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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장, 핀토스, 80년대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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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시간을 20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80년대 후반 당시 청소년들의 해방공간을 꼽으라면 단연 ‘롤러장’이었다. 천장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미러볼은 어두침침한 바닥에 빛으로 된 물방울을 흩뿌려댔고, 쿵쾅거리는 대형 스피커는 런던 보이의 ‘할렘 디자이어’, 모던 토킹의 ‘브라더 루이’, 조이의 ‘터치 바이 터치’ 등의 유로댄스곡들을 뿜어댔다.

트랙을 질주하던 롤러 스케이트는 지금의 인라인 스케이트와는 딴판이었다. 한줄로 주욱 늘어선 인라인 스케이트 바퀴와는 달리 롤러 스케이트에는 자동차처럼 앞뒤로 바퀴가 두개씩 달려있었다. 맨앞에는 브레이크 구실을 하는 동그란 고무덩어리가 붙어있었다. 좀 탄다 하는 아이들은 옆으로 또는 뒤로 씽씽 달렸다.

한쪽에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아이들, 매점에서 파는 떡볶이를 먹으며 수다를 떠는 아이들도 있었다. 영화 ‘품행제로’에서처럼 김승진의 ‘스잔’이 좋냐, 박혜성의 ‘경아’가 좋냐를 두고 말씨름을 했을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성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잔뜩 멋을 부린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엉덩이에는 어김없이 조다쉬, 써지오바렌테, 핀토스 따위의 청바지가 걸쳐져 있었다. 말하자면 당대 최고의 패션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3인조 록밴드 몽구스는 80년대를 닮았다. 우선 밴드 구성부터 그렇다. 몽구(보컬·키보드), 링구(드럼), 슈샤드(베이스)가 구성원의 전부다. 록밴드라면 가장 화려하게 내세워야 할 기타가 없다. 대신 신시사이저가 종횡무진 활약하며 그 자리를 채운다. 80년대에 크게 유행한 신스팝(기타 대신 신시사이저를 전면에 내세운 뉴웨이브 밴드의 음악 스타일) 분위기를 풍기는 악기 구성이다.

이들이 기타 없는 밴드를 시작한 건 2003년. 목회자 아버지를 둔 몽구(김준수)는 교회에서 오르간을 치는 걸 좋아했다. 동생 링구(김준기)는 옆에서 드럼을 쳤다. 몽구는 오르간과 소리가 비슷한 신시사이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생과 함께 공연을 계획했다. 마침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슈샤드(박희정)에게 베이스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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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링구, 몽구, 슈사드.  
 

언더그라운드 밴드 활동을 하다 영국으로 건너가 그림 공부를 하던 중 잠시 한국으로 들어와 있던 슈샤드였다. 셋은 2003년 12월 27일 첫 공연을 했다. 공연 뒤 몽구는 슈샤드에게 영국으로 돌아가지 말고 같이 밴드를 하자고 했다. 공연이 너무 즐거웠던 슈샤드는 기꺼이 수락했다. 몽구스가 정식 밴드로 거듭난 순간이다.

몽구스가 올 2월 발표한 3집 <더 몽구스>에선 80년대에 바치는 찬가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그런데 몽구스 구성원들의 나이를 보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사실이다. 74년생인 슈샤드는 그렇다 쳐도, 82년생인 몽구나 86년생인 링구는 80년대 때는 코흘리개 꼬마에 불과했을 테니 말이다.

“사실 동생이나 저는 80년대 실상에 대해서 잘은 몰라요. 슈샤드 형한테서 듣거나 다른 여러 수단을 통해 간접 경험했을 뿐이죠. 그런데 그게 묘해요. 그렇게 전해들은 80년대는 어딘가 들떠있으면서도 굉장히 낭만적으로 느껴지거든요. 그런 판타지적인 이미지를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어지더라고요.”(몽구)

3집 앨범의 타이틀곡 ‘핀토스’는 스스로 80년대에 바치는 오마주라 일컫는 곡. 아날로그 신시사이저로 연주한 사운드가 약간은 촌스러운 듯 정겹고 따스하다. 음악을 만든 뒤 “이건 80년대 청바지 광고에나 나옴직하다.”는 슈샤드의 말을 듣고 당시 유행하던 청바지 브랜드를 곡명으로 정했단다. ‘88’은 제목 그대로 88올림픽 당시의 축제 분위기를 담아낸 곡. 몽구는 “미러볼의 물방울 조명과 쿵쾅거리는 음악이 뒤섞인 롤러스케이트장의 분위기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몽구스의 음악을 과거의 향수에만 기댄 복고음악으로만 치부하면 곤란하다. 이들은 80년대 음악과 분위기를 자양분 삼아 미래를 노래하는 세련미를 갖췄다. 몽구스는 ‘가장 복고적인 것이 가장 트렌디한 것’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요즘 세계 음악 흐름에 가장 부합하는 밴드이기도 하다.

몽구스의 멤버들은 각자 솔로 앨범 준비에 한창이다. 얼마전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 출연하며 영화배우로서도 입지를 다진 링구는 8월에, 최근 대학원에서 음악치료학 공부를 마친 몽구는 9월에, 전업 뮤지션으로서 음악에만 전념하고 있다는 슈샤드는 9~10월에 솔로 앨범을 발표할 예정이다. 링구와 슈샤드는 특색있는 전자음악을, 몽구는 포크를 선보일 거라고 한다. 기존의 몽구스 음악과는 많이 다른 색깔을 보여줄 셈인데, 신기한 건 각자의 작업을 서로 간에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다는 거다.

“누구 앨범이 더 때깔 좋게 나오나 볼까? 아마 내 음악이 제일 죽일 걸?”
이런 음악적 욕심이야말로 몽구스 음악의 원천인 듯하다.

 

-몽구스가 80년대에 바치는 오마주 '핀토스'를 들으시려면 플레이 버튼을 누르세요. 핀토스는 요즘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예고편에 쓰이더군요. 본방에도 나오면 좋으련만... ^^

작성자서정민(한겨레 신문사 기자)  webmaster@co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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