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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찰, 해인사로 떠나 볼까요?

팔만대장경이 있는 해인사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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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이용자도 사찰 여행을 할 수 있을까?

한국에는 어느 산을 가든 산마다 하나씩 사찰이 있다. ‘절’하면 우선 맑고 깨끗한 범종소리가 떠오른다. 절은 왠지 마음의 평안과 여유를 찾게 해줄 것 같은 공간이다. 또 사찰로 올라가는 숲길을 걸으면 일상의 스트레스와 집착에서 벗어날 것만 같은 기분도 든다.

그래서일까. 요즘 사람들은 불교를 믿지 않아도 템플스테이(사찰체험)니 뭐니 하면서 절을 찾는다. 특히 요즘처럼 연일 무더위가 계속되는 여름이면 더욱 그렇다.

이렇게 비장애인들에게는 평안과 여유의 이미지로 자리 잡고 있는 사찰, 그러나 장애인들에게 절은 ‘힘들고 피곤한 공간’의 대명사다. 올라가기도 힘든 산에 있는데다 장애인 편의시설을 찾아볼 수 있는 절은 사실상 거의 없기 때문. 이 때문에 걷는 게 불편한 장애인들 사이에서 사찰은 ‘극기훈련 장소’처럼 인식돼 있다.

그런데, 정말 절은 장애인들에게 이렇게 힘든 공간일 수밖에 없을까?

궁금한 건 못 참는 <함께걸음>이 사실을 알아보기 위해 얼마 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오영철 활동가와 함께 경남 합천 해인사에 다녀왔다. 오영철 활동가와는 이미 지난 2005년 일본에 출장을 갔다가 함께 일본 사찰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러니 일본 사찰과 비교 체험도 가능할 터. 그럼 함께 해인사로 떠나 보자.

  undefined       ▲ 성보 박물관 ⓒ전진호 기자     장애인은 들어와도 휠체어는 안된다?

해인사는 88고속도로에 ‘해인사 나들목(IC)’이 따로 있어서 가는 길을 찾는 게 어렵지는 않지만 경남 합천에 있는지라 서울에서 막히지 않고 달려도 5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
11시에 출발해 교대로 운전을 하면서 달렸는데도 해인사에 도착하니 5시 40분. 해인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바로 앞 ‘해인사 성보박물관’부터 들렀다. 그런데 여행 시작부터 기분 상하는 말을 듣게 됐다.

“바닥이 얽어서 휠체어 타고는 못 들어와요.”

이게 무슨 소린가.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에게 휠체어를 놓고 들어오라니. 버젓이 입구에는 장애인과 동반 1명까지 무료라고 적혀 있건만, 실제 장애인이 올까 싶었던 모양이다. 입구에서 실랑이를 벌이다 들어섰더니 역시나 화장실을 제외하곤 편의시설이 없어서 1층 외엔 갈 수 있는 곳이 없다. 지하나 2층에는 어떻게 가냐는 물음에 관리자 또 어이없는 대답을 한다.

“거긴 별로 볼 게 없어요.”

주차장부터 해인사까지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입구부터 급경사. 승용차를 타고 오느라 수동휠체어를 가져온 오 활동가를 밀고 가는데, 산책하기 좋게 정비를 하긴 했지만 휠체어로 가긴 경사가 급한 산길이라 힘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비장애인이라면 쉬엄쉬엄 갈만한 경사지만, 휠체어 이용자에겐 혼자서는 오를 수 없는 길이었다. ‘절’하면 왜 ‘극기훈련’이 연상되는지 알 것 같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가다보니 우리가 올라가는 길 오른쪽으로 자동차도로가 나 있는 게 보인다. 혹시나 싶어 지나가다 만난 스님에게 ‘해인사까지 차를 가져갈 수 있냐.’고 물었더니 예의 맑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당연하죠.’ 한다. 아뿔싸!!

  undefined       ▲ 합천 해인사 구광루 앞 ⓒ전진호 기자     가슴까지 울리는 해인사의 북소리와 종소리

한국과 일본의 사찰은 다소 차이가 있다. 한국의 절은 ‘명산대찰’이라는 말이 생겨날 만큼 유명한 산마다 유서 깊은 절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래서인지 절은 산에 있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사실 대부분의 종교 사원들은 사람들의 생활권 안에 위치해 있다. 교회며 성당이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위치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불교 역시 마찬가지. 소승불교가 주류를 이루는 동남아 국가는 물론 일본 역시 절의 상당수가 마을 평지에 위치해 있다. 한국의 절이 산에 있는 것은 산을 성지(聖地)로 여기는 우리 조상의 산악숭배사상과 풍수지리사상에 조선시대 억불정책이 결합되면서 나타난 결과라고.

사람들은 이러한 차이를 두고 한국의 절이 산에 있기 때문에 장애우가 가기 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천만의 말씀. 절에는 절에 기거하는 스님과 신도를 위해 자동차가 다니는 샛길이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개방을 하는 것은 아니라 사람들은 보통 절에 걸어 올라가지만, 이동이 불편한 사람의 경우 이야기를 하면 차로 최대한 절과 가까운 곳까지 올라갈 수 있다. 그러니 남은 문제는 사찰에 편의시설이 돼 있느냐이다.

이왕 거기까지 간 거 그냥 올라가 보니 해인사의 경우엔 자동차 도로 중간 중간에 차를 세우고 잠시 내려 산책길에 들어갈 수도 있게 잘 정비돼 있었다. 우리는 중간 중간 사람들의 도움도 받고 잠시 쉬면서 사진도 찍었다. 그렇게 올라가니 6시가 좀 넘은 시각. 절에선 저녁 공양이 시작됐다. 하지만 저녁을 먹는 식당은 척 보기에도 계단이 많아 우리가 갈 수 없는 곳처럼 보였다.

 
▲ 법고를 치고있는 스님의 모습을 보고있노라니 씻겨간 나쁜 마음들은 이어진 범종 소리를 타고 스르륵 사라져 버리고 그 맑은 종소리의 떨림이 가슴에 전해지면서 내 마음도 함께 맑아지는 느낌이었다.ⓒ전진호 기자  
잠시 서성대고 있는데 스님 한 분이 조금만 기다리면 스님들이 법고(북)와 범종을 칠거라며 우리에게 귀띔한다. 사진도 찍고 해인도(팡만대장경의 가르침을 나타내는 도안으로 땅에 그려져 있음)도 돌면서 소원도 빌고 있으려니 승복을 차려입은 스님 네 분이 종각에 들어섰다. 그리고 예불이 시작됐다.

네 분이 돌아가며 법고 앞에 서서 도포를 휘날리며 북을 치는데 정말 번뇌와 망상, 집착과 오욕이 북소리와 함께 날아가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씻겨간 나쁜 마음들은 이어진 범종 소리를 타고 스르륵 사라져 버리고 그 맑은 종소리의 떨림이 가슴에 전해지면서 내 마음도 함께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소리에 심취해 있으려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게 보인다. 길을 알았으니 구태여 고생할 이유는 없었다. 목어를 치기 시작할 즈음 얼른 내려가 차를 가지고 해인사로 올라왔다. 그리고 사람들을 태우고 숙소로 이동했다.

일본과 비교되는 해인사 내 장애인 편의시설

이른 점심을 먹고 다시 해인사로 향했다. 전날 너무 늦어 ‘해인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 유명한 ‘팔만대장경’을 못 봤기 때문이다. 이번엔 차를 가지고 올라오니 절까지 오는 길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게다가 자동찻길 역시 산책길만큼이나 아름다웠다.

문제는 팔만대장경을 보러가는 길이었다. 팔만대장경은 해인사 대적광전(보통 화엄종 사찰의 본전으로 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모신다.)을 돌아 올라가야 볼 수 있다. 어차피 우린 일주문부터 계단을 피해 샛길을 이용했으니 이번에도 다른 길로 돌아가려했다. 그런데 이 대적광전은 다른 곳과 달리 앞에 무수하게 많은 층계를 피해 돌아 들어갈 길이 없었다.

우리가 갔던 때는 대적광전 옆 건물을 보수 중이라 다행히(?) 공사자재를 나르기 위해 설치한 경사로를 이용할 수 있었다. 공사 중이 아니었다면 5시간이 걸려 경남 합천까지 내려가고도 팔만대장경은 못 보고 돌아갈 뻔 한 것이다.

하지만 건축자재를 나르기 위해 설치된 경사로를 통해 올라가는 건 쉽지 않았다. 좁고 가파른데다 중간에 쉬는 구간조차 없어서 손을 놓치면 가속도를 타고 내려가며 봅슬레이 경기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게다가 그럴 경우 경사로를 이용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다치기 십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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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적광전 옆 건물 보수공사 공사자재를 나르기 위해 만들어진 경사로. 좁고 가파른데다 중간에 쉬는 구간조차 없어서 손을 놓치면 가속도를 타고 내려가며 봅슬레이 경기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 조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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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사찰에 설치된 경사로. '문화재 훼손'이라는 이유로 장애인 편의시설에 인색한 한국의 사찰과 비교되는 모습이다. ⓒ조은영 기자  
 
이때부터 일본의 사찰과 한국 사찰이 비교되기 시작했다. 2005년 방문했던 일본 교토의 절들은 휠체어 이용자가 모두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교토 도심에 있는 오래된 절인 히가시혼간지(동본원사)는 물론 절벽에 있어서 명승지로 손꼽히는 천수사까지 모두 휠체어 이용자도 접근할 수 있도록 장애인 이동로를 확보해두고 있었다.

심지어는 공사 중이었던 히가시혼간지의 경우엔 장애인 이동로를 확보하기 위해 절 내부로 들어오는 장애인 엘리베이터까지 따로 길을 내고 안내하고 있었고, 절 내부에도 문턱에 긴 경사로를 설치해 장애인이 들어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그뿐인가. 천수사로 올라가는 길은 가게들 역시 장애인이 들어갈 수 있도록 모두 경사로가 설치돼 있었다. 일본은 아직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았는데도 장애인 편의시설 만큼은 확실했다.

그런데 우리 절에는 장애인을 위한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절 내에서는 장애인 화장실은커녕 수세식 화장실도 찾아보기 어려웠고 식당 역시 휠체어 이용자가 접근하기엔 계단이 너무 많았다. 관광에 필요한 기본적인 동선조차 확보되지 않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절을 찾은 사람 대다수가 멀쩡한 계단을 놔두고 공사를 위해 설치한 경사로를 이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유모차를 가져온 부부는 물론이요, 일반 비장애인들도 모두 경사로를 이용했다. 살펴보니 계단은 급경사라 올라가기 편치 않은 구조였다. 그럴 거라면 아예 그곳에 장애인 편의시설 기준에 맞게 아예 경사로를 설치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undefined       ▲ 공양소로 가는 계단. 계단이 가파르고 높아 휠체어 이용자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장애가 있는 스님이 이곳에서 식사를 해야 한다면 어땠을까. ⓒ전진호 기자     800년전 옛 사람의 손길과 숨결이 바람을 타고 솔솔~

겨우 올라가서 본 팔만대장경은 보기엔 그저 목판에 지나지 않았으나 공기가 움직일 때마다 800년 전 옛사람들의 손길과 숨결이 바람을 타고 코끝에 전해졌다.

경사로를 내려올 때 역시 쉽지 않았다. 그리고 절 내에 있는 기념품 가게 역시 장애인은 접근 불가. 경사로도 없고 가게 내부도 통로가 좁아 들어갈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도대체 언제나 휠체어 이용자가 일주문을 거쳐 사천왕문을 지나 불이문을 통과하는 사찰의 정규 이동로를 이용할 수 있을까.

물론 오래된 사찰에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하는 문제가 쉬운 일은 아니다. 옛날에 지어진데다 문화재적 가치까지 높은 경우 문화재를 훼손할 수 있다며 편의시설을 꺼리기 때문이다.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 배융호 사무총장은 이에 대해 “개발이냐 보존이냐의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문화재라고 해서 아예 장애인 이동로를 확보하지 않는 나라는 많지 않다.”며 “문화재 담당자와 장애인 접근권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면서 해결방안을 찾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 과정에서 원칙들이 만들어지고 문제 해결 방안들이 보편화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절은 장애인들에게 ‘극기훈련 장소’가 아닌 비장애우와 마찬가지로 평안과 여유를 누리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행정보

* 찾아가는 길
88올림픽고속도로 해인사 IC에서 가야산(해인사) 방면 1033번 지방도를 이용, 북쪽으로 약 14km 직진하면 해인사 주차장이 나온다. 하지만 휠체어 이용자의 경우 주차장에 차를 세우지 말고 해인사 매표소에서 절로 올라가는 길을 물어보고 절까지 차로 올라갈 것. 절로 올라가는 길은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왼편으로 보이는 주유소 바로 앞에서 갈라진다. 오른쪽 도로로 진입해 경사로를 올라가면 해인사가 나온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대구서부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탈 것. 대구에서 다시 해인사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20분 간격에 한 시간 정도 걸린다. 그러나 경험상 휠체어 이용자는 승용차를 이용해야 여행이 가능하다. 아시다시피 저상버스가 아니라 전동휠체어를 가져갈 수 없고, 수동휠체어로는 버스가 서는 곳에서 절까지 혼자 올라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 해인사
경내 관람 시간은 아침 8:30부터 오후 7:00까지. 팔만대장경 관람시간은 아침 8:30 ~ 오후 6:00까지다. 입장료는 장애인 및 동반 1인까지 무료. 단, 장애인등록카드를 지참해야 하며, 일반 어른은 2천원이다. 주차료 역시 장애인등록 차량에 한 해 무료다. 그밖에 일반 승용차는 4천원, 경차는 2천원이다. 문의는 해인사 055-934-3000, 매표소 055-934-3140.

* 음식점
해인사 매표소로 올라가는 길에 휠체어 이용자도 접근이 가능하도록 경사로를 설치해 둔 음식점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러니 음식점 때문에 고민하지 말 것! 산채비빔밥이 유명하다. 가격은 6천원부터.
매표소를 지났다면 해인사로 올라가는 산책로 중간에도 간단한 음식을 판다. 가게 앞에 주차가 가능하며 휠체어 이용자도 접근이 가능하다. 묵국수 4천원. 파전 3천원.

* 화장실
해인사 주차장에 차를 주차했다면 해인사 성보박물관의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승용차를 타고 직접 해인사로 올라간다면 도로 중간에 산책길과 연결된 지점마다 있는 장애우 화장실을 이용하면 된다. 단, 해인사 내부에는 장애우 화장실이 없다.

* 축제
특별한 볼거리를 원한다면 축제일에 맞춰 해인사를 방문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팔만대장경축제’는 음력 3월 9일부터 4월 8일까지 30일간 한다. 특히 음력 3월 9일과 10일 이틀간은 ‘팔만대장경 정대불사’가 열린다. 가을엔 ‘팔만대장경 수호만등불사’가 음력 9월 14일과 15일에 있으니 이때를 맞춰 가는 것도 좋을 듯하다. 가야산 단풍과 시기가 맞는다면 금상첨화. 축제는 모두 해인사 경내에서 이뤄진다.

작성자조은영 기자  blank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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