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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연극은 마약이에요”

Ⅳ 배우 6인이 말하는 ‘연극’

본문

장애인들이 문화를 통해 자신의 솔직한 욕구를 드러내고 있다.
사회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사회와의 적극적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그 움직임은 문화의 영역 중 연극, 영화를 통해 더욱 활발히 드러나고 있다.

장애인들의 이러한 움직임들은 21세기 들어 활개를 띠기 시작했는데, 장애인이 객체화되던 수준에서 장애인이 적극적 문화생산자로 나서면서 최근 장애인 문화가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장애인 문화라 일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며, 최근 장애인들이 주체가 되어 생산하고 있는 문화 생산물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함께걸음>에서 장애인들의 연극, 영화 활동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도록 하겠다.


Ⅰ. 연극, 영상을 통해 본 장애인 문화 ①
      - "카메라가 돌아간다, 나와 만난다"
Ⅰ. 연극, 영상을 통해 본 장애인 문화 ②
Ⅱ. 지적장애우가 만든 영화 ‘봉천 9동’
Ⅲ.국내 유일 농영화 제작 중인 박재현 감독
Ⅳ. 배우 6인이 말하는 ‘연극’

혹자는 말한다. 연극은 인간이 스스로를 확대시키고자 하는 욕망의 산물이라고.
왜소한 육체에 갇혀있는 인간이 자유로운 상상력을 통해 무한히 확대돼 나 아닌 다른 존재와 초월적 경지까지 이해하고자 하는 본능이 연극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장애계서도 ‘세상’ 혹은 ‘자신’과의 소통의 도구로 연극이 선택되고 있다.

그동안 사회적 편견에 억압됐던 자신을 해방시키고, 폭력적 환경에 움츠렸던 자신의 몸을 어루만지며 말이다.
연극을 통해 그들은 어떤 세상을 보고, 어떤 감정을 느낄까.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의 입을 통해 들어보았다.


   
 
  ▲ ⓒ김형숙 기자  
 
“연극은 내 삶의 일부분”

대미(뇌병변 1급)


“저는 시설에 있었어요. 시설에 있으니, 생활에서 제한되는 것이 많더군요. 원래 노는 걸 좋아해 신나는 음악이 나오면 디스코텍엔 가고 싶으나 갈 수는 없고, 그 때마다 혼자 춤을 추며 화려한 조명 아래서 제 몸을 흔드는 상상을 했어요. 그 때 내 안에 숨겨진 끼를 발견한 거죠.

시설에 있다 보면 텔레비전을 많이 보게 되요.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을 동경해 왔죠. 그러던 중 장애여성공감이 제가 있던 시설에서 성교육과 함께 미용실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한 짧은 연극을 했는데, 저와 같은 장애우가 구르고 움직이며 너무 신나게 노는 거예요.

그걸 보고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 나도 해보자!’ 하는 굳은 결심을 하고 공연 때 받은 팜플랫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 이곳에 오게 되었지요. 처음엔 시설에서 오가며 공감과 함께하다 지금은 시설에서 완전히 나와 장애여성공감 연극팀 ‘춤추는 허리’의 팀장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처음 공연을 했을 땐 연예인이 된 것 같았어요. 싸인도 해주고 사람들도 환호해주고 하는 것에 기뻤어요. 나와 비슷한 혹은 다른 아픔을 가진 사람들과 자신의 아픔과 감정들을 몸과 함께 섞어가며 풀어가는 연습시간들도 제겐 너무 소중하고요. 이제는 정기공연이 없더라도 현수막과 카세트만 들고 공원에 나가 우리의 공연을 보여줄 만큼 제게 연극은 없어서는 안 될 제 삶의 일부분이 되었죠.

연극에도 배우뿐만 아니라 기획에서부터 연출, 무대, 의상 등 많은 분야가 있잖아요. 앞으로 우리 극단이 연극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로 장애우들이 뻗어나갈 수 있는 통로가 됐으면 해요.”

   
 
  ▲ ⓒ 김형숙 기자  
 

“연극 통해 내 안의 가능성 발견”

송정아(뇌병변 1급)


“연극은 마약과 같아요. 무대가 어두워지고 조명이 나에게만 비춰오면, 제 마음 속, 제 몸짓 하나에 집중할 수 있게 돼요. 그 전까지 주변의 시선에 의해 바라봤던 ‘몸’과 ‘마음’이 그제서야 ‘나의 시선’에 의해 관찰되고 보듬어지는 거죠. 연극은 제 안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해줘요. 무대에 한 번 서고 나면 그 매력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죠. 정말 마약 같아요!”

 

 

   
 
  ▲ ⓒ김형숙 기자  
 

“첫 무대의 느낌, 잊을 수 없어”

김득규 (뇌병변 2급)

“저는 독립연대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연극에 ‘연’자도 몰랐었는데, 갑자기 비는 역할을 채우려고 왔다가 장애인전문극단 휠에 배우로 남게 됐죠. 전 아직도 첫무대의 느낌을 잊을 수 없어요. 사람들이 나의 움직임에 환호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는 게 어찌나 짜릿하던지….

해보고 싶은 역할이요? 전 제게 맡겨지는 역할 하나하나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역할을 선택하긴 아직 이른 감이 있지만, 열심히 배워서, 나중엔 카리스마 있는 역할에 도전하고 싶어요.”

 

   
 
  ▲ ⓒ김형숙 기자  
 

“삶의 깊이 느껴지는 연기 해보고파”

박정하 (시각장애 1급)

“아는 동생의 소개로 우연히 장애인연극아카데미를 접하게 됐어요. 전 연극을 통해 세상과 만나게 된 거 같아요. 연극을 하면 많이 변해요. 같이 연습하는 사람들도, 저도 삶에 적극적으로 다가가게 되고, 몸을 많이 사용하다 보니 유연성도 길러지고 언어 전달력이나 발음, 표현력 등 언어장애도 많이 좋아져요.

무엇보다 사회구성원으로서 나를 스스로 인정하게 돼요. 삶에 자신감이 생기죠. 이곳에서 활동하기 전에는 몸을 움직일 일이 거의 없었는데, 연극을 시작하면서 몸을 움직이는 법을 알게 되었어요. 몸을 움직이면 기분이 좋아져요. 복잡한 내적 감정을 표출해내는, 삶의 깊이가 느껴지는 연기를 해보는 게 제 목표예요.”

   
 
  ▲ ⓒ김형숙 기자  
 

“만년 스태프에서 연기자로”

고종민 (뇌병변 1급)

“배우가 되고 싶어 연극을 전공했고, 여기저기 기획사며 방송국 등을 찾아가 시험도 봤었어요. 그런데 장애가 있는 제가 들어갈 곳이 없더라고요. 동생이 우연히 장애우 극단이 있다는 걸 보고 제게 알려줘, 휠에 찾아오게 됐어요.

연극을 전공하긴 했지만, 학교에선 제대로 된 역할 한 번 맡아보지 못하고 항상 스태프만 했어요. 워크숍 때 배역을 정하는 것도 오디션을 통해 정하는데, 제 몸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일반적인 연기의 기준으로만 평가하니 저는 항상 떨어질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휠은 내 몸과 특성을 이해해주니, 제가 연기를 할 수 있었어요. 각자 장애 유형과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휠에선 다른 방식으로 연습을 시켜요. 연습을 통해 단원들은 자신에게 맞는 동작과 표현방법을 계발해내죠.

기회가 된다면 피터팬 역할을 하고 싶어요. 물론 육중한 제 몸을 매달 튼튼한 와이어가 필요하겠지만, 하늘을 날아다니고 멋지게 후크선장과 싸우는 피터팬 역할 저 잘할 거 같지 않나요?”

   
  ▲ ⓒ김형숙 기자  

“내 자신 드러내는데 자신감 생겨”

김미옥 (시각장애 1급)

“저는 연극을 하면서 행복감을 느껴요. 어렸을 때부터 영화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시각장애가 있어 마음 한 구석으로 미뤄놓은 꿈이었죠. 그러던 중 장애인신문을 보다 휠에서 장애인연극아카데미를 한다는 이야기를 보고 지원하게 됐어요.

내 장애 때문에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어려웠는데 무대에 서면 내 자신을 드러내는 데 자신감이 생겨요. 이곳에서 연기를 하며 보내는 시간들이 즐거워요. 얼마 전 뮤지컬 한 편을 봤는데, 모든 감정들을 노래에 담아 표현해 내는 배우들이 정말 멋져 보이더군요. 저도 노래 연습을 해서 뮤지컬에 꼭 도전해보고 싶어요.”

작성자김형숙 기자  odyssey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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