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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빳빳해" "다 짱짱해"

[오일장 속으로] 해남 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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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닷컴]

   
씨앗 하나 하나 심어 키운 모종이다. 장차 푸른 밭이 될 모종을 가져갈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할머니. ⓒ 김창헌 기자
목련꽃이 피더니 연분홍 철쭉꽃이 만발이다. 꽃밭 너머로 바지락 담은 대야가 두둥실, 꽃나무 사이로 콩나물통이 빠져나간다.
나무장사가 일찍이 왔다. 장터 한쪽을 차지하고 동백 산수유 대봉 월하시 대추 자두 살구 석류…. 한쪽에 소나무, 한쪽에 향나무, 작은 정원을 만들었다.

한 할머니는 빈 주전자를 들고 왔다갔다 하며 꽃구경을 한다. 자식들 온다고 낙지를 사러 나왔는데 “낙자장시(낙지장사)가 끼우르다(게으르다)”고.
나무장사 말이 맞다. “엄니가 장 피(펴)지도 않았는디 (자식 온다고 하니) 맘만 급해 갖고 서둘러 불었구만.”

보고 또 보고, 자꾸 눈에 들어오는 꽃. 할머니가 실하게 핀 철쭉 하나를 탐낸다. “이거 (집 마당에) 숨거노믄 금방 (꽃) 떨어져 불제.” “그것이 보리 빌 때까지, 질로 늦게까지 피는 거여라.” “마수 했어.” “금방 온 것 안 봤어라.”
꽃나무 한 그루 사며 괜한 사람을 탓한다. “낙자장시 땜시 헛돈 나가네. (꽃) 하나라도 떨어지믄 (다시) 뽑아갖고 와부네.”

해남 북서부, 화원반도 끝에 서는 화원장(5·10일). 처음 화원장을 찾은 이는 “이게 다야” 하며 장 품새를 못마땅해하기도 하지만, 이 봄날 화원장은 꽃냄새부터 봄전어, 보리숭어, 별스럽게 봄옷 장만을 하는 할머니들까지 볼거리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오전 11시를 넘기지 못하고 파장하는 한나절장이지만 사람들 몰려드는 곳이 여럿이다.

   
정신 없었던 하루. 모종장사 진소순 할머니가 키운 참외나무 오이나무 가지나무가 잘 팔렸다. 옮긴 자리에서 ‘호빡’잘 클 것이다. ⓒ 김창헌 기자

   
보자기 속 방울토마토 모종. 보자기 가득 차도록 열릴 것이다. ⓒ 김창헌 기자

“요새 숭애는 가시나하고 입맞추는 것보다 나아”

사람들 들락거릴 만한 자리는 뚫려 있어야 한다.
좌판 상인들은 좁은 길도 계산해 가며 물건 놓을 자리를 정한다. “거기를 터야 돈이 들어올 것인디, 같은 갯것인게 내 옆으로 와. 모태 놔야 폴리는 거여.” 그렇게 타협을 한다.
진도 군내에 사는 한 아주머니는 오늘이 군내장날인데도 화원장까지 왔다. 화랑기와 감태를 가져왔다. “진도는 감투(감태)를 잘 안 묵어. 여기 사람들이 묵는게 이쪽으로 갖고 와야 돈 구경을 하제.”

화원장의 본격적인 장사는 활어차가 장터에 들오며, 어물상인들이 바쁘게 바닷물 받아 나르며 시작된다. 시장의 반이 활어판이 된다. 큰 대야들이 놓이고 낙지 돔 농어 우럭 왁새기(갑오징어) 고금치 돔발이(돌발상어) 장금상어 등이 제자리를 차지한다. 넓은 쟁반에는 간재미 주꾸미가 푸지게 오른다. 숭어와 전어는 망째 가져와 바닥에 부어놓는다.

숭어가 싸다. 숭어 찾는 이들이 많다. 30년 동안 어장을 했다는 김병진(64)씨는 “요즘 숭애(숭어)는 가시나하고 입맞추는 것보다 나아”라고 웃는다. 그만큼 단맛이 들어갈 때다. 바닥에 등 뒤집는 숭어는 눈알이 노란 참숭어와 눈알이 까만 개숭어(가숭어). 이곳에서는 개숭어를 ‘시랭이’라고 한다.

   
화원장은 활어가 강세다. 활어 찾는 손님도 많다. 못 팔고 장을 파하는 상인이 거의 없다. ⓒ 김창헌 기자

   
꿀(굴) 까는 아낙네. ‘사라’는 소리도 없이 굴만 까는데 일찍이 판 끝났다. 밉게 생긴‘자연산’이다. ⓒ 김창헌 기자
장 보러 나온 사람들, 제사상에 오르는 참숭어는 마다한다. 시랭이만 고른다. “시랭이가 보리 누룩누룩 익을 때 질로 맛있다는 보리숭애잖애. 시방부터 맛이 들 때제. 참숭애는 겨울 찬바람, 하늬바람 불 때 달고.” 진도 고군면 벽파리에서 이강망으로 잡은 고기를 가져온 진막단씨의 말이다. ‘태산보다 높은 보릿고개에도 숭어 비늘국 한 사발 마시면 정승 보고 이놈 한다’라는 속담 속의 ‘숭어’가 다름 아닌 ‘시랭이’인 것.

그러나 시랭이가 아닌 참숭어를 몽땅 사는 아저씨가 있다. 이 좌판 저 좌판 들러 모두 걷어가다시피 한다.
“알 뺄라고(빼려고) 그러는 거여. 몰려(말려)갖고 알젓(어란) 맨들라고. 시방부터 알이 들기 시작하거든. 일본 사람들이 알젓 없으믄 못 산게, 일본으로 수출한다고 해.”
진막단씨는 장사하면서 바다에 담가놓은 그물 걱정을 한다. “이 바람을 고기가 질로 싫어한디. 마파람 불믄 고기가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갖고 안 나와.”

    ‘봄의 진미’ 웅어. ⓒ 김창헌 기자

‘봄의 진미’ 웅어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지만 이쪽 지역에서는 ‘봄전어’도 알아준다. 김병진씨는 “바다라고 다 같은 바다가니. 여기서 나는 전어는 원래 맛이 있는 전어여. 칠산바다에서 나는 것은 굵어도 맛이 없어. 요 앞바다 잡힌 놈들은 잘잘하니 맛있어. 전어 묵는 사람들 큰놈 썰어 묵들 안해”라고 말한다.

봄전어도 괜찮다지만 이 봄에 먹어봐야 할 생선이 있다. 꼬리가 긴, 칼처럼 생긴 웅어.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지만 이쪽 지역에서는 ‘봄전어’도 알아준다. 김병진씨는 “바다라고 다 같은 바다가니. 여기서 나는 전어는 원래 맛이 있는 전어여. 칠산바다에서 나는 것은 굵어도 맛이 없어. 요 앞바다 잡힌 놈들은 잘잘하니 맛있어. 전어 묵는 사람들 큰놈 썰어 묵들 안해”라고 말한다. 봄전어도 괜찮다지만 이 봄에 먹어봐야 할 생선이 있다. 꼬리가 긴, 칼처럼 생긴 웅어.

‘봄의 진미’로 알려진 고기. 많이 잡히지 않아, 쏟아놓은 전어 한쪽에 골라 놓았다. 이맘때 뼈째 썰어 먹는데 살이 정말 연해 녹아든다고 한다. 봄철 웅어가 대접받는 것은 5월이 넘어가면 뼈가 억세지고 살이 없어 잡아도 먹지 않는 고기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쥐포를 만드는 ‘쥐고기’.
ⓒ 김창헌 기자
특별하게 생긴 검고 납작한 물고기 한 마리. 조화순(55)씨가 고기이름을 알려줬는데 더 자세히 보게 된다. “쥐고기(쥐치). 쥐포 잘 묵잖애. 그 고기여. 껍질이 금방 베껴지니까, 요리하기도 좋아.”

조화순씨가 활어 고르는 방법 하나를 알려준다. 고기 꼬리를 봐야 한다는 것. “고기 꼬리가 질로 먼저 상해. 망에, 활어차에 오래 있슨 놈은 꼬리가 온전한 놈이 없어. 횟집에서 묵을 때도 수족관 들여다보믄 꼬리 제대로 있는 놈이 싱싱한 놈이여. 그 놈 잡아주라고 해야제.”

바지락 파는 할머니는 여느 장에서 보기 힘든 조개를 함께 팔고 있다. ‘나배기’라고도 하는 ‘나박조개’다. 뻘 깊숙한 곳에서 잡히는데 배릿한 맛이 그만이다. 해물탕에 나박을 넣어 끓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차이를 보일 정도로 시원한 맛을 우려낸다. 나박조개는 해남 진도 고흥 같은 남쪽에서만 나는 조개라고 한다.
꽃게잡이가 시작됐다고 들었는데 장에는 나오지 않았다. 바지락 할머니는 “요새는 비싼게 장에는 아직 안 나와”라고 말한다.

   
장에서 사라진 품목, ‘양젯물’(양잿물). 지금의 비누보다 몇 배는 깨끗하게 빨아졌다 한다. 그러나 독성이 있어 가슴 아픈 사건도 많 았다. ⓒ 김창헌 기자

   
“나 먼저 가네.” 발로 잡은 고기를 직접 가지고 나온 어민. 가벼워진 대야, 무거워진(?) 호주머니. 이럴 때의 표정이 이렇다. ⓒ 김창헌 기자

뭐시든 “호빡 컸어” 하는 ‘호빡 가게’

“까지(가지) 시(세) 개, 방울토마토 두 개, 굵은 토마토 두 개, 참외나무 시 개.”
어물전만큼이나 붐비는 곳이 모종 가게다. 모다 허리 구부려 튼실한 놈을 찾고 있다. 모종장사는 “다 빳빳해” “다 짱짱해” 하며 정신이 없다. 이것저것 들었다 놓고, 들었다 놓고 하는 손님한테는 “아, 모가지 떨어져”하며 사람들 놀랄 정도로 큰소리를 친다.
손님들도 바쁘게 장사하는 모종장사에게 악을 쓸 때가 있다.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성가신 일이 안 생긴다. “나 돈 줬어. 돈 줬어.”

같은 모종이라도 손님마다 부르는 이름이 제각각이다. “아삭아삭고추” “맵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은 놈.” “질로 먼저 따 묵을 것.” 오이처럼 크게 열린다 해서 ‘오이고추’라 부르는 고추를 부르는 말이다. 같은 오이가 ‘마디오이’도 되고 ‘매듭오이’도 된다. 긴호박도 ‘매듭호박’ ‘마디호박’ ‘쭈꾸미호박’이라고도 부른다. 줄기가 주꾸미 발처럼 퍼져 호박이 열리기 때문이다.

금평리에서 온 진소순(66) 할머니 가게는 ‘호빡 가게’다. 뭐시든 “호빡 컸어” 한다. 할머니 가게에서는 고추 오이 말고도 수박나무와 수세미나무도 잘 나간다. 할머니 가게에서 가져다 심은 수박이 달다고 소문이 났단다. 고랑 잘 쳐 한 낭구(나무) 심으면, 비료 좀 해주면 따서 먹고 따서 먹고 한다고.

수세미는 몸이 약한 노인들이 꼭 심어야 하는 것. 까닥하면 걸리는 감기, 이것 달여 먹여야 한다.
진소순 할머니는 씨앗 하나도 놓고 팔고 있다. ‘잎싹무시’ 씨앗. 잎사귀 따먹으려 심는 무. 지금 삐래야(뿌려야) 한다.

   
오늘은 장날, 이 정도는 입어줘야. 장구경 나온 노부부.
ⓒ 김창헌 기자
   
“한 잔씩 해야 그 기운으로 장사를 하제.” ⓒ 김창헌 기자
“목포 앞선창에서 여객선 타고 장날이믄 밀려들어 왔제”

장옥 한 처마에 매달려 달랑거리는 이것. 널빤지에 ‘양젯물’(양잿물, 빨래에 쓰는 수산화나트륨)이라고 쓰여 있다. 지금은 팔고 있지 않은, 장에서 사라진 품목이다. 양잿물은 ‘서양에서 넘어온 잿물’이라는 뜻인데 고선자(69) 할머니는 “무명빨래할 때 많이 썼제. 비누보다 수십 배는 깨까시(깨끗하게) 빨아졌제”라고 말한다. 양잿물이 사라진 것은 독하고 액체라 쓰기에 불편했기 때문이다. 권순재(78) 할아버지는 “옛날에 양잿물 비싼게 가난한 집은 메밀대 태워 갖고 그 재를 그릇에 담아 물 붓고 우려내서 양잿물 몇 방울 섞어 갖고 고것으로 빨래를 했제”라고 말한다.

권순재 할아버지는 화원장이 생겨날 때를 기억하고 있다. 1940년대 후반이다.
“내 나이 열일곱, 열여덟에 장이 맹글어졌어. 왜 기억하냐 하믄, 신덕리 비석거리에 장 조성한다고 깔끄막(언덕)을 파헤치고 했는디 울력하다가 사람이 한나 죽어불었어. 그런게 거그에 장터를 안 하고 여그 청룡리에 장터를 세운 거여. 건물이고 뭐고 없었어. 맨땅이었제.”

그러나 문헌을 살펴보면 1770년 편찬된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5·10일 화원목(花原牧)에 섰던 ‘목장(牧場)’이 나와 있고 1830년에 편찬된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는 십일장(5일)으로 ‘화원장’이 나와 있다.

   
물건 담는 법도 여러 가지. ⓒ 김창헌 기자
화원장은 1920년대, 1930년대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사라졌다가 다시 생겨난 장으로 추측된다. 권순재 할아버지 기억에서처럼 1940년대 후반 주민들이 장의 필요성을 느끼고 다시 세운 것이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화원장’이라 하지 않고 ‘목장’이라고 했다.

김갑동(78) 할아버지는 “화원장은 목포 사람들이 있어 큰장으로 발전했다”고 말한다.
“목포 앞선창에서 여객선 타고 장날이믄 밀려들어 왔제. 나락 보리 수수 오만 농산물 다 사갖고 가고 민물장어 숭애 낙자 같은 거 화원면 사람들보다 목포 사람들이 더 집어갔제. 되거리장사꾼(생산자로부터 물건을 받아 되파는 상인)들이 얼매나 많았는디. 시방은 삥아리(병아리) 한 마리 안 나와도 전에는 소전이 서고 그랬제.”
권순재 할아버지는 “진도대교가 생기며 장이 못 써졌다”고 한다. 문내면 우수영장과 상황이 180도로 바뀌었다 한다.

“옛날에는 우수영장은 도깨비장이라 했어. 아침에 반짝 서고 말았제. 화원장은 하루 내내 서던 하루장이었고. 그런디 진도에 연륙교가 나분게 진도 사람들이 우수영장을 가불어. 고기 잡아갖고 우수영으로 갖고 가고. 나오는 것 많은게 사람들 몰리고 한게 우수영장이 하루장 되고 화원장은 반나절장 되불었제.”

우수영장은 진도 사람들이 가세하며, 진도 가는 길목으로 외부 사람들이 찾아들며 옛날보다 훨씬 큰장으로 성장했다. 반면 화원장은 오히려 우수영장에 사람들을 뺏겼다. 가까운 거리, 살 것 많은 우수영장으로 사람들이 발길을 돌렸다. 더구나 화원장 바로 앞날이 우수영장(4·9일)이다. “우수영이 하루 앞에 장이 서 분게 장꾼들도 물건을 우수영에서 다 소비시켜 불어. 화원장은 물건이 딸리제. 목포 가까운게 목포로 가 불고.”

이런저런 얘기에 고선자 할머니는 장터 화장실 탓을 한다. “변소를 저래놓고 장사가 돼. 무솨서(무서워서) 못 간당게. 누가 (이번에 당선된) 국회의원한테 얘기했당게 해줄란가 어만(애먼) 소리로 들을란가 볼라만.”

   
장터 가겟집 한 집은 마루가 있어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사랑방 주인은 흰 목도리를 한 할머니. 자리 뜬 적이 없다. ⓒ 김창헌 기자
낙지에 숭어에…장터에는 즉석 선술집이 여럿

“소주도 요구(요기)되는 것이여.”
점심도 되기 전에 파장되다시피 손님이 뜸한 장, 김덕례(48)씨 가게가 선봉을 텄다. 낙지에 숭어에 한 패가 모였다. 소주 세 병이 금방이다. 웃음소리가 커진다.

다른 어물가게에도 한 패, 과일가게에도 한 패. 장터에 즉석 선술집이 여럿이다.
한 젊은 상인이 “주말에는 애들 집에 있슨게 장사 나오기 싫다. 안나올란다” 한다. 다른 상인이 “그렇게 해라”고 한다. “장사함시롱 후회되는 게 그런 거여. 애기들 데리고 놀러 못 댕긴 것. 애들 다 커 불믄 애들보다 니가 더 아쉬울 거여. 그런 재미도 없이 살았다고…. 장사하는 사람이 평생 시간 나는 줄 아냐.”

어물전 막내 차소현(36)씨는 이래서 화원장이 좋다고 한다. “마진(이윤) 얼마 없어도 이 장에 오믄 기분 좋다”고. “속사정 다 들어주고, 집안 얘기도 들어주고. 나 장에 안 나온 날, 언니 엄마들이 얼마나 걱정을 해줬는가. 장사 시작하기 잘했다고 생각들 때가 이럴 때란게.”

장에서 만난 사람

“5년 지둘린 두릅이여” 땅두릅 파는 박갑배 할머니
   
ⓒ 김창헌 기자
우수영 동해리에서 왔다. 상추 양파 호박고구마 등 집에서 가꾼 것 조금씩 해왔다.

물건 찾는 이 있으면 웃음부터 ‘날리고’ 장사하는 박갑배(70) 할머니. 물건 안 사도 “다음에 오쇼”하고 웃고 만다.

할머니의 알짜배기 물건은 ‘땅두릅’. 할머니는 “목포 가져간게 알아주더란게, 산두릅보다 여간 보드란게 아녀” 하며 손님을 끈다. 그리고 강조한다. “5년 키운 두릅이여.”

사연이 많은 땅두릅이다. 5년 만에, 올해 처음 수확을 본 땅두릅이다. 땅두릅 때문에 할아버지하고 싸우기도 많이 했다.
“충청도 양반이 와 갖고 요것을 해보라고 해. 숨궈 놓기만 하믄 돈이 된다고.”할아버지가 그 말을 듣고 한 해 나락농사 지은 돈 전부를 이 땅두릅에 ‘바쳤다’. 할머니는 5년이라는 세월이 막막해 반대했다. 소용이 없었다.

   
ⓒ 김창헌 기자
땅두릅을 키우는 동안 할아버지와 많이 싸웠다. 5년 내내 잘 될까 조마조마했다. “3년 모판에 키워 갖고 본바탕(밭)에 옮겼는디 겨울 온게 죽어부네. 봄에 싹 나온단디 이대로 죽어 불고 안 나올까봐…. 딴 밭보다 두릅밭은 풀 하나 없이 내가 키웠단게.”

올 해 첫 수확을 했으니 이제 해마다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풀 매고 잘라주고 흙 돋아주고 따내고 고생길이 널려 있지만 할머니는 “인자는 괜찮해” 한다.
“지둘리기(기다리기)가 애러운(어려운) 것이제. 땅두릅 나고 난게 영감하고도 인자 안 싸워.”

 

작성자김창헌 기자  gudu@jeonlad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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