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영상제작문화, 쓴 약이 필요한 때 > 문화


장애인 영상제작문화, 쓴 약이 필요한 때

[장애코드로 문화읽기] 장애인개발원 주최 장애인차별금지법 관련 UCC 공모전 입상작 봤더니

본문

쓴 약 먹이는 안쓰러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약 먹는 것은 싫어한다.
아마도 약의 쓴 맛 때문일 것이다. 아직 미각이 발달하지 않은 신생아들도 입 속에 약을 넣어 주면 인상을 찡그리며 뱉어낸다. 그래도 엄마들은 안쓰러워하면서 열심히 먹인다. 아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빨리 낫기를 바라면서...

이번 「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 관련 UCC공모전 입상한 작품들을 보면서, 쓴 약을 먹여서라도 빨리 나았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이랄까?
이런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며, 이 글을 써내려 갈 것이다.


당사자가 주체적으로 만든 법안 「장애인차별금지법」, 그러나 UCC영상으로는...

드디어 장애인들의 염원이었던 장차법이 2008년 4월 11일부터 시행되었다.
장차법이 시행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정부가 전문가들을 동원해 외국의 입법 사례를 도입하고, 장애인들은 의견만 제시하던 이전의 수동적인 참여수준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크고 작은 장애인단체들이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추진 연대'(장추련)를 결성해서 법안을 만들어 정부와 협상했고, 결국 당사자들에 의한, 법을 만드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이처럼 당사자가 주체적으로 만든 법안은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며 - 미국의 장애인법(ADA법)도 부모들에 의해 만들어진 법. - 그만큼 대단한 의미를 지닌 법이라 할 수 있다.

  undefined  
 
  ▲ ⓒ전진호 기자  
 
이러한 장차법의 의미를 알리고 장차법의 조항이나 내용들을 홍보하기 위해 한국장애인개발원이 마련한 제 1회 장애인차별금지법 관련 UCC공모전.
123편의 작품들이 출품되었고, 예심과 본심을 거쳐, 대상 1편, 최우수상 1편, 우수상 2편, 장려상 4편을 선정 발표하였다.

선정된 작품마다 주제나 메시지는 장차법의 의미와 조항들의 내용을 중심으로 기획되어 공모전의 의도와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몇 작품을 제외하면 안정된 카메라 워크, 자연스럽게 흐르는 편집기술, 내용을 집약적으로 전달하는 극의 구성력 등 작품성만 본다면 안정적이고 좋은 작품들이었다.
어느 작품은 거의 프로급의 수준을 보여주었던 작품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공모전의 입상작들을 보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정작 장차법의 주체성이나,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데, 너무 소극적인 구성과 연출 방식을 보이는 작품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이번 공모전의 목적과는 상반된 것이어서 작품들을 보는 내내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호소 VS 권리의 당위성

우선, 대상을 수상한 ‘깜빡이는 파란불은 파란불이 아니다’는 장차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보여줬던 그 당당함이나 주체적인 입장들을 영상 속에 과감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어두운 시각으로 접근되고 있었다.

특히 내레이션의 내용과 배경음악, 화면구성이나 톤이 부조화를 이룬다.
다시 말해 내레이션의 내용은 분명히 교육기회와 이동권의 차별적 내용을 열거하며, 장차법 시행에 대한 기대감과 사회의 변화 등을 대변해 주는 내용인데, 영상에 비춰지는 배경 칼라는 쓸쓸한 회색과 어두운 골드 빛에, 배경음악은 변화도 없이 잔잔하고 우울한 음악 한곡으로 일관한다.

그러면서 UCC의 장점인 직설적이고 독창성은 온대간데 사라지고, 우리가 매일 방송에서 접할 수 있는 화면구성과 배경음악, 조명 등이 랑데부를 이루며, 당연한 권리로서의 주장이 아닌 호소에 가까운 영상, 즉 장애인이 등장하는 기존 영상의 고정화된 연출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이 작품은 입상한 작품 중에 영상이 가장 안정적이고 스토리의 짜임새도 좋았다.
그러나 이번 공모전의 취지나 UCC라는 매체적 특성을 감안한다면, 대상을 받을 만한 작품은 아니었다.
우수상을 수상한 ‘저는 오늘도 차별 합니다.’의 작품성향 역시 거의 비슷하다.

우수상을 수상한 또 한편, ‘거꾸로 가는 창현씨의 하루’는 보는 내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걸까란 의문이 들 정도다.

특히 스토리 구성부분이 지나치게 작의적이어서 공감할 수 없었다.
제목과 시작부분부터 장애를 부각하는 내레이션과 영상구성, 지나치리만큼 비장애인들을 양심 없는 사람들로 몰아가는 추측에 불과한 상황설정 등은 오히려 동정심을 강요하고, 의존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는 역효과의 우려를 낳고 있다.

이 작품은 한마디로 당사자의 당당한 권리를 당사자의 시선이 아닌 타자화 된 시선, 특히 연출자나 작가의 자기적 잣대로만 전달하고 있는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이 작품에서 보여 지는 영상이 장차법을 홍보하고, 알리는 대표주자로서 적합한지에 대한 부분은 신중을 기해야할 것이다.

이 외에도 장려상을 수상한 3작품 역시 장차법을 홍보하는 UCC로는 그리 적합지 않아,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이들 작품들을 보면서 줄곧 머릿속을 맴돈 의문들이 있다. 공모전의 취지가 무엇인지, 선정기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무엇이며,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하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공모전의 취지에 어느 정도 매치되는 두 작품이 있었다는 거다. UCC의 장르적 특성을 잘 살려 장차법의 의미와 권리조항들의 당위성을 알리려는 작품들을 의미한다.

특히, 장려상을 수상한 ‘운수 좋은 날’은 아이러니하게도 제목과는 정반대의 상황들이 펼쳐지면서 극의 흥미를 불어넣어주는 동시에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시너지 효과를 의도한다.

의외성이 주는 강한 전달력을 노린 것 일까?
아무튼 극 구성이 흥미로웠고 짜임새나 흐름도 자연스러웠다.
여기에 전반부에서 연출되는 스틸 컷 형식의 화면구성과 마지막 엔딩 신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스토리의 개연성을 영상으로 표현해보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었고, 마지막 장면에서 ‘장애인 오영진이 아닌 오영진으로 불리는 사회’란 글귀는 더욱 강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다.

서류심사에서 합격한 오영진이 장애 때문에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암시, 호프집 주인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손님을 거부하는 에피소드 등은 장애인 오영진의 차별받고 있는 삶을 직설적으로 풍자해 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용된 3~4곡의 배경음악(좀 튀는 부분도 있었지만...), 만화적 발상인 것 같은 말풍선 형식의 자막처리 등이 어우러져 풍자적인 느낌을 더해준다.
결국 이 작품은 인간의 기본권도 차별받고 있는 개인의 하루를 통해 신속, 획일주의의 사회, 외형 중시의 사회 등을 비틀고 있는 것이다.

가끔 편집에서 매끄럽지 않고, 화면 구도도 약간 서툰 감이 없진 않지만, UCC의 아마추어적 발상에서 본다면 이해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최우수상을 수상한 ‘외출’은 편이시설 문제를 장애인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편리한 시설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편의시설의 당위성을 알리려 했다는 점이 돋보였고, 자신의 상황을 직접 랩으로 만들어 삽입하고 있다는 것 등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전체 메시지를 엔딩 신 하나로 함축시켜 전달하는 편집과 구성력은 가장 돋보였다.
단, 가사내용이 좀 더 직설적이고 과감했더라면, 그리고 자동차와 사고가 날 뻔한 상황에서 수동적으로 대처하는 태도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메시지 한마디 던져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장애인들 스스로도 영상을 분별 할 수 있는 비판적 안목을 기르는 것이 중요해

영상작품은 대본이나 기획의도도 중요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영상으로 표현해내어 그 피사체나 메시지를 어떤 관점을 가지고, 어떻게 전달하는가가 상당히 중요하다.
결국 영상작품은 책이나 신문과 다르게 영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그 이야기에서 피사체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나아가 우리의 인식이나 가치관, 정서 등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이번 공모전처럼 특별한 목적과 그로 인해 공인된 영향력이 있고, UCC라는 그 영향력 또한 대중적 위치에 놓이는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인터넷 문화가 우리생활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요즘, UCC의 기능을 조선 시대의 신문고의 기능으로도 활용될 수 있으리라 전망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특히 UCC는 영상을 제작하고 알리기에 비교적 용이한 장르이고,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여 빠른 확산력이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독창성이 무기가 되는 특성도 함께 가진다.

이번 입상작들처럼 기존의 영상작품들과 차별화 되지 못하고, 비장애인들의 배려적인 시선들을 유도하는 작품들이 과연 네티즌들의 관심을 얼마나 끌 수 있을지, 설사 끈다 해도 장차법이 가진 진정한 의미를 얼마나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스러움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더 나아가, 그러한 작품들을 인정해주는 많은 장애인 영화제나 공모전을 통해 입상한 작품들이 공인된 꼬리표를 달고, 장애인 영상제작문화의 교본처럼 활용 되어, 비슷비슷한 작품들을 계속 만들어 내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쯤 점검이 필요 할 때이다.

작품성을 평가하는 일반적인 기준은 기획의도, 편집, 구성, 연출이다.
그러나 구성과 편집, 연출은 기획의도를 돋보이게 하는 도구인 동시에 그 기획의도를 왜곡시키는 도구로도 둔갑한다.

그동안 이런 도구들로 인해 장애인의 이미지를 왜곡 시키거나, 장애계의 이슈나 인식 전환 등의 주제가 잘 살지 않고, 기획의도도 훼손되는 경우가 많았음은 우리 모두 공감할 것이다.

이런 오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장애인 영상제작에 열정을 갖고 활동하는 분들이 장애인에 대한 시각을 어떻게 갖는가가 중요하며, 장애인들 스스로도 영상을 분별 할 수 있는 비판적 안목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문제는 장애계 모두 함께 고민해 봐야할 문제로 장애인 영상미디어교육의 화두로 던지고 싶다.

올해도 변함없이 크고 작은 장애인인권 영화제나, 여성장애인 독립영화제, 인권이나 독립다큐영화제 등이 열렸고, 앞으로도 많이 남아 있다. 이들 영화제나 장애인 영상제작활동에 관계하는 분들이 항상 고민하는 문제겠지만, 재차 이야기하자면 각 영화제의 취지와 심사기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는 것이 무엇인지가 입상한 작품들에 의해 분명히 드러나 주어야 한다.

특히 이번 공모전과 같이, 어떤 이슈를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선정된 작품들은 그 영향력 때문이라도 더욱 명확하고 당찬 메시지들이 드러났어야 했다. 그래야 차별성과 공신력 그리고 올바른 인식을 전파할 수 있으리라.

P.S: 시청각 장애인들은 어떻게 보라는 것입니까, 작품마다 자막이나 화면해설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정작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영상문화를 선도해야 할 이런 영상작품마저도 차별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문화란 본래, 어울림을 추구하며, 그 어울림에서 문화가 전파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루 빨리 누구나 소외되지 않고, 보고 즐기며 함께 감동을 느끼는 영상문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촉구해야 할 것입니다.

작성자백수정(YMCA 어린이영상문화연구회 미디어 교육팀장)  webmaster@cowalknews.co.kr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함께걸음 과월호 모아보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8672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노태호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