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몇 번씩 물 속에서 전라도 경상도를 왔다갔다 하요”
광양 다압면 답동마을 재첩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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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닷컴]
▲ ⓒ 김태성 기자 |
다행이다. 11시쯤에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상태가 됐다.
모두 배에 올라탄다. 장비들은 이미 실려 있다. 장비래야 재첩을 담을 큰 통과 거랭이. 대나무 끝에 철망을 달아 바닥을 끄는 거랭이들이 가지런히 세워져 있다. 사람들은 배 난간에 걸터앉아 있다.
모두 11명이 탄 나무배. 조령조(61) 이장이 대나무 장대로 이리저리 바닥을 재본다. 가슴 조금 아래께에 닿는 물높이에 이르자 먼저 들어가면서 한마디 한다.
“여그는 물 반 자갈 반이요. 나 따라오지 마쇼.”
“혼자 많이 잡을라고 못 따라오게 하그만.”
아주머니들이 웃는다.
이제부터는 혼자 하는 작업이다. 온 촉각을 거랭이 끝에 두고 옆 사람들이 지나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며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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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서 10월까지 계속되는 이 곳 재첩잡이는 6∼7월에 절정을 이룬다. 워낙 공급량이 많아서 제값 받기가 힘들지만 작업은 계속된다.
작업기간은 한 달 평균 보름 정도. 재첩을 거둬가는 중간상의 주문에 따라서 날마다 잡는 양이 정해진다. 오늘은 세 가마(세 말)인 90㎏다. 값싼 중국산 재첩들이 많이 나돌지만 섬진강 재첩은 맛에서 월등하게 차이가 난다. 판로는 걱정 없다.
오후 2시쯤 작업이 끝났다. 배 위에 재첩을 옮겨 싣고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선착장에는 또 다른 마을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돌이나 빈 껍데기를 골라내는 일을 도와주러 나온 분들이다.
“우리 마을은 모두가 한 가족이여.” 신철주(48) 양식계장의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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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량기에 무게를 재서 오늘 납품량을 다 맞추고 나니 재첩이 조금 남는다.
남은 재첩도 사이좋게 공동으로 나눈다. 이장이 한마디 한다. “오늘은 한 바가치(바가지)씩만 들고 가서 쫌만 삶아 드쇼. 내일은 더 드릴랑게.”
돈박골이라고도 불리는 답동마을은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 가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배를 탔던 곳이기도 하다.
60∼70년대에는 마을 입구에 장이 설 만큼 번화한 곳이었다. 다리 건너 하동으로 소를 팔러 가다가 거기까지 가기 힘들면 그냥 이곳에 와서 팔아도 됐을 정도란다. 하지만 지금은 섬진강변의 작고 조용한 마을일 뿐이다.
오늘 재첩잡이에 나선 이들 중 최연소자인 강주봉(40)씨.
“재첩 잡을라문 하루에도 몇 번씩 물 속에서 전라도와 경상도를 왔다갔다 하요” 하고 하하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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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태성 기자 hancut@jeonlad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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