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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일상을 살아가는 힘이 됩니다”

사랑과 낭만의 유럽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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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대한 판타지는 장애인에게도 있다. 이제까지 여행기를 읽으면서 괴리감을 느꼈다면 이런 여행기는 어떨까? 다양한 장애인 당사자들이 들려주는 해외 여행기. 당신의 감성을 자극해 서둘러 짐을 꾸리고 어디론가 떠나게끔 할 여행이야기를 모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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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에서 한 컷 (사진제공: 백수정)  

“최악의 이별이 뭔지 알아? 서로 추억할 것이 없는 거야.”
- 영화 ‘비포선라이즈’ 중에서

여행은 단순히 생활하는 공간을 이동하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 사는 미지의 사람들과 부대끼는 새로운 만남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만남에서 때로는 영화 ‘비포선라이즈’처럼 묘한 감정이 일기도 한다.

백수정(38, 뇌병변3급) 씨가 그를 처음 만난 게 95년이니까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만난 그는 수정 씨의 이동 보조를 위해 학교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 연결해준 사람이었다.

대학원생이라 야간 수업이 많았던 그는 넓은 학교를 돌아다니는데 어려움을 겪는 수정 씨를 위해 수정 씨가 부르면 언제나 차를 가지고 와주었다. 그리고 이동뿐만 아니라 영어공부, 도서관에서 책 찾기 등 학교생활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단다.

“낯선 외국이라 그랬는지 우린 급속도로 친해졌어요. 묘한 감정도 생겨났죠. 하지만 그땐 유학 중이었고, 다른 걸 신경 쓸 형편이 아니었어요.”

정작 그와 사귀기 시작한 건 유학에서 돌아오고도 얼마가 지난 2002년이었다. 한반도에 월드컵 열기가 가득했던 그해, 재미교포였던 그는 한국에 찾아왔고 해운대에서 만난 수정 씨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수정 씨가 ‘사귀자’고 한 건 대전에서 한국이 이탈리아를 상대로 골을 넣던 날이었다. “축제의 힘이었겠죠? (웃음)” 둘의 사랑은 환호 속에서 그렇게 시작했다.

“하지만 곧 문제가 발생했어요. 제 장애를 이유로 그의 집에서 반대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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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사진제공: 백수정)  

조소를 전공했던 그는 곧 교환교수를 신청해 스페인으로 갔다. 그리고 그때부터 1년에 한 번씩 유럽여행이 시작됐다. 스페인으로 가는 직항로가 없었기에 둘은 주로 프랑스에서 만났다.

 

조각가와 글쟁이의 만남. 좋아하는 것도 서로 비슷하고, 여행하는 스타일도 비슷했던 그들에게 그 여행은 즐겁기만 했다. 스페인은 물론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체코 등등...

서양미술사를 강의했던 그를 개인 해설자로 두고 일주일 내내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을 드나들기도 하고, 할머니들이 좌판을 펼쳐놓고 자잘한 장신구들을 파는 뒷골목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사기도 했다.

“여행은 함께하는 사람에게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어요. 더 많이 얘기를 나누게 될 뿐만 아니라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에서 단 한사람, 나와 친밀한 사람이 있다는 느낌이 상대방을 한 층 더 소중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는 아직도 체코의 다리에서 체코 시청의 야경을 보던 때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사랑을 하지 않던 사람도 사랑에 빠질 것 같은 공간, 그리고 연인들은 더욱 밀착시킬 것 같은 공간이었다고.

백수정  
▲ 스위스 설산에서 (사진제공: 백수정)  

돌아보면 그와 함께한 시간들은 수정 씨에겐 언제나 ‘여행’이었다. 첫 만남 역시 바짝 긴장하고 떠난 미국이었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 역시 둘에겐 여행의 순간이었다. 사랑을 나누는 동안도 둘은 유럽의 곳곳을 여행하며 추억들을 흩뿌려두었다.

그리고 마지막 역시 둘은 여행으로 장식했다. “10년 뒤에도 둘 다 혼자이면, 그땐 같이 세계여행을 하자.”고. 수정 씨에게 이제 한동안은 유럽 여행이 쉽지 않을 것 같다. 헤어진 지 두 달.

사랑과 여행은 끝나고 나면 한동안 가슴이 아릿하게 그립다는 점에서 매우 닮았다. 이제 수정 씨에겐 사랑도 여행도 사진과 추억으로 남았다. “생각해보면 그런 추억이 일상에서 힘이 된다.”는 수정 씨. 그에게 앞으로도 또 다른 아름다운 추억들이 차곡차곡 쌓이기를 기대해본다.

작성자조은영 기자  blank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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