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br> 영화 ‘엄마’의 류미례 감독에게 > 문화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br> 영화 ‘엄마’의 류미례 감독에게

[이영문의 영화읽기]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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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포스터
오래전에 편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장애코드로 문화읽기를 운영하는 류미례 감독이었지요. 영화 속에 비친 장애인의 모습이 사실과 왜곡된다고 항의성명을 받았는데, 평소 정신지체 장애인들을 잘 알고 있는 류미례 감독의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웠다고 하더군요.

오늘에야 그 분께 답장을 합니다. 답장이 늦어 정말 미안합니다. 사실 편지를 받았을 때는 영화 상영을 놓친 뒤였고, 보름 넘게 미국에 있던 때라 어쩔 수가 없었지요. 귀국 후에 비디오방에 몇 차례 물어도 영화를 구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러저러 시간이 지나고 3월이 넘어서야 DVD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중 3인 아들과 함께 이 영화를 보는 기쁨이 있었네요. 가족이라는 울타리와 한계를 절실하게 보여준 영화로 저는 우선 평가합니다.

힘들게 구하고 쉽게(?) 본 영화 ‘사랑할 때 이야기 하는 것들’은 두 가지 흐름으로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연출자인 변 승욱 감독의 시각에서는 세상에 쉽지 않은 사랑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었고, 장애인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저도 포함이 됩니다) 이한위씨가 연기한 심인섭이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일 것입니다. 장애인을 자식으로 둔 어머니들이라면 인섭의 어머니(정혜선 분) 입장이었을 것이고요. 잠시 영화를 함께 보겠습니다.

죽은 아버지로부터 유산은커녕 은행빚만 5억을 짊어진 혜란(김지수 분)과 정신분열병을 20년 넘게 앓고 있는 형 인섭을 둔 인구(한석규 분)는 각기 짝퉁 디자이너와 허름한 동네의 약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들 다하는 사랑과 결혼이 이들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하지요.

흔히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의 허물과 상처마저 감싸야 한다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게 영 쉽지가 않습니다. 인구와 혜란은 때로는 자연스럽게 만나지만 사랑이 깊어질 상황이 되면 본능적으로 고슴도치가 됩니다. 사랑 따위에 빠져들 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끼며 서로에게 까칠(?)해집니다.

자신의 뜻에 따라 결정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가족내 고통이 영 달갑지가 않습니다. 지긋지긋한 빚이 싫어 결혼으로 도망가려는 여동생에게 혜란은 도드라진 한 마디를 던집니다. ‘애 지워. 애 떼라’고.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동생에게는 더욱이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고 돌아선 그녀의 눈에 흐르는 눈물의 의미가 아련하게 다가옵니다.

평소에 착한 동생이지만 인섭의 발병 앞에서는 서글픔과 분노를 겪지 않을 수 없는 인구 또한 세상이 원망스럽습니다. 그런 두 사람의 마음에 사랑의 강이 흐르고 이를 두고 어쩌지 못하는 두 사람의 갈등과 희망을 영화는 그리고 있습니다.

한석규, 김지수 두 배우의 탁월한 연기에 모두들 감동하지만 저는 이한위 라는 배우의 연기에도 탄복했습니다. 정신장애인의 모습을 탁월하게 잘 소화하고 있습니다. ‘활주로’ 테이프와 박카스를 집요하게 찾는 모습이나, 천진난만한 웃음, 돌아가신 엄마를 찾는 대사 등에서 이한위씨의 연기는 ‘뷰티풀 마인드‘의 ’러셀 크로‘보다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여기서 잠깐 류미례 감독이 궁금해 하시던 것을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정신과 전문의로서 영화 속 내용을 종합해보면 심인섭이라는 인물은 고등학교 때 정신분열병이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오랜 시간 정신분열병을 앓게 되다보면 학업의 기회를 놓치고 음성 증상에 의해 뇌의 기능이 퇴화되는 모습이 동반됩니다. 정신지체장애인처럼 보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영화에서 정신지체인을 비하한 것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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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의 한 장면. 인섭과 인구 형제가 지리산 정상에 올라 사진을 찍고 있다.  
오히려 저는 이 영화를 정신분열병을 앓고 있는 분들과 가족에게 보여주려고 합니다. 매우 사실적이고 차분하게 우리의 현실을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섣부른 희망과 낙관보다는 앞으로 더 헤쳐 나갈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지리산 정상에서 ‘씨바 좋다’로 압축되는 인섭, 인구 형제의 함성이 산을 타고 혜란에게 전해지는 그 장면은 참으로 보기가 좋았습니다. 굳이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마지막 음악이 나오지 않아도 될 것처럼 저는 느꼈지요.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일까요? 미안하다는 말은 하는 게 아니라고 이미 ‘러브스토리’에 나왔고, 네가 필요하다는 말도 아니고, 막연히 사랑한다는 말 이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진정성만이 우리를 편안하게 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진정성 속에 사랑의 지독한 혼란이 숨겨져 있는 법이지요. 연인도 가족도 장애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힘들지만 결국은 우리가 함께 해야만 하는 어떤 것. 사랑이라는 것에는 우리가 의식으로는 느낄 수 없는 무의식의 힘이 존재하는지도 모릅니다. 봄날이 그저 가고 있습니다. 건강하세요.


작성자이영문(아주대학교 정신과 교수)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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