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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합이나 따다 끼려묵을까”

왕등도 이양님 할머니의 갯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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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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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안 바위에는 검은큰따개비, 거북손, 홍합이 서로 어우러진 채 밭을 이루다시피 다닥다닥 붙어산다. 섬사람들 이야기로는 셋 다 국을 끓이면 시원한 게 일품이라 하니, 이를테면 왕등도 바위 해안의 ‘국거리 삼총사’인 셈이다. ⓒ 전라도 닷컴 허철희  
 
‘왕등에서는 중국 닭울음소리가 들린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서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섬이다. 부안군에 속하는 서해 맨 끝 섬인 왕등도는 격포에서 32km, 일주일에 두 번(월·목) 다니는 여객선이 유일한 교통수단인 데다 날씨가 험하면 그마저도 끊기고 자칫 발이 묶이게 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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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국 고기잡이배들이 칠산바다 조기떼를 따라 칠산어장 중심인 위도와 왕등도로 몰려들고, 곳곳에 파시가 들어섰다. 그 무렵엔 왕등도 고샅도 시끌벅적 사람들로 붐볐다. 이제 섬에 살고 있는 사람은 10명 정도.

홍합·거북손·검은큰따개비는 ‘국거리 삼총사’

왕등도는 섬 전체가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아니 거대한 바위덩이가 바다에 솟아 있다고 표현해야 옳을 것이다. 해안 바위에는 검은큰따개비, 거북손, 홍합이 서로 어우러진 채 밭을 이루다시피 다닥다닥 붙어산다. 섬사람들 이야기로는 셋 다 국을 끓이면 시원한 게 일품이라 하니, 이를테면 왕등도 바위 해안의 ‘국거리 삼총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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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삽이라고 해야 할지 괭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연장(괭이를 펴서 삽처럼 만든 도구)을 들고 선 이양님 할머니. “집에 끼려묵을(끓여먹을) 게 암것도 없어. 홍합이나 따볼까 허고….”ⓒ 전라도 닷컴 허철희  
 
분화구처럼 생긴 검은큰따개비는 채취하려면 고난도의 기술이 요구된다. 정약전의 설명을 보면 “굴통굴(검은큰따개비)을 따는 사람은 쇠 송곳으로 급히 내리친다. 그러면 껍데기가 떨어지고 고깃살이 남는다. 그 고깃살을 칼로 떼어낸다. 만약 내려치기 전에 굴통굴이 먼저 알게 되면 차라리 부서질지언정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설명대로 껍데기를 칼로 내리치면 껍데기는 떨어져 나가고 덜된 두부처럼 생긴 고깃살만 바위에 남게 된다. 그러면 이 고깃살을 칼로 잘 따내어 씻지 않고 그대로 국을 끓인다. 만약 물에 씻는다면 형체도 없어질 뿐 아니라 맛도 없어지는 것이다.

거북의 손을 닮아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거북손은 여수지역에서는 부채를 닮았다 하여 ‘부채손’, 흑산도에서는 ‘보찰’이라고 부른다. 정약전은 다섯 봉우리가 솟은 산이라 하여 ‘오봉호’라 했다. “오봉호는 뿌리를 돌 틈의 좁은 곳에 박고서 바람과 파도 가운데서 몸을 지탱한다. 속에는 살이 있는데, 살에도 붉은 뿌리와 검은 수염이 있다(수염은 물고기의 귀세미 같다). 조수가 밀려오면 큰 봉우리를 열어 수염으로 조수를 맞는다. 맛은 달콤하다.”

거북손은 독이 없어 날로도 먹을 수 있고, 삶아 먹으면 쫄깃한 게맛살이나 새우 맛이 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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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은큰따개비 ⓒ 전라도 닷컴 허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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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북손 ⓒ전라도 닷컴 허철희  
 


30여 분만에 홍합 5kg…서너 끼니 국거리 장만

마을 할머니 한 분이 삽이라고 해야 할지 괭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연장(괭이를 펴서 삽처럼 만든 도구)을 들고 마을 고샅을 내려온다. 이양님 할머니시다. 할머니는 86세로 고창에서 시집와 지금까지 한번도 이 마을을 떠나지 않으셨다고 한다.

“집에 끼려묵을(끓여먹을) 게 암것도 없어. 홍합이나 따볼까 허고….”
“클낭게(큰일 난 게) 가지 마시오 잉∼ 그러다 다리나 헛디디면 어쩔라고…”
이 마을 노병렬 노인이 만류하신다.

할머니는 듣는 둥 마는 둥 노병렬 노인의 지청구를 뒤로하고 바닷가로 내려가신다.
이양님 할머니 갯살림터는 방파제 모퉁이 해안. 해안은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수가 밀려난 조간대 하부 바위지대는 온통 홍합, 거북손, 검은큰따개비 밭이다.

노병렬 노인이 염려한 것처럼 만일 발이라도 헛디디면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이다. 저런 곳에서 할머니가 제대로 작업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기우였다. 할머니는 깎아지른 듯한 바위 벼랑 위에서 홍합을 따는데 젊은 우리보다도 더 잘 따셨다. 불과 30여 분만에 5kg 정도의 홍합을 따셨다. 할머니 혼자 서너 끼니 드실 만큼의 양이다.

  undefined       ▲ 홍합 ⓒ전라도 닷컴 허철희     채소처럼 감미롭고 담박해서 ‘담채’라 불리는 홍합

홍합 천지 왕등. 홍합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홍합 맛을 모르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그 시원한 홍합국물 맛을 싫어하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신선한 홍합만 있으면 끓여 낼 수 있는 홍합탕은 요리에 담 쌓은 사람이라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홍합 자체에 바닷물이 배어 있어 우선 간이 잘 맞으니 요리를 망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정약전은 홍합을 “맛이 감미로워 국에도 좋고 젓을 담가도 좋으나, 말린 것이 사람에게 가장 좋다”고 했다. 그는 홍합을 ‘담채(淡菜)’라고 했는데, 조개류이면서도 이렇듯 채소처럼 감미롭고 담박하여 채(菜)자를 넣어 이름지은 듯하다.

또한 “콧수염을 뽑을 때 피가 나는 사람은 지혈시킬 다른 약이 없으나 다만 홍합의 수염을 불로 태워 가지고서 그 재를 바르면 신통한 효험이 있다. 또한 음부에 상한(傷寒)이 생길 때에도 홍합의 수염을 불로 따뜻이 하여 뇌후(腦後)에 바르면 효험이 좋다”고도 했다.

<본초강목>에서는 홍합을 일명 ‘동해부인(東海夫人)’이라 했다. 홍합의 살이 여성의 그것을 꼭 닮은 데다 우리나라의 서해는 중국에서는 동해가 되는데, 그들 입장에서는 동해에서 나는, 부인의 그것과 같이 생긴 것이라 해서 그런 이름을 붙인 듯하다.
홍합 천지 왕등에선 라면에도 홍합이 들어간다. 이날 점심으로 우리가 끓여 먹은 홍합탕라면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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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전라도 닷컴 허철희  
 
홍합

일생을 펄 속에 묻혀 사는 다른 조개들에 비해 홍합은 족사를 이용해 바위에 붙어 산다. 수천수만 마리가 바위에 붙어 조수가 밀려오면 입을 열어 먹이활동을 하다가 조수가 밀려가면 입을 다문다.

홍합과 비슷하게 생긴 지중해담치라는 놈이 있다. 서유럽(지중해)이 고향인 이 놈은 2차대전 이후 국내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어찌나 생명력이 강한지 말뚝, 바위, 그물 등 좀 딱딱하다 싶으면 아무데나 착생해 영역을 넓혀가 지금은 우리나라 전 해안을 뒤덮고 있다.

하여, 우리나라 토착종인 홍합은 조간대 깊은 곳으로 밀려나는 신세가 되었는데, 이놈들이 아직은 왕등도 해안까지는 상륙하지 못한 것 같아 천만다행이다.
작성자허철희  webmaster@jeonlad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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