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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삶을 바꾼 것은‘너바나’였다

가수 이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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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AFKN>에서 ‘Smells Like Teen Spirit’ 뮤직비디오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충격적이었다. 도무지 음악으로 들리지가 않았다. ‘징지지 지지지~’ 하는 도입부부터 소리가 달랐다. “기타에서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날 수 있지? 이들이 하는 음악은 대체 뭐란 말인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었다. 너바나 음악만 죽어라 해보자고들 했다. 밴드 이름을 ‘위퍼’라 붙였다. 학교 축제 때 처음으로 무대에 섰다. 반응이 좋았다. 커피전문점에서도 공연을 했다. 1500원짜리 티켓이 100장이나 나갔다. 대학 금형설계과에 들어간 지 2주만에 관뒀다. 재미가 너무 없었다.

그해 4월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이 숨진 지 2년째로 접어들 즈음, 위퍼는 보라매공원 소극장 무대에 섰다. 추모공연을 하려고 대관료 50만 원을 냈다. 150석 규모의 소극장은 동네 친구들 200여 명으로 가득 찼다. ‘Smells Like Teen Spirit’을 목이 터져라 부르는 그에게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 순간 그는 ‘커트 코베인’이었다. 그것은, 그 날 그 자리에선 그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그날 이후 그는 커트 코베인의 모든 걸 따라했다. 옷차림, 머리 스타일, 기타 치는 폼, 걸음걸이, 냉소적인 말투, 말할 때 하는 제스처…. 마치 뭔가에 씌워진 것처럼. 그리곤 홍대앞 클럽 드럭으로 갔다. 미친 듯이 노래하고 연주하고, 사람들과 밤새도록 커트 코베인에 대해 얘기하고. 모두들 “너바나랑 정말 똑같다. 제일 잘한다.”고 치켜세웠다. 홍대앞 바닥에 소문이 퍼져나갔다. ‘홍대 앞 원빈’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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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쭐함에 취해 허우적대던 중 문득 ‘난 어디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뒤통수를 때렸다. “커트 코베인이 아닌 ‘이지형’을 찾고 싶어.” 자신의 얘기를 담은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1998년 노브레인과 함께 <아워 네이션>이라는 기획음반을 냈다. 2000년 마침내 위퍼 1집 <상실의 시대>를 발표했다.

이 앨범부터 그는 목소리를 바꾸기 시작했다. 커트 코베인처럼 거칠게 내지르기보다는 맑고 편안하게 부르는 게 좋아져서였다. 훨씬 덜 힘들었고, 목도 덜 아팠고, 스스로 감정에 충실할 수 있었다. ‘아, 그 동안 몸에 안 맞는 옷을 입어온 거였구나.’ 그러나 그가 급작스레 입대하면서 위퍼는 곧 해체됐다. 1집 앨범 공연은 단 두 번이 전부였다.

제대 뒤 다시 음악판을 기웃거렸다. 데모 테이프를 들고 여러 제작사를 찾았지만 “이런 걸로는 돈이 안 된다”는 핀잔만 돌아왔다. 음반은 나중에 내고 우선 아침드라마 연기부터 해보자는 둥, 리포터부터 시작하자는 둥, 여자랑 듀오를 해보자는 둥, 전문 작곡가가 만든 곡을 줄테니 작곡은 하지 말라는 둥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붙이는 곳도 많았다. 30~40차례 퇴짜를 맞은 뒤 아예 스스로 음반사를 차렸다. 2006년 4월 솔로앨범 <라디오 데이즈>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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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앨범은 부드러운 모던록이었다. 반응은 갈렸다. “변절했다. 실망이다.”라며 등을 돌린 이들. 강렬한 ‘너바나표’ 사운드를 잊지 못한 이들이다. “기대와 달리 많이 바뀌었지만 이런 스타일도 좋다.”거나 “그때나 지금이나 고유의 감성은 변하지 않아서 좋다.”는 이들. 고마운 이들이다. 그는 얼마 전 소품집도 냈다. 카페에서 통기타를 치며 나지막하게 노래를 읊조리는 기분으로 녹음했다. 음악 스타일로 보자면, 너바나에서 한걸음 더 멀어진 셈이다.

“최소한의 소리로 음악을 만들어낸다는 거, 화려하고 꽉 찬 음악보다 훨씬 어렵더라고요. 노래하다 내뱉는 숨소리, 손가락이 기타 줄 타고 움직이는 소리까지 다 음악의 일부가 되니까요. 이런 소리를 살리려 마이크, 녹음기기 따위에 신경을 엄청 썼는데, 생각한 대로 느낌이 안 났어요. 그러다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 감정에 몰입하니까 원하던 ‘여백의 미’가 자연스레 묻어나더라고요. 정말 신기했어요. 진짜 음악은 기술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감정에서 나오는 거구나, 깨닫게 된 순간이었죠.”

따지고 보면, 너바나에서 출발한 그의 음악 여정은 너바나에서 점점 더 멀어져가는 것이었다. 신기한 건, 그가 너바나의 몸피에서 멀어질수록 음악을 대하는 마음가짐은 더욱 너바나를 닮아갔다는 사실이다. 아이러니다.

 

-Nobody Likes Me

1집 앨범 <라디오 데이즈>에 담긴 이 곡은, 제대 뒤 데모 테이프를 들고 찾아간 음반사마다 퇴짜를 맞고, 여자친구와도 헤어지고, 집안형편도 어려워진,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작성자서정민  webmaster@cowal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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