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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영화축제인가?

[장애코드로 문화읽기] 시청각장애인 볼 권리 갖춰지지 않은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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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 중심이 되는 영화축제’, 그러나 즐길 수 없는 시민들도...

부천에 살면서도 처음으로 참여해 본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Pifan, 이하 피판). 어느덧 12회를 맞이한 피판 영화제는 올해도 어김없이 7월 18일부터 27일까지 열흘간, '사랑, 환상, 모험'을 주제로 39개국 200여 편이, 6곳의 영화관에서 관객들과 만났다.

그동안 피판 영화제는 세계 영화의 흐름을 체험하는 교두보역할을 해왔고, 저예산 및 독립영화의 국제적 메카를 지향하며, 매년 시민이 중심이 되는 수도권 축제의 이미지를 완성한다는 목적으로 기획되어 영화 마니아들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들도 기다리는 영화제가 되었다.

이러한 주제와 취지는 내가 관람한 두 편에 애니메이션(‘제불찰씨 이야기’, ‘녹티나’)에서도 고스란히 전해져 여러 가지 생각거리들을 던지며 감동을 주었다. 두 작품 모두 어릴 때부터 따돌림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나 사회에서 소외시킨 사람들의 이야기로, 불합리한 사회구조나 인식들로 인해 소외되고 차별받는 사람들이나 직접 장애인이 등장하진 않지만,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소통의 일방성’을 비틀고 있는 내용이었다.

이 두 애니메이션을 관람하는 내내 작품 속 에피소드와 현실 속 우리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며, 많은 장애인이나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함께 볼 수 있었다면, 훨씬 다양한 생각거리들을 공유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사람들의 비평이 필요했던 작품들이란 생각이 줄곤 들었다.

정작 이들 대부분이 영화제에 참여할 수도, 영화를 함께 볼 수도 없는 환경과 시스템이었다는 근본적으로 차별의 문제가 일어나고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끝나가고 있다는 것은 더 큰 문제였다.
그럼에도 이 영화제는 ‘시민이 중심이 되는 축제’라는 슬로건을 자신 있게 내세운다.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공식포스터 휠체어를 탄 노인이나 장애인들은 영화관 접근부터 불편

우선, 문화시설 접근성과 관련하여 이번 영화제의 문제점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번 피판 영화제는 200여 편의 다양한 영화가 상영되었고, 부대행사도 다채롭게 진행되어 그야말로 영상문화를 매개로 한 축제였다.

부천시에서는 이 축제를 시민들이 안전하고 즐겁게 즐길 수 있도록 셔틀버스 운행 및 지하철 연장운행을 실시하며 교통편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셔틀버스 자체가 저상버스도 아니고, 휠체어전용버스도 운행되지 않아서 장애인이나 휠체어를 탄 사람들은 도저히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 역시 택시를 타고 6곳을 다니다보니, 교통비에 영화비를 합하면 솔직히 만만치 않은 경제적 부담을 감수해야 했다. 경제적 부담도 부담이었지만, 이 행사를 기획했던 조직위의 의식 속엔 장애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의 존재는 안중에도 없었고, 이로 인해 이들을 위한 교통편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은 부천시의 문화행정 자체에 대한 실망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문화시설에 대한 접근성의 문제는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1차적 요건으로 매우 중요하게 인식되어야 할 문제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이번 영화제를 통해 여전히 장애인들은 좋은 공연이나 영화를 보고 싶어도 접근하기조차 힘든 상황에 놓여 있고, 이로 인해 장애인의 문화적 향유권은 여전히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은 우리나라의 문화의식수준이 밑바닥임을 말해주는 듯 해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영화관 내의 편이시설은 비교적 만족스러웠다는 것이다. CGV나 프리머스와 같은 대형극장과 부천 시민회관이나, 문화센터 등과 같은 공공건물을 상영장소로 활용하여, 장애인전용화장실, 넓은 공간의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등을 갖추고 있었고, 휠체어를 타신 분들을 위한 자석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결국 이번 영화제는 상영극장 내의 편이시설은 만족스러웠지만, 여전히 상영장소까지 이동하는 과정이 불편하여 영화제에 참여하고 싶어도, 나서기를 포기하는 장애인들이 대부분이었을 듯싶다,

시청각 장애가 있는 이들은 어떻게 관람하라는 것인가.

지난 6월 초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문화센터와 인터넷 장애인 신문 함께 걸음은 피판 영화제 조직위를 찾아가, 개폐막식을 비롯해 GV시간에 수화통역 실시, 한국영화에 한글자막 삽입, 점자로 제작된 안내책자나 홈페이지 등에 편이시설 설치여부 등을 요청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문화센터에 따르면 피판 영화제의 조직위측이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요청을 해결해주지 않은 채 영화제는 진행됐다고 말했다.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관람을 위한 편이시설은 기본적으로 갖춰놓아야 할 필수품과 같다. 그리고 관람객이 영화를 충분히 감상할 수 있는 서비스제공은 의무이기도하다.

예를 들어, 개폐회식이나, 부대행사를 비롯해 영화관람 후, 감독과의 대화시간 등에서 외국인을 위해 영어통역사를 배치해둔다거나, 한국어나 영어자막 삽입,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으로 제작된 안내책자 구비 등은 관객을 위해 반드시 서비스해야 하는 것들이며, 이번 영화제에서도 완벽하게 제공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장애가 있는 관객을 위한 편이시설 제공 역시 같은 의미로 인식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예산이 없어서 혹은 관람객이 많지 않아서 라는 핑계만 대고 있을 뿐, 무시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실제로 현장에서 느낀 차별적 사례들은 시청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관람에 필요한 화면해설 특별관이나 한국영화에 한글 자막, GV시간에 수화통역과 같은 서비스는 전무한 상황이었고, 안내요원에게 “점자로 제작된 안내책자 없나요?”라고 물었더니, “그게 뭔데요”라며 되묻는 안내요원이 대부분이었다. 점자가 누구를 위한 무엇인지 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이 영화제를 안내하고 있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홈페이지 이용 시나 온라인 예매과정에서도 영어에 대한 편이시설은 설치되어 있지만,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음성인식서비스나 활자 확대 서비스 등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홈페이지 접근도 곤란한 상태다.

이렇게 장애인 관객에 대한 의식수준이 미약한 상황에서 시청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모든 이들이 즐길 수 있는 영화제를, 즐길 수 없는 심각한 차별을 겪고 있으며, 영화제들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영상문화가 주류인 현대사회에서 점점 소통에 단절과 함께, 정보의 격차 또한 점점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할 수밖에 없는 영상문화 환경인 것이다.

    ▲ 부천영화제 예매사이트. 자막여부 등 영화와 관련된 각종 정보를 기호로 보기쉽게 삽입해 놓았으나 장애인을 위한 편의제공은 전혀 고려돼 있지 않았다. 영화제를 즐기는 것은 특권이 아닌, 평등권이다.

문화라는 아이콘은 그 문화를 즐기고 향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평등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피판 영화제는 마치 장애가 없는 사람들만이 즐길 수 있는 특권인 듯 한 착각이 들 정도로 장애인에 대한 의식은 물론, 배려도 없었다.

특히 시청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차별로 느껴질 정도로 관객으로서 존중받지 못했다.
영화제는 문화축제 중에 꽃이라 불리 울 만큼 영화관람 외에 화려하고 다채로운 행사들이 여기저기에서 열리게 된다. 이 화려한 축제는 ‘그들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어울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축제 본래의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진정으로 영화의 매력을 전파시킬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9월이 되면 서울 충무로 국제 영화제가 열리고, 전주, 부산 등에서 굵직한 국제영화제들이 매년 개최되고 있다. 지금까지 이들 영화제에서 장애인 관객에게 보여줬던 무시와 외면, 이로 인한 차별적인 문제들은 의도적이었든, 의도적이지 않았든, 장애인의 문화적 욕구를 표출하지 못하도록 유도해 온 측면이 많았다.

관객이 한 명뿐이라도 불편함 없이 쾌적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서비스 하는 것은, 영화제를 주관하는 관계자들의 의무이다. 하지만 그동안 이런 의무가 장애인 관객에게는 ‘장애인 관객이 없어서’란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무시되기 일쑤였다.

모든 영상문화 역시 비슷한 문제들이 있고, 볼권리를 박탈당해서도, 그로 인해 소외되는 사람들이 있어서도 안 된다. 이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행동하는 문화운동을 전개할 시기이며, 부천 영화제를 계기로 문제점을 꼼꼼히 살펴서 운동방향을 모색하고, 대처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제2, 제3의 부천영화제의 이 같은 문제들이 반복되지 않고, 모든 이들이 어울리며 즐기고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들이 모아지는 영화축제들로 자리 잡도록 촉구해야하며, 큰 틀에서의 운동방향은 볼권리에 대한 평등권을 인식시키는 것이고, 이런 맥락에서 영상문화 환경을 촉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함은 두말이 필요 없는 진리이다.
작성자백수정(YMCA 어린이영상문화연구회 미디어교육 팀장)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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