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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처럼’ 꿈을 이루다

[서기자의 변죽 때리는 소리] 가수 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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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평범했다.
또래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아버지가 음악을 특히나 좋아하신다는 거였다. 아버지는 존 덴버, 김추자 따위의 판을 늘 틀어놓았다. 종종 집에 있는 피아노와 기타도 연주했다.

어느날 아버지는 아이에게 피아노학원에 다니라고 했다. 아이는 피아노를 쳤다.
재미가 별로 없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나 체르니 30번을 칠 무렵이었다. 아이는 학원 대신 전자오락실로 향했다. 끝내 아버지에게 걸렸다.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이 났다. 피아노학원을 관뒀다.

중학생이 됐다.
또래들처럼 H.O.T.와 R.ef 같은 댄스음악을 즐겨들었다. 그러다 패닉 2집을 우연히 접했다. 충격이었다. ‘UFO’, ‘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 ‘벌레’ 등 곡 하나하나를 들을 때마다 전율이 일었다. 그때부터 외국 밴드 음악들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스매싱 펌킨스, 프로디지, 케미컬 브라더스…. 당시 홍대 앞에서 막 태동하던 인디밴드들 음악도 찾아 들었다. 델리 스파이스, 언니네 이발관, 크라잉넛….

 
 
직접 연주해보고 싶었다. 중학교 졸업 직전 세고비아 통기타를 사서 독학을 시작했다. 고등학생 땐 집에만 오면 기타부터 잡았다. 공부 안 한다고 혼나도 음악 듣고 기타 치는 데만 몰두했다. 말 그대로 장난 수준이었지만 컴퓨터로 음악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만화 그리기도 좋아했다. 만화 동아리의 형과 교회에 가서 장난 같은 합주도 해봤다. 기타와 드럼의 단출한 조합이었지만 짜릿했다.

대학생이 됐다. 스쿨 밴드에 들어가 기타를 맡았다. 밴드 활동은 재밌었다.
그래도 취미 수준을 넘어서진 않았다.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대에 갔다. 육군 보급 행정병이었다.

운이 좋았다.
부대 분위기가 상당히 좋아 형, 아우하며 지내는 곳이었다. 그래도 외로움은 어쩔 수 없었다. 여자친구도 떠나갔다. 초소에서 밤하늘 별을 보며 마음을 달랬다.

그러다 내무반에 있는 기타를 잡았다. 매일 조금씩 곡을 써내려갔다. 제대할 때 열 몇 곡의 악보가 손에 쥐여져 있었다. 유난히 별과 관련된 곡이 많았다.(우주인, Starry Sea, 별, 천왕성으로)

밴드를 제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려 ‘이코’라는 밴드에 들어가게 됐다. 강력한 록음악을 하는 밴드였는데, 음악적으로 잘 안 맞아서 여섯 달 만에 나왔다. 밴드 시절에 배운 홈레코딩(집에서 음반을 녹음하는 것) 방식으로 데모 CD를 만들었다. 혼자 만들다보니 기타, 베이스, 드럼 등 연주뿐 아니라 노래도 직접 불렀다. 이 가운데 두 곡을 쌈지사운드페스티벌(해마다 열리는 음악 축제. 신인밴드 등용문 역할도 한다) 참가 신청 게시판에 올렸다. 결과는 1차 탈락. 대신 얼마 뒤 ‘해피로봇’이라는 기획사에서 연락이 왔다.

“음악 들어봤는데, 한번 만납시다.”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데모 CD를 그대로 정규앨범으로 바꾸는 작업에 들어갔다. 녹음 때 언니네 이발관 출신 정무진이 베이스를, 델리 스파이스 출신 최재혁이 드럼을 맡아주었다. 얼떨떨했다. ‘우상처럼 떠받들던 밴드 멤버들이 내 앨범 녹음에 참여하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올 3월 첫 앨범 ‘자가당착’을 내놨다. 토이 유희열, 이지형, 이한철, 마이앤트메리 정순용, 언니네 이발관 이석원, 스웨터 이아립 등 내로라는 뮤지션들의 추천사가 뒤따랐다. 4월12일 첫 단독공연을 했다. 싸이월드에 소박한 팬클럽도 생겼다.

이 모든 변화는 불과 여덟 달 만에 일어났다. 음악을 듣는 리스너에서 음악을 들려주는 뮤지션으로 처지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아직도 꿈만 같다. 처음엔 음악하는 걸 반대하던 아버지도 지금은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대학생 강경태는 그렇게 음악인 ‘나루’가 됐다.

“왜 나루냐고요? 친구들이 저를 ‘깡나루’라고 불렀거든요. 쌈지사운드페스티벌 게시판에 글을 올릴 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성인 ‘깡’을 떼어내고 ‘나루’라고 올렸거든요. 근데 그게 결국 제 이름이 된 거예요. 정말 아무 뜻도 없어요. 좀 시시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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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대한 꿈만 이룬 게 아니다. 나루는 요즘 스포츠동아에 만화도 그린다. 만화로 구성된 앨범 표지 작업도 그가 손수 했다. 말 그대로 ‘꿈처럼’ 꿈을 이룬 그에게 남은 꿈은 무얼까?

“10년 뒤에 데뷔 10주년 기념공연을 하면 사람들이 찾아주는, 그런 뮤지션이 됐으면 좋겠어요. 또 평범하던 내가 누군가의 음악을 듣고 결국 음악인이 된 것처럼, 다른 누군가가 내 음악을 듣고 음악인의 길을 결심하는, 그런 음악을 하고 싶어요.”

제법 거창한 꿈을 말하는 그 순간, 그의 얼굴 위로 수줍은 미소가 별똥별처럼 스쳐갔다.

- 나루 <자가당착> 수록곡 '잠'

 

 

작성자서정민 (한겨레신문사 기자)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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