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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 이야기할 때!

19일까지 ‘미친 여성들과의 대화’ 등 20여 편 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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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준비 중인 부부. 여자는 이미 준비를 다 끝내고 1층에서 남자를 기다리고 있는데, 남자는 외출 준비 중 뭔가가 맘에 안 들었는지, 아래층에 있는 여자를 노려본다.

“외출 준비 다했어?”
“응.”
“나는 안 됐어. 이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셔츠인데…!”

남자의 셔츠 왼쪽 가슴 부근에 얼룩이 묻어있는 것을 발견하곤 공포에 질리는 여자. 여자는 곧이어 닥칠 태풍을 예감한 듯 서서히 뒷걸음친다. 남자는 ‘어딜 도망가!’하는 눈빛으로 주먹을 불끈 쥔 채 여자에게 달려든다.

남자의 주먹이 세차가 날아오자 여자는 공중에 부웅 떠서 남자의 주먹을 피하고, 남자는 앞으로 고꾸라진다. 남자는 점점 더 화가나 세차게 주먹을 휘둘러대지만, 그럴 때마다 여자는 화려한 몸동작으로 남자의 주먹을 피한다 - 여자의 몸동작은 영화 <매트릭스>의 토마스 앤더슨(키아누 리브스 분)의 액션을 연상케 한다. 어느새 남자의 코와 이마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내린다. 여자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곧이어 삐삐빅 하고 울리는 알람소리. 그것은 꿈이었다. 잠에서 깬 여자는 알몸인 남편의 등을 바라보며 쓸쓸한 미소를 짓는다. 여자의 팔과 얼굴은 온통 멍투성이다. 

                                     - 개막작 <가정 폭력을 말하라Dix films pour en parler> 중에서

제2회 여성인권영화제 ‘친밀한, 그러나 치명적인’이 5월 16일 오후 7시 서울 성북구 소재 아리랑시네센터에서 4일간의 인권 여행을 시작했다. 이번 영화제의 주제는 ‘친밀한, 그러나 치명적인’, 말 그대로 가족, 연인, 친구, 동료, 선후배 등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치명적인 폭력에 관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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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가정폭력을 말하라'  
 
친밀한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은 ‘사랑’ 혹은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덧씌워져 가해지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가 그것이 폭력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기 어렵게 만든다. 또한 이러한 폭력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번번이 발생함에도 피해를 말했을 때 받게 되는 왜곡된 시선과 2차 폭력, 수치심 등으로 인해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여성인권영화제에 담긴 영화들은 이러한 폭력에 노출되었던 여성들에게 자신에게 가해졌던 폭력과 마주하고, 이야기하고, 자신의 삶을 존중하며 다시 피어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작품들로 구성돼 있다.

개막작 ‘가정폭력을 말하라’는 프랑스 여배우(마리 트랭티냥Marie Trintignant)가 남편에게 맞아 사망한 뒤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알리고자 10명의 여자 감독이 모여 만든 옴니버스 영화다. 영화는 사흘에 한명 씩 가정폭력으로 프랑스 여자들이 죽어나가고 있는 현실을 이야기하며, 수치심 때문에 더 이상 사실을 숨기지 말고 이제 그만 그 사실을 ‘이야기 하라’고 말한다. ‘이야기 하’지 않으면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경고도 아끼지 않았다.

영화가 상영되기 전 짤막한 영화제 동영상이 먼저 상영된다.
빨래 줄에 걸려 있던 피 묻은 흰 속치마(사람 몸에 가장 가까운 옷이다.)가 따뜻한 봄바람에 살랑 살랑 움직인다. 어느새 묻어있던 핏자국은 봄바람에 다 날아가고, 흰 옷은 제 색을 다시 찾은 뒤 빨래집게를 풀고 저 하늘로 날아간다.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다시 날아온 흰 치마, 함께 날아온 나비들과 어울려 ‘피움’이라는 글자를 만든다.

친밀한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폭력, ‘가족이니까’ ‘연인이니까’ ‘친구니까’라는 이름으로 외면하면 할수록 몸과 마음은 더욱 곪아간다. 이제는 이러한 상처들을 점점 드러내야 할 때다. 그 상처들과 마주하고 드러내야, 그 아픔에서 벗어나 다시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제는 19일 토요일까지 계속되며, 조울증, 다중 인격증, 자폐증, 다행증을 겪은 여자들이 경험한 것들, 그 병을 회복하는 과정을 다룬 ‘미친 여성들과의 대화 Dialogues With Madwomen’ 등 20여개의 작품들이 상영된다.
작성자소연 기자  cool_w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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