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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체험 Show로 끝난 영화 ‘잠수종과 나비’

[장애코드로 문화읽기] 영화 ‘잠수종과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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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말 경, 평단과 관객들의 호평을 받고 있는 영화 <영화 잠수종>과 나비를 보기위해 광화문에 있는 씨네큐브를 찾았다.

영화관을 가는 길은 가까운 길을 두고 먼 길을 돌아가야만 했다. 5호선 광화문역을 통해서 가면 채 5분도 걸리지 읺지만 그 역에는 승강장부터 대합실까지는 모든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이 꺼려하는 휠체어리프트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정거장 전역인 서대문역에서 내려 2월의 차가운 겨울바람을 애인 삼아 전동 자가용을 날렵하게 몰아본다. 예술영화 전용극장을 처음 방문해본 필자로서 처음에는 그 규모의 소박함(50석 남짓)에 놀랐고 두 번째는 그렇게 작은 극장에 장애인석이 따로 마련 돼 있다 것에 감탄했다.

극장 칭찬은 이쯤에서 접고, 이제 영화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도록 하겠다.

 
 
‘잠수종과 나비’는 프랑스 배우들과 미국제작진들의 합작 형태로 만들어진 영화로 프랑스의 세계적인 매체의 편집장을 지낸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록트인신드롬’이라는 병에 걸려 투병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난 1995년 ‘록트인신드롬’이 발병하여 1997년 사망한 프랑스 패션 전문지 ‘엘르’의 편집장 ‘쟝 도미니크 보비’의 실제 이야기로, 전신마비가 된 이후 왼쪽 눈꺼풀의 움직임만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130페이지에 걸친 병상수기를 쓴 이야기가 영화 <잠수종과 나비>에 담겨 있다.

이 영화는 2007년 ‘칸영화제’ 감독상과 각색상, 2008년 ‘골든 글로브’ 최우수 감독상과 최우수 외국어상을 수상하는 등 화제성과 작품성을 고루 갖춘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영화는 보비(매티유 아맬릭 분)가 갑작스런 발병으로 전신마비가 되어 병원 침대에서 자신을 치료하는 의료진들을 바라보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우울할 거란 기대 깨고 위트와 유머 넘쳐나

카메라는 왼쪽 눈외에 전신의 기능이 마비되어 침대와 휠체어에만 기댄 채 살아가는 주인공의 심정을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체험시키기 위해 영화 촬영 기법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1인칭 시점을 영화 시작부터 한참 동안이나 사용한다.

스크린 위의 상은 보비의 시각에 맞춰 구성되었기 때문에 영화 속 이미지들이 흐릿하고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상태로 관객에게 보여지곤 한다. 또한 보비는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주변인들은 보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보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관객뿐이다.
이렇듯 영화의 상당 부분이 보비의 시선과 목소리로 진행된다.

<잠수종과 나비>처럼 굳이 1인칭의 시점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관객들은 시커먼 공간 안에 오직 스크린만 주목할 수 있는 상영관 안에서 영화 속 주인공에 쉽게 감정이입하며 제3자의 인생을 체험한다. 영화 속 주인공이 실존 인물이던, 허구로 만들어진 인물이든 관객들은 영화를 관람하는 2시간 동안만큼은 자신을 잠시 떠나 주인공의 생애에 몰입한다는 것이다.

상상 속에서만 그리던 해적선장이 되어 바다를 누비기도 하고, 동화 속 공주가 되어 무도회에서 멋진 왕자와 왈츠를 추기도 한다. 옆집 구멍가게 아저씨나 건너 마을 새침대기 아가씨의 인생도 영화를 통해 관객들은 살아 볼 수 있다. 즉, 영화를 1인칭으로 이야기하느냐 3인칭으로 이야기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관객이 얼마만큼 주인공의 입장이 되게끔, 영화가 그 진정성을 담보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소위 ‘잘나가던’ 패션지 편집장이 전신마비가 되어 왼쪽 눈으로만 세상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우울모드로 전개되는 것 아닌가 예측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선입견을 비웃기라도 하듯 위트와 유머로 관객의 웃음을 계속해서 유발한다.

보비는 자신의의 눈을 수술하면서도 본인에게는 수술을 왜 하는지 전혀 설명하지 않는 무성의한 프랑스 의료진들을 비꼬고, 한창 TV에서 하는 축구중계를 보고 있는 자신을 무시한 채 매정하게 TV를 끄고 나가는 눈치 없는 직원들을 원망한다.

그는 왼쪽 눈꺼풀을 움직이면서 간호사들의 미모에 대해 점수를 매기고, 성욕의 곤란함을 고백하기도 한다. 또 병실에 전화기를 설치하러온 기사들이 말을 못하는 장애인이 왜 전화를 필요로 하는지 모르겠다며 “가족에게 전화기로 신음소리 들려주시게?”라는 조크를 던지자, 화를 내는 간호사를 보고 보비는 ‘당신은 너무 유머 감각이 부족해.’라고 (속으로) 말한다.

영화 속 이러한 장면들은 나의 주변사람들과의 관계, 일상적 소소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임을 깨닫게 해주며, 악조건에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 프랑스 사람들의 기질을 보여준다. 

  undefined           ‘장애인 = 결함 있는 인간’ 공식 벗어나지 못해

이러한 모습은 ‘잠수종과 나비’처럼 높은 작품성으로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았던 한국 영화 ‘오아시스’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오아시스’의 공주(문소리 분)는 보비처럼 전신마비로 침대에서 꼼작 못하는 처지가 아니면서도 단지 뇌성마비로 인해 온몸이 뒤틀리고 언어가 자유롭지 못한 장애여성이어서 하루 종일 집안에서 라디오 듣고 거울 장난을 할 뿐이다.

공주는 장애 때문에 집밖을 나갈 수 없는 처지지만 보비와 달리 집안에서는 어느 곳이든 이동 할 수 있다. 하지만 친구 하나 사귀려 하지 않고, 독서라든가 이웃과의 소통 등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 무기력한 모습만을 보여줘 ‘잠수종과 나비’의 보비 모습과 큰 차이를 보여준다.

오직 왼쪽 눈꺼풀만을 움직일 수 있었던 보비는 언어치료사의 도움으로 눈꺼풀을 깜박여 의사소통 하는 법에 점점 익숙해지고, 결국 1년여에 걸쳐 20만 번에 달하는 눈 깜박임을 통해 130페이지에 달하는 병상 수기를 집필하게 된다.

이렇듯 이 영화가 기존의 장애인 영화의 뻔한 설정을 깨는 것은 여기까지다.
보비는 처음부터 자신의 장애를 인정하거나 받아들이지 않고 끝없이 자책한다. 장애인에 대한 복지나 인식이 우리보다 훨씬 발달한 프랑스의 지식인에 속하는 보비지만 그가 생각하는 장애인의 인식은 한국 사람들의 그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보비는 자신의 처지를 끊임없이 비장애인과 비교하며 장애인이 된 자신을 결함이 많은 인간으로 생각한다. 보비는 자신의 현재 모습을 자유로운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수중공사를 위해 사용하는 잠수종에 무거운 잠수복을 입고 들어 가있는 사람에 비유한다. 전신마비로 꼼작 못하고 침대에 누워서만 살아야 하는 자기의 모습을 엄청나게 무거운 잠수복에 갇혀 있는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의 처지를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보비의 심정은 그가 펴낸 ‘잠수복과 나비’라는 책의 첫머리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나는 점점 멀어져간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멀어지고 있다. 항해중인 선원이 자신이 방금 떠나온 해안선이 시야에서 사라져가는 광경을 바라보듯이 나는 나의 과거가 점점 희미해져 감을 느낀다…’

보비의 이런 생각은 아버지날에 병원을 찾은 사랑스런 자식들을 만난 순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장면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화려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는 아이들에게 오른 쪽 눈은 닫히고, 휠체어에 앉은 채 삐뚤어진 입으로 침을 흘리고 있는 자신이 어떻게 비추어질지 두려운 보비는 힘겹게 눈을 깜박여 말한다.

“아빠면서도 손으로 아이들을 만져 볼 수도 안아 줄 수도 없는 처지인 나를 보는 애들 기분이 어떨까?”
또 늘 그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아버지 역시 92세 나이로 거동이 불편해 4층에 위치한 아파트 밖으로 나올 수 없는 몸이기에 아들의 병실에 찾아갈 수도 없어, 전화로나마 “우리 둘 다 정신은 멀쩡하지만 꼼짝 못하는 신세는 똑 같구나” 라며 자신과 아들의 처지를 한탄한다. 

  undefined           꿈이나 환상 통해 비장애인의 몸 그리는 보비

그리고 보비는 이제 다시는 과거의 건강하고 화려했던 시절로 돌아 갈 수 없음을 꿈이나 환상을 통하여 끊임없이 되뇌인다. 음식을 씹지 못해 영양음료 정도만 먹고 있는 처지를 한탄하며 맛있는 요리를 연인과 먹는 상상을 하며, 기껏해야 휠체어를 타고 병원 안팎을 왔다 갔다 하는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지우려 예전에 다녔던 수많은 여행 추억들을 하나하나 꺼내 놓는다.

또, 보비의 절박한 심정을 표현하기 위해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 홀로 휠체어에 기댄 채 꼼작 못하고 있는 모습을 계속해서 부각함으로써, 관객은 그의 외로운 모습을 절절히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관객들은 처음에는 잠시 보비의 장애를 잊고 우스운 상황이나 보비의 유머에 웃음을 짓기도 하던 모습에서 ‘보비는 어쩔 수 없는 전신마비 장애인이야’, ‘내가 보비의 처지가 되어도 저럴 거야’라는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계속해서 떠올리게 만든다.

이렇게 자신의 장애를 한탄하고 비장애인 시절의 추억만을 상상하는 ‘잠수종과 나비’의 모습은 우리영화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오아시스’의 공주는 하루에도 수차례 이상을 비장애인이 되는 상상을 하고, ‘파란 자전거’의 한쪽 팔이 없는 장애남성은 평생을 자신의 장애에 콤플렉스를 느끼며 살아간다. 또 ‘후아유’의 청각장애여성은 타인과의 의사소통이 어려운 처지를 비관하여 사이버 공간에서만 사람들과 대화한다.

이렇게 많은 영화에서 장애인들이 현실 대신 추억이나 상상 속에만 사로 잡혀 있는 모습을 강조 하는 것은 장애인들이 불행한 것은 오로지 자신의 장애 때문이며 비장애인이 되면 모든 불행이 사라지고 행복이 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내 삶이 그 누구와도 비교 안될 만큼 얼마나 값지고 행복한지 절실히 느끼게 해줬다.”, “진짜 열심히 살아야겠다.” 등의 감동을 받았다고 얘기한다. 이것은 대부분의 비장애인 관객들에게 비록 자신들이 명예나 재산은 없는 존재지만 장애인들을 그토록 고통의 삶으로 몰아가는 ‘장애’가 없다는 것이 무엇보다 커다란 축복이라는 허상만을 인식 시켜주는 것이다.

이렇게 잠수종과 나비는 겉으로는 장애인의 시점을 사용함으로써 진정한 장애인의 시각을 보여주는 것처럼 호들갑 떨지만 결국은 비장애인들의 우월함을 과시하기 위한 또 하나의 영화에 불과하다.

작성자심승보 (장애우문화센터 방송 모니터단)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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