하는 영화, ‘오래된 정원’입니다. 2000년에 나온 원작이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7년 이상이 흘렀고 영화 속 배경인 광주민주화운동은 벌써 27년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원작자인 황석영 선생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고, 임상수 감독은 그 특유의 여성적 시각으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페미니즘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 영화 또한 한윤희(염정아 분)라는 여성의 시각에서 1980년대를 회상합니다. 원작에서는 오현우의 남성적 시각과 한윤희의 여성적 시각이 동일하게 배치되고 있지만 영화에서는 오현우의 시각이 없습니다. 다분히 임상수 식의 각색이라고 봅니다.

군부독재시절 20대 사회주의자였던 오현우(지진희 분)는 시국사건의 수배자로 도피처를 찾던 중 한윤희와 인연을 맺게 되고, 6개월을 갈뫼라는 곳에서 보내게 됩니다. 동료들의 구속에 현우는 갈등하다가 결국 서울로 떠나고 시국사범으로 잡히게 됩니다. 무기 징역수로 확정된 뒤 17년을 교도소에서 보내고 석방된 오현우는 암으로 투병하다 죽은 한윤희와의 추억여행을 떠나게 되고 그들의 딸인 은결이를 만나게 됩니다. 젊은 날의 자신과 연인 윤희를 떠올리며 영화는 끝납니다.

매우 진부한 구조지만 소설이 재미있는 것(그래요 재미라고 합시다. 윤희의 독백에 많이 울었던 2001년도 호남선 열차 속의 저를 기억합니다)은 황석영 글쓰기의 진품인 밀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소설이 아닌 생생한 체험기처럼 소설 속 주인공은 우리에게 와 닿아 있습니다.

밀도란 다름 아닌 소통이기 때문입니다. 임상수의 영화는 결코 소설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그런 한계를 임상수 감독 또한 인정하고 있구요. 자신은 다른 버전의 ‘오래된 정원’이라고 너스레를 떱니다. 확실히 딸 은결이의 모습은 그렇습니다. mp3 귀에 꼽고 화장기 있는 반항기 가득한 고등학생의 표정은 원작에 없는 것입니다. 다시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가슴에 품고 있던 윤희의 사진 한 장을 들고 갈뫼를 찾은 오현우에게 모든 삶은 17년전 그대로 정지되어 있습니다.

부동산 대모가 되어버린 어머니(소설에서는 누나)와 너무나 변해버린 서울의 모습은 낯설지만 갈뫼는 시간이 정지된 채 그대로 있습니다. 윤희가 남긴 그림에는 까까머리 고등학생인 현우와 암으로 온통 머리털이 다 빠져버린 윤희의 자화상이 돌아가신 윤희의 아버지와 딸 은결이 함께 숨 쉬는 공동체로 살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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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가 의도적으로 배제했던 사회주의는 다름 아닌 아버지의 유산이었지요. ‘반복강박(repetition compulsion)’이라는 인간 마음의 방어기제가 있습니다.

인간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 눈을 빤히 뜨고도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 노래 부르는 중에 똑같은 대목에서 가사 까먹는 것, 틀린 문제 또 틀리는 경험, 역사가 반복되는 것, 피가 물보다 더 진한 것. 모두 반복강박으로 설명이 되는 우리 주변의 일상들입니다.

윤희가 극도로 증오하던 사회주의자 아버지를 피해 선택한 삶, 수배중인 젊은 사회주의자를 사랑하는 일 또한 반복강박입니다. 인간이기에, 뜨거운 피가 흐르는 인간이기에 쿨(cool)해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만남 첫 날, 사회주의자라는 존재감으로 가득 찬 현우에게 윤희는 한 마디 툭 던집니다. “아 그래요. 사회주의자라도 밥은 먹어야지요?” 구속될 것을 훤히 알면서도 서울로 떠나는 현우를 배웅하면서 또 한 마디 합니다. “숨겨줘. 밥줘. 재워줘(사이) 몸줘. 네가 왜 가니 바보야”

영화의 백미를 꼽으라면 저는 단연코 엔딩 크레딧에 나윤선의 ‘사노라면’이 나오는 한윤희의 그림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사람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전적으로 조덕현 화백의 힘입니다.
이번 영화는 임상수 감독이 황석영 선생의 원작과 조덕현 화백의 그림에 의존한 협주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 대해 평자들은 사랑조차 허락되지 않던 1980년대를 주로 이야기합니다. 이념 때문에 자신의 사랑마저 용납하지 못했던 그 시절을 옹호합니다. 저는 그 시각이 편협한 이데올로기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유치함이라고 항변합니다.

극우든 극좌든 자신의 이념에 갇혀 사랑 따위(?)를 보지 못한 우둔함을 감싸기 위한 변명일 뿐이지요. 극 중의 대사처럼 인생은 길고 혁명은 짧습니다. 17년의 세월을 건너 현우에게 남은 것은 비천하게 변해버린 동료들의 삶과 윤희의 그림과 은결이가 있을 뿐이지요.

사람은 가도 사랑이 남는 법이고 세월이 아무리 무심히 지나도 사랑이 온전하게 흘러가는 法입니다.

또 봄날이 오고 있습니다. 건강하세요.

작성자이영문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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