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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옛날이야기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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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민

   
재건축 때문에 난리가 났던 동네가 있습니다. 제가 사는 바로 옆 동네의 일이라서 생생하게 목격을 했죠. 이름만 대면 고개를 끄덕일 대기업이 들어와서, 이 동네 모두가 상류사회의 일원이 될 듯한 아파트로 완전히 뜯어고친답니다.

얼마나 황홀한 일일까요? 기존의 낡은 집들을 말끔히 없애버리고 새로운 아파트로 다시 짓기만 하면, 여기 살던 모든 안주인들이 일순간 귀부인처럼 인생이 뒤바뀐다는데……,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즐거울까요? 동화 속에서 듣던 신데렐라의 꿈과 소망은, 재건축 하나만으로도 모든 게 이뤄지는 환상적인 요술램프가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중간마다 피맺힌 절규로 울부짖던 분들이 계셨습니다. 떠날 수도 없는 전세나 월세 같은 상황인데, 앞으로 어떻게 살라는 말이냐고 항의의 몸부림을 몇 달 동안 이어가신 분들이 적지 않으셨죠. 재건축을 추진한다니까, 몇 군데의 대기업이 등장해서 난리가 아닌 난리를 거듭했던 바 있었습니다. 재건축 입찰을 따내기 위해 주먹다짐까지 줄기차게 진행하는 걸 보니……, 재건축의 이점이라는 게 분명히 존재하는 모양이더군요.

뭐,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갑니다. 해당 건설 기업에 몸을 담고 있는 입장이라면, 새로운 업무 실적을 올리기 위해 몸이 닳도록 뛰어다녀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그런데 제가 궁금한 점은 단순합니다. 그 선택권을 얻어내기 위해, 왜 항상 ‘건장한’ 분들이 길거리 가득 동원되어야 하는지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 자리에 현재 살고 있는 주민들의 의견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요? 그런데도 ‘건장한’ 사람들끼리 몇 차례 과격한 충돌을 반복하고 나면, 재건축 당사자인 입주자(거주자) 분들은 발언권 없이 조용해져야 하는 게 정해진 순서인 것 같더군요.

결국 그 동네는 저의 머릿속에 담겨 있던 풍경 그 자체가 사라지고, 완전히 붕괴된 폐허의 모습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제가 사는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의 풍경인데도, 방송에서나 보던 머나 먼 전쟁터 어느 나라의 거리가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직도 몇몇 가정은 그 철거 현장의 중간 여기저기에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흔히 얘기하는 ‘알박기’가 아닌, 정말로 그 자리를 떠날 방법이 없다는 분들이죠. 길거리 한쪽 구석에 앉아 긴 담배연기를 내뿜는 어느 어르신의 한마디가, 지금까지 저의 뒤통수를 때리는 듯합니다.

“세입자로 살았는데 난데없이 어디로 가라는 거야? 죽으라는 거지. 어차피 돈은 집 주인이 버는 거 아냐? 그래, 내가 저놈들과 싸워서 맞아 죽든지 해야 보상금 같은 거라도 생길 거 같은데……. 이렇게 힘없이 쫓겨나면 내 자식과 손주녀석들은 어떡하라고…….”

손끝이 타들어가도록 담배를 태우고 계시던 그 어르신의 얼굴은, 무너진 건물 잔해 같은 황량함으로 그늘져 있었습니다. 그 어르신께서 저런 문짝 하나를 사이에 두며, 사랑하는 손주들과 일상의 대화를 나누셨으리라는 상상을 떠올리다 보니, 저 역시 그 잔해더미 밑에 깔려 버린 듯 마음이 더 아파지더군요.

2007년 여름……. 대~한민국의 서울은 경쟁적인 재개발을 통해서, 모두가 살기 좋은 도시로 재탄생한다고 합니다. 물론 부푼 희망을 간직하며 기대해야 할 일이겠죠. 그러나 하루하루 살갑고 힘겹게 살아가는 모든 시민들이 행복한지, 아니면 일부 집주인만 행복해지는지의 여부는 ‘뻔한’ 결론을 새삼스러운 듯 지켜봐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작성자채지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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