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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의 성이여, ‘으랏차차’

차기작 준비 중인 영화‘핑크팰리스’의 서동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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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의 성 담론을 처음으로 제기한 ‘핑크팰리스’는 2년 전 개봉해서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독립영화다. 비록 남성 중심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영화에는 사회가 장애우를 바라보는 비뚤어진 시선과 장애우들의 자기주장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고 있다.

핑크팰리스와 관련된 자료를 검색 하던 중 알게 된 사실은 일반매체에서는 여러 곳에서 핑크팰리스를 만든 서동일 감독을 인터뷰한 기사가 눈에 띄였지만, 정작 장애 관련매체에서는 인터뷰 기사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마침 최근 서동일 감독이 두 번째 영화를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서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undefined           중요한 것은 장애우를 둘러싼 사회 환경

심승보(이하 심) : ‘장애우’에 대한 평소 서 감독의 생각이 궁금하다.

서동일(이하 서) : 나는 ‘장애우’가 몸이 불편한 사람, 사회적 권리와 의무에서 배제되어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심 : 사실 이 질문은 내가 영화감독을 인터뷰할 때마다 던지는 질문이다. 그런데 상업영화를 만드는 다른 감독들의 대답과 서 감독의 관점이 사뭇 다르다.

상업영화 감독들은 “장애우도 똑같은 인간으로 본다.”는 뻔한 대답을 했다. 그러나 서 감독은 장애우들이 처한 사회 환경에 주목하고 있어 역시 다르다고 느껴진다.

심 : 장애우 관련 영화를 만들면서 연구를 많이 했을 것 같다. 서 : 사실, 그렇지는 못했다. 당시만 해도 장애우의 성을 다룬 영화나 자료가 별로 없었다. 국립재활원에서 하는 성상담 치료 자료 정도뿐이었다. 그리고 영화를 만들기 전에는 워낙 다른 분야에서 일했기 때문에 개인적인 네트워크도 부족했다. 그래서 장애우의 성에 대해서 얘기해주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만났다.

서 감독과 같은 독립영화 감독들은 많은 장애우들과 현장에서 직접 만나 작업하면서 장애우들의 현실을 피부로 체험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상업영화 감독들은 기껏해야 몇몇 장애우들을 만나보는데 그쳐 당사자들이 처한 다양한 삶의 현장을 보지 못한다. 때문에 사회 환경보다는 장애우 개인 문제에만 치중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장애우, 사회적 이미지에 큰 영향 끼쳐

심 : ‘핑크팰리스’에서 개인적으로 좋았던 부분이라고 생각되는 곳은 어디인가?

서 : 굳이 꼽자면 남성장애우들이 모여서 카섹스와 같은, 자신들이 한 성경험을 적나라하게 얘기하는 부분이다. 이를 통해 비장애우 남성들과 성의식이 전혀 다를 바 없음이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성장애우가 생리를 못하도록 남성호르몬제 투약을 받고, 나중에는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강요받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말하는 장면, 또 비장애우 남자라면 누구나 경험을 해보는 성관계를 오십이 다 되도록 한번도 못해본 동수 씨 이야기 부분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심 : ‘핑크팰리스’는 비장애우들이 장애우의 성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을 꼬집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장애우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서 그들이 지금 하고 있는 성생활과 하고 싶어 하는 성생활의 모습들을 균형 있게 얘기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장애우의 성이 다르지 않음을 인식시켜준 점이 좋았다.

동수 씨 편에서는 동수 씨가 서울에 오기 위해 25킬로미터를 전동스쿠터를 타고 도로주행을 해야 하고, 화장실에서 밤을 세며 10시간동안 충전을 하는 모습은 휠체어를 타는 나에게도 충격이었다. 장애우가 성적권리를 제대로 표현 못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동권 등 사회적인 환경 때문이란 것을 꼬집은 것은 무엇보다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심 : 개인적으로는 왜 동수 씨의 인간적인 모습보다 성에만 초점을 맞추었는지 의문이다. 서 : 영화가 동수 씨 한 분의 이야기였다면 동수 씨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들어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장애우들이 등장하는데, 그 분만 여러 모습을 보여주기는 어려웠다.

원래 편집본은 2시간이었기 때문에 동수 씨의 여러 가지 모습들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영화가 1시간 정도로 축소되면서 동수 씨의 다른 인간적인 모습들은 줄일 수밖에 없었다.

심 : 아쉽다. 동수 씨는 아름다운 언어를 말하는 시인인데 이런 인간적인 모습은 찾아 볼 수 없고 오십이 다 되도록 오로지 성만을 생각하는 시골의 무지한 장애우로만 보여진 거 같다.

미디어가 생산하는 장애우는 장애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인간적인 다양한 삶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미디어들은 장애우가 성공과는 관계없이 장애에만 갇혀서 사는 불쌍한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핑크팰리스 차기작 준비 중

심 : 장애우가 등장하는 기존의 영화들, 이를테면 ‘오아시스’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같이 장애우가 등장하는 영화들을 보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나?

서 : ‘오아시스’는 비장애우들이 장애우를 바라보는 폭력적인 시선을 꼬집는 영화라 의미가 있다고 봤다. 그 영화에 대해서 어떻게 자기를 강간한 사람을 사랑할 수가 있느냐며 불쾌해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안다. 개인적으로는 ‘오아시스’가 시도한 좋은 의도가 인정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분적으로 불편한 부분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감독의 고민이 많이 담긴 좋았던 영화라 생각한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장애여성의 캐릭터가 개성이 강하고 독특했다. 독립영화인 ‘아빠’도 여성장애우들이나 여성계에서 어떻게 아빠가 장애우인 딸을 강간할 수 있느냐며 많은 비난을 받은 작품이다. 하지만 나는 그 영화에서 감독이 아버지의 눈을 통해 장애우를 대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회에 대해 말하려 했다고 느꼈다.

심 : ‘오아시스’는 여성 뇌성마비장애우가 주인공인데 그녀는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저 방안에서 벽만 쳐다보거나 거울 장난으로 하루를 보내는 한심한 사람으로 나온다. 기존에 비장애우들이 갖고 있는 장애우의 부정적인 인식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을 강간하려는 남자를 사랑한다는 황당한 설정은 여성장애우의 이미지를 더욱 왜곡했다.

이창동 감독은 비장애우의 폭력적인 시선을 꼬집으면서도 한쪽으로는 왜곡된 여성장애우의 이미지를 확대 재생산해 냈다고 본다.

심 : 다음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고 들었다.

서 : 장애우의 성을 소재로 하여 이번에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를 만들고 있다. 다섯 편의 에피소드를 엮어서 옴니버스 영화로 만들고 있는데 시나리오는 이미 다 나와 있다. 제작비 관계로 지금 ‘러브MT’ 한편만 만들었다.

심 : 어떤 내용들인가?

서 : 먼저 ‘쉘위댄스’는 정신지체여성의 시선으로 남자들의 이중적인 성의식을 바라보는 내용이다. 정신지체여성들이 성폭행 대상이 되는 사회적 현실을 꼬집은 영화인데, 정신지체여성이 남성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려 할 때 갑자기 슈퍼우먼으로 변신하여 남자들을 오히려 혼내준 뒤 범인의 얼굴들을 보니 모두가 잘 알고 지내던 주변 남자들이라는 내용이다.

심 : 발상이 흥미롭다. 보통 정신지체여성은 남자들에게 당하는 피해자로 그려져 왔는데 반대로 남자들을 혼내준다는 설정을 했다니 여성들이 통쾌해할 거 같다.

서 : ‘으랏차차’는 척수장애우인 남성이 봉사자의 도움을 받아서 사랑하는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고 청혼을 하지만 여자는 남자를 결혼상대로 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이 밖에 ‘게임끝’은 뇌성마비장애우의 첫 경험과 이후의 성경험을 이야기하는 섹스다이어리 이야기다. 유일하게 촬영을 마친 ‘러브MT’는 데이트를 하는 장애우인 커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꼬집은 작품이다.

심 : ‘러브MT’는 인터넷에 가편집본을 올려놓은 것을 보았다. 장애우가 데이트도 마음 놓고 할 수 없는 유원지 주변의 편의시설을 꼬집는 것이 좋았다. 주인공 커플이 실제 장애우처럼 보이던데.

서 : 그렇다. 실제 장애우 커플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고, 내용은 우리 스텝 중 한 명의 경험담이기도 하다. 심 : 이 작품을 촬영하면서 겪은 어려움이 있다면.

서 : ‘핑크팰리스’ 때와는 달리 전문적인 촬영진을 동원했다. 그렇지만 부족한 제작비로 인해서 2박3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찍으려다보니 다양한 앵글을 못 잡았다. 열악한 제작 여건 때문에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심 : 조속히 제작 여건이 해결되어 좋은 작품이 나오길 기대한다. 서 감독처럼 장애우가 처한 사회적 환경에 주목하는 독립영화감독들이 상업영화계에 많이 진출했으면 한다. 그래서 장애우들이 눈물겨운 노력으로 장애를 극복하는 영화 대신, 장애우를 둘러싼 환경을 꼬집는 영화들을 많이 만들어서 장애우들이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영화도 이바지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성자심승보 (장애우문화센터 모니터 회원)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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