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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이야기 어디로 가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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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역에서 내 자리는 커다란 텔레비전이 놓여 있는 곳 바로 앞자리였어요. 잠 잘 때만 빼고 나는 늘 거기 있었어요. 거기서 하루 종일 뚫어져라 텔레비전만 쳐다보고 지냈어요. 그러다가 앉아있는 게 힘들면 스르르 바닥에 누워서 잠을 잤어요.

누가 발로 툭 차서 눈을 뜨면 공안 아저씨의 무서운 얼굴이 보였는데, 아저씨는 늘 나가라고 고함쳤어요. 그러면 밖으로 나가 역을 한 바퀴 빙 돌았어요. 그런 다음 다시 그 자리에 돌아와 앉아 있었어요. 왜냐하면 나는 할 일이 없었어요. 갈 데도 없었어요. 그래서 늘 그 자리에 앉아 있었어요.

내가 처음 수원역에 왔을 때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거든요. 그랬는데 재수 없게 내가 수원역에 온 그 해 겨울이 너무 많이 추워서 나는 병에 걸렸어요.

바람이 쌩쌩 부는데 잠을 바깥에서 자야 해서 나는 늘 콜록콜록 기침을 해야 했어요. 눈이 내리는 겨울인데도 역 안에서는 절대 잘 수 없었어요.

막차가 지나가면 공안 아저씨들이 역 안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밖으로 쫓아냈어요. 그러면 나는 갈 데가 없으니까, 역 바로 옆에 커다란 백화점 주차장이 있거든요. 거기 가서 웅크리고 자야 했어요.

이불이 없어서 맨날 신문지만 덮고 자니까 소주를 두 병이나 먹고 자도 아침이면 늘 몸이 고드름처럼 꽁꽁 얼어붙었어요. 수원에는 지하철이 없잖아요. 그래서 서울처럼 지하철에서 바람을 피할 수도 없었어요.

나는 늘 콜록콜록 기침을 하는 몹쓸 병에 걸렸어요. 지긋지긋한 겨울이 지났지만 나는 몸이 너무 많이 아팠어요. 왼쪽 다리가 썩어서 발을 질질 끌며 걸어야 했어요. 그래서 꼬지 일도 하지 못하고 그냥 텔레비전 앞에 앉아만 있어야 했어요. 사

정을 모르는 윤씨 아저씨가 너는 왜 맨날 새처럼 꾸벅꾸벅 졸기만 하느냐고 타박을 줬지요. 나는 그냥 웃을 수밖에요. 왜 그런지 모르지만 실제로 잠을 자도 자꾸 자꾸 잠이 쏟아져서 미칠 지경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이었어요.

수원역에 와서 알게 된 친구 성준이가 나를 화장실로 데려갔어요. 따라갔더니 성준이가 호주머니에서 빵과 우유를 꺼내 “배고프지 먹어” 그러면서 내밀었어요. 성준이 말대로 배가 많이 고팠기 때문에 나는 빵과 우유를 받아들고 그 자리에서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어요.

그런 나에게 성준이가, “너 요즘 많이 아픈가 보다” 라고 물었어요. 나는 “응” 하고 대답했어요. “그러면 싸울 힘도 하나도 없겠네” 성준이가 작은 목소리로 또 물었어요. 나는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빵만 먹었어요. “짜식들이 요즘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내가 힘이 없다고 까부는 모양인데, 두고 봐, 내가 언젠가 한 번 본때를 보여줄 테니까,” 성준이가 바닥에 침을 찍 뱉으며 말했어요.

수원역에는 나 말고도 역에서 자는 사람들이 머리가 모자란다고 놀리는 친구가 또 한 명 있었거든요. 그 친구가 바로 성준이었어요. 나는 수원역에 온 지 몇 개월 밖에 되지 않은 신참이었지만 성준이는 수원역에서 생활한 지 사 년도 넘은 나보다는 한참 고참이었어요.

내가 수원역에 처음 왔을 때 어쩌다가 성준이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성준이가 “너 어디 나왔니” 라고 물었어요. 나는 사실대로 특수학교 고등부 다니다 말았다고 대답했어요. 그랬더니 성준이는 “나는 특수학교 전공과를 졸업했다”면서 “말하자면 대학교까지 나온 셈이지,” 라고 자랑하면서 뻐겼어요. 그러면서 성준이는 집에 있는 게 갑갑해서 나왔는데 이제는 엄마 아빠도 나를 찾지 않는다고 말했어요.

 “너도 마찬가지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갈 데가 없잖아, 나도 복지관에도 가봤고, 작업장에서도 일 해봤거든, 하지만 돈도 안 주고 맨날 부려먹기만 하고, 거기다가 바보라고 또 맨날 놀리기만 하잖아, 그렇다고 백날 집에 처박혀 있어봤자 할 일도 없고, 구박이나 당하고, 그러니 여기 나와서 사람 구경하고 사는 게 훨씬 낫지, 여기서는 돈도 벌고 술도 먹을 수 있잖아....”

이렇게 성준이는 나랑 똑같은 정신지체 장애를 가졌는데도 나보다 훨씬 더 말을 잘하는 친구였어요. 그리고 성준이는 수완도 나보다 훨씬 더 좋았어요.

성준이도 별 수 없이 전철을 타고 꼬지 일을 했거든요. 그런데 나 보다 더 불쌍해 보이는 것도 아닌데 돈을 나보다 훨씬 더 많이 벌었어요. 번 돈으로 수원역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밥도 사주고 커피도 사줘서 성준이는 노숙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짱이었어요.

특히 매일 밥을 사주니까 집 나온 꼬마들이 성준이 뒤를 개처럼 졸졸 따라다녔어요. 하지만 성준이는 나한테는 단 한 번도 밥을 사주지 않았어요. 예전에 화장실에서 딱 한 번 빵과 우유를 얻어먹은 게 전부였어요.

아 참, 깜빡했는데 한 번이 아니고 두 번 얻어먹었어요. 어제도 성준이가 또 나를 화장실로 불러서 빵과 우유를 줬거든요. 어제 성준이는 빵을 주면서 또 바닥에 찍 침을 뱉으며 말했어요. “어떤 짜식이 내가 형님 여자를 건드렸다고 소문내고 다니나봐, 김씨 아저씨가 그러는데 큰형님이 날 벼르고 있다네....,” 성준이가 말하는 큰형님은 수원역에서 사는 사람들의 총대빵이었어요.

매일매일 나타나지는 않지만 큰형님이 한 번 역에 나타나면 노숙인들이 모두 무서워서 벌벌 떨었어요. 큰형님은 부하도 있거든요.

언젠가 딱 한 번 큰형님이 밤중에 부하들을 데리고 나타나서 정씨 아저씨가 말을 안 듣는다고 화장실로 끌고 가서 때리는 걸 본 적이 있는데, 개 패듯 패서 정씨 아저씨 얼굴이 뭉개지고 이빨이 다섯 개나 부러졌어요. 그 후로 정씨 아저씨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몰랐어요. 그러니 성준이가 겁을 먹을 만도 했죠.

성준이는 이어 “나는 절대 안 그랬거든, 그런데 이것들이 내가 바보라고 무시해서 큰형님한테 꼰지른 것 같아, 이제 어떡하지,” 나는 그런 성준이에게 “아니면 됐지, 뭘 걱정하니,” 라고 무심하게 말했어요. 그런데 성준이가 정색을 하며 말하는 거였어요.

“그러니까 너가 바보지, 큰 형님이 내가 절대 안 그랬다고 해도 믿을 것 같니, 큰 형님 한테 한 번 찍히면 끝장이라는 걸 너도 잘 알잖아, 틀림없이 형님은 날 때리고 여기서 쫓아낼 거야, 그러면 어떡하지, 나는 이제 여기 아니면 갈 데도 없는데, 이제 와서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성준이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처럼 울상을 지었어요.

성준이가 그러나말거나 나는 열심히 빵만 먹었어요. 솔직히 나는 성준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어요. 그래서 더 이상 아무 말도 안했어요. 성준이가 그런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자리를 떴고, 그것뿐이었어요. 오늘 아침 밥을 먹으러 무료급식소에 갔는데 성준이가 꼬마들과 함께 속닥거리며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어요.

그러나말거나 나는 또 열심히 밥만 먹었어요. 또 밤이 됐어요. 역사 안에서는 절대 잘 수 없다고 말했죠. 그래서 나는 공안 아저씨가 쫓아내기 전에 알아서 기기 위해 신문지 몇 장을 손에 들고 늘 그렇듯이 주차장으로 가는 중이었어요. 요즘엔 돈이 없어서 소주도 사먹을 수 없었어요. 어떻게 맨 정신으로 밤을 보낼 수 있을까 궁리하면서 걷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나를 불렀어요.

뒤돌아보니까 성준이와 꼬마 두 명이 어둠속에 귀신처럼 서 있었어요. “너 이리 와 봐,” 성준이가 불러서 나는 성준이가 또 빵과 우유를 주려나보다 생각하고 “응 왜 그러는데,” 대답하고 선선히 성준이에게 다가갔어요. 그런데 내 생각이 틀렸나 봐요.

내가 성준이에게 다가서자마자 갑자기 꼬마 두 명이 양쪽에서 내 팔을 꽉 붙잡았어요. 꼬마라고 했지만 가출청소년이이니까 덩치가 나보다 훨씬 더 컸거든요. 나는 꼼짝없이 꼬마 두 명에게 붙잡혀서 개처럼 질질 끌려가야 했어요.

수원역 뒤쪽에 작은 공원이 있거든요. 내가 끌려간 곳은 바로 그 공원이었어요. 공원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가로등도 꺼져서 깜깜한 어둠만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어요. 나는 성준이와 꼬마들이 왜 나를 공원으로 끌고 왔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어요.

그렇지만 경황이 없는 중에도 성준이가 나를 공원으로 끌고 온 이유가 어렴풋이 짐작됐기 때문에 너무 무서워서 나도 모르게 이빨이 덜덜 떨렸어요. 내 멱살을 잡고 나를 땅바닥에 패대기친 뒤 성준이가 소리쳤어요.

 “니가 내가 큰형님 여자를 건드렸다고 소문내고 다녔다며,” “아니야 내가 안 그랬어,” 나는 울면서 대답했어요. “어쭈 이 자식이 거짓말 하네, 얘들아 이 자식이 소문내고 다니는 거 너희들도 들었지,” 성준이 말에 꼬마들이 고개를 끄떡끄떡했어요. “이 자식도 바보 주제에 나를 무시하네, 오늘 본때를 보여줘서 다시는 무시못하게 해야지, 애들아 패,”

성준이 말이 끝나자 사방에서 발길질이 날아 왔어요. 얼굴에도 가슴에도 무거운 쇳덩이가 내려 꽂혔어요. 살아오면서 맞은 매 중에 제일 많이 아팠어요. 나는 안간힘을 다해 “아니야 성준아 내가 그런 말 하지 않았다는 거 너도 잘 알잖아,” 라고 소리쳤지만 아무 소용없었어요.

나는 속수무책으로 쏟아지는 매를 맞아야 했어요.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미안해 내가 내일 아침에 빵하고 우유 사다 줄게,” 라는 성준이의 작은 목소리였어요.

그리고 그게 끝이었어요. 나는 가물가물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하얀 달을 봤어요.

거기 누나가 있었어요.
정말이지 누나가 너무 너무 보고 싶었어요.

작성자이태곤 기자  a352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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