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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준 정말 푸진 굿판

임실 필봉 정월대보름 굿판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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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지를 매단 금줄을 두른 달집태우기를 하고 있는 모습  
 
요즘 정월 대보름굿들이 전국에서 펼쳐지고 있다. 이중 지난 2월 16일(토), 임실군 강진면 필봉마을에서 있었던 무자년 정월대보름굿판에 다녀왔다. 올해가 27회째란다.

지난번 정월 초이튿날과 초사흗날, 부안 위도 진리와 대리에서 당제와 띠뱃굿을 보았기도 했고, 매년 설날 다음날부터 정월 대보름 때까지는 여러 지역의 마을굿을 보러다녔기에 과거 여러 번 보았던 필봉굿을 다시금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필봉굿 보존회에서 몇 번에 걸쳐 핸드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 와 일정을 조정할 수 있었다.

필봉굿과의 인연은 호남좌도 임실필봉농악 보존회 회장으로 있는 양진성씨와 여러 문화와 관련 모임에서 만난기도 했고 형님으로 부르면서 친밀감도 있기도 했고, 내 고향 순창과는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예전에도 필봉굿을 여러 번 본적이 있는데, 정월에 하는 대보름굿과 고 양순용 선생(양진성 회장 부친) 추모굿에도 참석했었다. 어느 해 인가는 굿을 배우러 오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환경강연을 하기도 했다.

전주 평화동네거리에서 오랜만에 연락이 된 친구의 승용차를 타고 옥정호를 지나 전수관에 잠깐 들린 다음 필봉마을로 향했다. 전주-순창간 4차선 도로 공사장을 가로 질러 새로 난 포장길을 따라 마을입구에 다다르자, 여러 개 솟대와 함께 금줄이 감겨진 쾌 오래된 당산나무가 서 있었다.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처럼 말이다. 두 개의 커다란 중심 가지가 잘려지고 섞어 있어 수형이 많이 작아졌다. 나무수술을 받아야 할 것 같다. 수령이 오래되기도 했겠지만, 포장도로가 새롭게 생기면서 뿌리에 많은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서쪽 방향으로 필봉이 우뚝솟아 있었다. 회문산으로 이어진다고 하니, 빨치산이 활동했던 1951년 전후에 이곳 필봉마을도 많은 곤란을 겪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태’가 쓴 책 ‘남부군’이 일부 왜곡돼 있다는 평가도 있지만 당시 남부군의 생활과 활동범위를 이 책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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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을회관 앞  
 
마을회관 앞에 다다르자, 대보름굿 행사를 안내하는 대학생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행사 일정에 대해서도 대자보 형식으로 벽에 친절하게 붙여 놓았다. 마을회관 앞에서는 천막이 세워져 있고, 마을주민들과 대학생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미리 온 젊은 학생들이 식판에 음식을 받아가기 위해 줄지어 서 있기도 했다.

이렇게 마을 안에서 대보름굿을 한다니 너무나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진성 형님이 집에서 나와 우리 앞으로 오더니 오랜만이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마을에 이렇게 갖추게 된 과정을 잠시 들었다. 예전엔 마을 건너편에 있는 필봉굿 전수관이나 또 다른 마을에서 대보름굿을 했던 것만 보았는데 이렇게 마을 안에서 한다고 하니 대보름굿의 의미를 잘 살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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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을 붙이고 있는 마을 주민들  
 
마을회관 앞에는 농경지를 매입하여 꽤나 큰 놀이마당을 만들어 놓았다. 엿장수가 큰소리고 ‘엿 사시오’하며 고함을 지른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다가가 맛을 본다. 놀이마당에는 널뛰기, 연날리기, 화살던지기 등 민속놀이와 함께 마을 한 켠에선 소지에 소원쓰기, 부럼 깨기, 민속전 붙이기, 고구마 구워먹기 등이 행해지고 있었다.

마을에서 주민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꿀, 말린 토란과 호박 나물을 비닐봉지에 담아 파는 마을 토산품 판매장도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어떤 어린이가 “소지에 소원을 쓰세요”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어떤 할머니가 소원을 쓴 소지를 지푸라기에 곶고 있는데 잘 곶지 못해 손으로 잡아드렸다. 나도 소지가 소원을 적기로 했다. ‘새만금갯벌을 살아야 합니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계획은 철회되어야 합니다’고 말이다.

놀이마당 한 켠에 커다란 비닐하우스도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많은 사람들이 안에서 점심식사 중이었다. 다소 추운 날씨여서 인지 마을 주민들이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 양쪽에 옹기종기 앉아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식사 하셨냐고 여쭈니, 모두 드셨다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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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떡매치기를 하고 있는 학생  
 
아직 점심을 먹지 않은 터라, 친구와 나는 식판에 음식을 받아 와 이곳 비닐하우스로 와서 맛있게 식사를 했다. 화살던지기와 널뛰기도 잠깐 해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박자를 맞추면서 아주 잘했다.

한쪽에선 인절미를 만들기 위해서 인지 떡매 치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남자 어른들을 비롯해서 젊은 대학생들도 재밌어라 하더니, 직접 떡매를 들고 내리치기도 했다.

오후 3시쯤이 되자, 풍물굿을 위해 치배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대포수를 비롯해 여러 잡색들도 보였다. 예전에도 보았던 분들도 있지만, 새로운 사람들이 많았다. 상쇠 양진성씨가 쾡과리를 치며 시작을 알리자 깃굿이 시작되었다. 양진환씨와 이재정씨, 최호인씨도 보였다.

양반으로 매번 참여하시는 어르신도 하얀색의 수염의 달고 나타나셨다. 치배들을 다 합치니 30명은 되는 것 같다. 잡색들도 골고루다. 영기 밑바닥 주변에 막걸리를 부으면서 잡색들이 음식이 차려진 제상을 앞에 놓고 손을 빌기도 하고 절을 했다.

그런데 예전에 할미로 나왔던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이종진씨에게 물으니, 2년전에 시집가서 오지 않은 것 같다고 했? 참 능청맞게 잘 했었는데 못 봐 아쉬웠다. 오늘은 남자가 할미춤을 능청스럽게 추고 있었다. 어느새 각각 꼬마 한명씩을 어깨위에 올려놓고 무동놀이를 하고 있다. 주위 사람들이 몰려들어 박수를 쳤다.

잠시 후 길굿을 치면서 당산나무로 이동을 했다. 당산제를 지내기 위해서다. 굿을 하기 위해서는 마을 수호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 당연하다. 벌써 젯상이 다 차려져 있었다. 풍물패가 마을 당산 앞에서 20여분 동안 풍물을 치면서 당산신께 들어가도 되는지 물어보고 있다. 이후 당산나무 앞으로 다가와, 대포수의 사회로 초헌을 한 다음 고천문을 낭독하고 종헌을 한 다음 마무리 됐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당산제를 지낸 음식으로 모두들 음복을 했다. 음복을 해야 바라는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떡을 한 점 뜯어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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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산제를 제내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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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샘굿을 치고 있는 모습  
 
다시 마을 옆 샘으로 이동을 했다. 샘굿을 하기 위해서다. 사람에게는 없어서는 안되는 귀중한 것이다. 마을을 만들고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당연히 샘이 있어야 한다. 마을의 흥망성쇠를 가름할 수 있는 마을의 소중한 자산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을사람들의 정보가 유통되던 곳이기도 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은 모양인지 약간은 지저분했다. 예전만 하더라도 이 물로 식수는 물론이요 음식도 해 먹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잘 관리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당 밟기로 이어졌다. 두 집을 번갈아 찾아가서 정말 푸지게 굿이 행해졌다. 잡색들의 재담과 양진성씨의 구성진 민요가락이 중간 중간 이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같이 따라 다니며 흥을 더욱 돋우었다. 집주인이시던 할머니가 촛불을 세워둔 쌀 한말에 돈 2만원을 곶아 놓으셨다. 음식과 술도 한 상 차려 내 놓으셨다. 두 집을 끝날 때가 되니, 어둠이 찾아왔다. 제법 찬바람이 불었다. 다시 놀이마당으로 돌아와 잠시 쉬고 저녁식사를 했다. 비닐하우스에서 우연하게 고창판소리박물관에서 학예연구사로 있는 이영일씨와 같이 식사를 했다. 서로 하는 일들을 소개하면서 막걸리도 한잔씩 나누어 먹었다.

잠시 후 다시 풍물이 시작되었다. 정월대보름 판굿이다. 중간 중간에 모두들 덩실 덩실 한바탕을 춤을 추기도 했다. 정말 대동놀이판이었다. 필봉굿의 특징은 마을 주민만이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찾아온 대학생들이 많이 참여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이들이 굿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웠기 때문에 굿을 하는 동안 직접 치배를 하지 않더라도 계속 따라다니면서 몸과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추면서 흥을 더욱 돋운다는 것이다. 단지 치배들만이 굿을 하면 재미가 없을 것이다. 이들이 있기에 더욱 재미난 재담과 단일한 대동판이 펼쳐질 있는 것이다.

1시간 정도 풍물이 이어지다가 잠시 숨고르기를 위해 휴식을 취한 뒤 다시 굿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치배들의 장기자랑이 이어졌다. 상쇠가 쇠를 치면서 순서대로 한 사람씩 마당 안으로 불러 들였다. 어느 어르신의 소고춤과 양진환시의 설장고, 이재정씨의 상고 돌리기, 그리고 잡색들의 장난스런 춤사위가 이어졌다. 그리고 네명의 장고 선반과 긴 상고돌리기도 있었다. 오랫동안 달고 닦은 상당한 실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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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좌도 임실 필봉농악 보존회 회장인 양진성 상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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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널뛰기를 하고 있는 치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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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긴 상고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  
 
밤12시가 다 되자, 마을뒤 언덕배기로 풍물이 앞장서고 모두를 이동을 했다. 커다란 달집이 세워져 있었고, 소지를 매단 금줄이 감겨져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이 석??달집 주위에 뿌려댔다. 곧이어 마을이장과 양진성 회장 등이 달집에 불을 붙였다. 불이 붙자마자 순식간에 따 올랐다. 대나무가 타서 터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얼굴이 화끈 걸릴 정도로 뜨거웠다. 하늘 위로 불길이 잘 치솟는 것을 보니, 소지에 써서 매단 사람들의 소원이 잘 이루어지리라. 그렇다면 내가 바라던 일도 잘 이루어지겠지. 이글거리는 불기둥 사이로 자그마한 달이 보였다. 아직 완전히 보름달은 아니지만 제법 선명하게 보였다. 달집태우기를 끝내자, 대략 밤 12시반 쯤이 되었다.

오랜만에 흥겨운 정월 대보름굿을 본 것 같다. 전수관에 풍물 공부를 하러 온 학생뿐만이 아니라, 이웃 마을 주민들, 그리고 전주를 비롯해 여러 지역 사람들도 많이 찾아와 같이 대동놀이를 즐겼다. 마을공동체를 살려내고 주민들의 한마음, 그리고 참여한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준 정말 푸진 굿판이었다. 밤늦게 다른 분의 승용차로 전주로 이동하면서 굿판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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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명의 어린이들이 무등 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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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잡색들의 춤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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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긴 상고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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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용기 기자  jyukii@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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