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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이 그리고 다르게’

[사람 사는 이야기] 두 아이를 위탁받아 키우는 이장훈, 박경애 씨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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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능 스포츠 소녀 애경이와 동물을 좋아하는 지영이. ⓒ소연 기자  
 
“익숙한 음식이 아니면 냄새 먼저 맡아보고, 입에 직접 대기 전까지는 먹지를 않아요. 그날 식단에서 생선, 두부, 김치가 있어도 생선을 먹기 시작하면 생선만 먹는 거죠.”

한 가지 음식에 꽂히면 다른 음식은 아랑곳 하지 않고 오직 한 음식에 대한 일편단심 애정을 쏟는 지영이(정신지체 2급, 11세). 지영이는 김밥처럼 여러 야채, 고기들이 섞여 있는 음식들은 먹지 않는데, 아무래도 그러한 음식들은 식재료 각각의 고유 맛을 해치는 ‘좀 떨어지는’ 음식이라 인식하는 모양이다.

취미생활인 동물 관찰하기에 심취해 있을 때도, 닭을 볼 때는 오직 닭만, 개를 볼 때는 오직 개만 바라본다. 주변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 지영이는 온전히 앞에 있는 동물에게만 집중력을 발휘해 온갖 관심을 쏟는다. 하나를 보면 그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축구, 야구, 농구 등 스포츠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애경이(10세), 학급에서 부반장을 맡을 정도로 활발하고 사교성이 좋다. 애경이는 한 쪽 귀가 일반 사람들에 비해 작고, 청각에 필요한 기관이 발달하지 못해 한 쪽 귀를 들을 수 없는 소이증을 갖고 있다.

이 둘을 키우는 이장훈 목사는 어떻고? 이장훈 목사는(청각장애 2급, 49세) 목회를 하면서 10년간 청각장애인을 위한 선교활동을 펼쳐왔다. 아내인 박경애 씨도(51세) 장애인 선교와 관련해 늘 ‘사고를 치며’ 이장훈 목사를 부추겨왔다.

평범하고 별난 이 4명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면? 아무 연고도 없이 함께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다는 것. 이장훈, 박경애 씨 부부는 아들 둘을 다 키워 외지로 보내놓고 지영이와 애경이를 각각 2006년, 2004년부터 위탁받아 대전 유성에서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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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영이가 사진을 안 찍고 거위를 보겠다고 하자, 박경애 씨는 사진을 찍으면 거위를 보게 해주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소연 기자  
 
이들은 어떤 연유로 함께 살게 되었을까?
<함께걸음>이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이들 가족의 아옹다옹, 도란도란 살아가는 이야기를 살짝 들춰봤다.

#1 지영이 이야기

지영이는 어머니의 사망 이후 이장훈, 박경애 씨 부부 가정에 맡겨졌다.
지영이 아버지의 명예퇴직, 거듭되는 사업 실패로 지영이 가족이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게 되자, 지영이를 양육할 힘을 잃은 지영이 어머니는 제초제를 마시고 자살을 기도했다. 아이 혼자 남길 수 없다는 판단에 지영이에게도 제초제를 먹였다.

지영이 부모는 지영이에게만 전념하기 위해 둘째를 갖지 않을 정도로 지영이에게 극진한 애정을 쏟았다 한다. 아이의 치료를 위해서라면 어떤 방법이든 강구하며 여러 병원들과 복지관, 언어치료실 등을 지영이를 안고 전전했다고. 그러던 중 지영이 아버지 사업에 악재가 이어지면서 집은 경매로 넘어가고 빚은 쌓여가 결국 지영이 어머니는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게 되었다.

두 모녀가 병원에 실려 왔을 때, 지영이 어머니는 이미 생명이 위독한 상태였다. 결국 지영이 어머니는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의사들은 지영이 역시 사망할 확률이 99%라고 진단했지만, 기적처럼 내부기관 손상 하나 없이 1%의 소생률로 지영이는 건강을 회복했다. 물론 지영이 곁에 어머니는 더 이상 없었다.

그래도 하늘이 지영이에게 무심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뒤로 행운이 지영이에게 연달아 찾아온 걸 보면.
지영이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모 대기업에서 지영이에게 후원금을 지급했고, 동사무소에서도 부랴부랴 수급권 지정을 해줘 수급비와 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했다. 지영이를 양육할 수 없어 지영이 아버지는 지영이를 시설에 보내려고 했지만, 서울가정위탁지원센타 소장의 소개로 가정위탁을 하기로 결정, 지영이가 퇴원한 8월에 위탁지원을 하게 되었다.

장애아동이 이렇듯 순식간에 위탁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가정위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2003년, 지영이 위탁이 이뤄진 2006년에는 가정위탁에 대한 홍보가 아직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비장애아동을 위탁받겠다는 가족도 많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비장애아동 위탁에 비해 정서적, 물질적 노력을 더욱 필요로 하는, 거기에 장애에 대한 이해까지 요하는 장애아동 위탁을 선뜻 받겠다고 나서는 사람을 찾기란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한 아이를 위탁받고 있는 목사 부부가 장애아동을 한명 더 위탁받겠다는 의사를 때마침 센터에 전한 것이다. 그 부부가 바로 현재 지영이를 맡아 키우고 있는 이장훈, 박경애 씨 부부였다.

#2 사랑받는 지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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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소가 예쁜 지영이, 현재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쑥쑥 성장하고 있다. ⓒ소연 기자  
 
여기서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들 부부가 지영이와 지영이의 어머니를 알고 있던 것이다. “목사님 부부께 지영이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위탁 의사를 물었는데, 놀랍게도 사모님께서 지영이를 알고 있었어요. 목사님 부부가 중촌동에서 선교원을 할 때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언어 치료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때 지영이 어머님이 지영이 언어 치료를 위해서 선교원을 여러 번 방문하셨나 봐요.”

지영이의 위탁을 담당하고 있는 대전가정위탁지원센터 김지숙 씨는 목사 부부와 지영이의 만남은 굉장한 인연이자 행운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장훈, 박경애 씨 부부는 지영이의 사정을 듣고는 면담 없이 지영이 위탁을 바로 결정했다고.

그 뒤로도 지영이의 행운은 이어졌다.
지영이가 현재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 학교 측, 담임선생님과 같은 학급 아이들이 지영이를 적극적으로 돌봐주고 지원해주고 있는 것. 학교 측에서는 지영이만을 위해 공익근무요원을 한명 배치하고, 박경애 씨가 지영이의 소근육 발달 교육을 의뢰하자 그 내용을 보강하겠다고 답변했다.

담임선생님은 지영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하면 수업을 잠시 중단시킨 채 지영이를 데리고 화장실에 갈 정도고, 학급 아이들도 담임선생님의 지도 아래 지영이를 항상 챙겨주고 배려해준단다.

지영이에 대한 학교의 지원이 적극적이다니 지영이도 학교 가는 것이 즐거울 수밖에. 박경애 씨는 지영이가 아침에 일어나는 데 늑장을 부리거나 학교 준비에 소홀히 하면 “학교 안 보낸다.”는 경고카드를 사용한다고 한다. 그러면 지영이는 “싫어, 갈 거야! 갈 거야!” 하면서 그제서야 등교 준비를 한단다.

#3 애경이와 위탁 이야기

애경이  
▲ 마술사가 꿈인 애경이, 무표정한 얼굴이 매력적이다. ⓒ소연 기자  
스포츠 만능에 미래에 마술사를 꿈꾸는 애경이는 7살 때 이장훈, 박경애 씨 가정으로 위탁되었다. 이들 부부와 애경이의 인연은 애경이가 갓난쟁이일 때부터 시작된다.

애경이는 갓난아기일 때 이장훈 목사가 사역하는 교회 앞에 버려졌다. 이장훈 목사 부부가 아닌 교회를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발견돼 발견 즉시 영아원으로 옮겨졌다. 그렇게 애경이는 유년시절을 시설에서 보냈다.

이장훈, 박경애 씨 부부는 애경이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애경이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 생각날 때마다 애경이를 위해 기도했다고 한다.

“애경이가 저희 교회 앞에서 버려졌다는 걸 영아원에 보내진 후에야 알았어요. 방송국에서 사실여부를 확인하는 전화를 걸어 왔거든요. 그 뒤부터 아이가 계속 신경이 쓰였죠. 그 당시엔 벌여놓은 일이 많아서 아이를 데려오지 못하다가, 애경이가 7살이 되었을 때 데려왔어요.”

박경애 씨는 애경이를 입양하기 위해 우선 장기위탁하는 방법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위탁에는 친 할머니가 키우는 대리양육가정위탁과 친인척에 위탁되는 친인척위탁, 위탁지원센터의 중제로 연고가 없는 일반 가정에 위탁되는 가정위탁 등 세 가지가 있다.

이 중 지영이, 애경이 경우에 해당되는 가정위탁은 아이가 부모의 사망, 이혼, 실직, 가출, 학대 등으로 친부모와 함께 살 수 없을 때, 일정기간 동안 아동을 보호·양육하기를 희망하는 가정에 위탁하여 가정적인 분위기에서 양육되도록 하는 아동복지사업이다. 가정위탁은 아이가 만 18세가 되기 전까지 5년 이하로 맡겨지는 단기 위탁과 만 18세가 될 때까지 제한 기간 없이 맡겨지는 장기위탁으로 나뉜다. 현재 지영이는 3년 단기 위탁 상황이고, 애경이는 장기위탁 중이다.

아이를 위탁할 경우 한달에 한 아동 당 받게 되는 지원금은 7만원, 대부분의 위탁 아동이 수급권자므로 생계비와 의료비 등도 함께 지원받을 수 있다. 박경애 씨도 경제적 여건 때문에 입양이 아닌 장기위탁으로 애경이를 양육하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건, 자식으로 키우려고 맘 먹었으면 갓난아기 때 데려왔어야 했는데, 너무 커서 데려왔다는 거예요. 아무래도 7살 때 왔으니까 제가 친엄마가 아니란 걸 알잖아요. 어떤 미묘한 거리감 같은 게 느껴지죠.”

그래서 가정위탁지원센터 측에서도 장기위탁의 경우 되도록 갓난아이일 때 위탁될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4 이장훈, 박경애 씨 부부 이야기

두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이장훈, 박경애 씨 부부는 1996년 대전 중천동에서 교회를 개척했을 때부터 청각장애인을 위한 선교활동을 꾸준히 펼쳐왔다. 여기에 이장훈 목사 어머니의 심리적, 물질적 지원이 밑받침 됐다.

“어머님이 첫째(이장훈 목사)와 셋째(딸)가 청각장애인이다 보니 셋째가 목사 남편을 만나 청각장애인을 위한 사역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대요. 그런데 첫째가 목사가 되었으니 적극적으로 도와주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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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년간 청각장애인을 위해 일을 벌여온 이장훈, 박경애 씨 부부. ⓒ소연 기자  
 
이들이 처음 진행한 사업은 청각장애인들의 운전면허 취득을 도와주는 것. “운전면허를 따고 싶어 하는 청각장애인들이 참 많았어요. 청각장애인들 중에서 문장 이해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많아서 필기시험에서만 3~4번 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그분들을 도와주게 되었고, 많은 분들을 합격시켰어요.(웃음)”

이장훈, 박경애 씨 부부의 ‘일 벌이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원을 받아 새로 교회를 건축하게 되면서 2층에는 교회를, 1층에는 언어치료사, 특수교사 등 4명의 선생님을 고용하여 가난한 청각장애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언어치료실을 운영한 것이다.

“언어치료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조기에 이뤄져야 해요. 초등학교 들어갈 때쯤이면 너무 늦어요. 그런데 언어치료실을 이용하려면 일주일에 두 번만 가도 25만원을 지출해야 하거든요. 그것도 대기자가 많아서 기다려야 하고요. 형편이 어려운 집안의 청각장애아동, 청각장애인 부모 밑에서 말이 늦게 트인 아동들, 발달장애아동들을 대상으로 언어치료를 시작했었죠.”

그러나 학생수가 10명으로 소수다보니 외부로부터 지원금을 받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교사 4명의 급여와 교육진행비는 다달이 적지 않게 지출돼 매달 500만 원의 적자를 내야했다. 결국 언어치료실을 시작한지 4년 만에 이들 부부는 사업을 접고 청각장애인을 위한 쉼터를 운영하는 선으로 사업을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현재 이들 부부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공동체, 쉼터를 운영하며 지영이, 애경이와 함께 평화로우면서도 소란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5 다 같이 그리고 다르게

한 친구가 개인 홈페이지에 올린 어느 시골 초등학교 건물 외관 사진이 마음을 울린 적이 있었다. 건물 외관의 생김만을 따진다면 그 초등학교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평범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벽 위에 걸려 있는 글자만큼은 별달랐다.
‘다 같이 그리고 다르게’

이장훈, 박경애 씨 가족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이 문구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연고가 없는 사람들이 모여, 각기 다른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한 가정을 이루고 서로 간의 ‘차이’를 존중하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다 같이 그리고 다르게’라는 말과 참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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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닮은 듯 다른 이장훈, 박경애 씨 가족. 서로간의 차이를 대화를 통해 조율해간다. ⓒ소연 기자  
 
비록 나와 다른 상대방의 ‘차이’를 대하는 모습이 때로는 서툴러서 어떤 다툼으로, 질투로, 불만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이들 가족은 대화를 통해 하나 둘씩 서로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양보해가며, 관계를 조율해가고 있다. (물론 대화의 발언권에 있어 아이들보다 부모가 더욱 큰 힘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겠지만….^^)

이들의 인연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지만, 가족의 모습으로 세월을 보내는 게 조금은 익숙해져서인지 이들 부부의 아들이 찾아오면 “엄마는 지영이, 애경이 밖에 모르지?”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한 아이를 바라보며 살짝 질투를 표시한단다. 이들이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서로를 닮아가는 과정은 아마 앞으로 더욱 깊어지지 않을까?
작성자소연 기자  cool_w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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