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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치아 "금메달로 비인기 종목 설움 씻어내겠다"

베이징장애인올림픽 보치아 대표팀 훈련장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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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베이징장애인올림픽 대회가 채 100일도 남지 않았다.
지난 2004년 아테네장애인올림픽대회에서 종합 16위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온 대표팀은 이번 베이징장애인올림픽에서 지난 대회의 부진을 씻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오는 9월 6~17일까지 12일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이번 장애인올림픽에 한국 대표팀은 선수 79명, 경기보조 6명 등 133명이 양궁, 육상, 보치아, 사이클, 시각축구, 유도, 역도, 사격, 수영, 탁구, 휠체어테니스, 휠체어펜싱, 조정 등 13개 종목에 출전해 종합 14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함께걸음>은 대중들의 무관심, 부족한 선수층, 변변한 운동장조차 없는 등 최악의 환경에서도 묵묵히 메달을 위해 뛰고 있는 대표선수들을 격려하고, 베이징장애인올림픽의 선전을 기원하며 장애인문화센터와 함께 대표선수들의 훈련 상황과 각오를 들어보는 기획을 준비했다.

① 육상
② 시각축구
③ 휠체어 테니스
④ 보치아
⑤ 수영
⑥ 베이징장애인올림픽 현장에서 듣는다

   
▲ ⓒ전진호 기자
장애인스포츠 중에서 가장 활성화된 종목을 꼽으라면 아마 보치아를 빼놓고는 이야기하기 힘들 것이다.

한번쯤 보치아 공을 굴려보지 않은 장애인이 드물 정도로 유명한 스포츠이고, 장애인 체전 등에서 가장 많은 토너먼트를 거쳐야만 메달 권에 진입할 수 있을 정도로 선수층도 두터운 종목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비장애인들에게는 가장 알려지지 않은 장애인올림픽 종목중 하나다.

침묵 속에서 조그마한 공을 굴려, 작은 차이로 승패가 갈리다보니 구경꾼 입장에서는 언뜻 지겹게 느낄 수도 있지만, 경기규칙을 알고 선수들의 몸놀림을 유심히 관찰하며 경기를 관전하면 무척 재밌는 스포츠다.
동계 스포츠인 컬링과 비슷한 보치아 경기는 휠체어를 탄 뇌병변장애가 있는 선수들이 주로 출전하는데, 백색의 표적구를 던져놓고 적색과 청색 각 6개의 공을 홈통 등을 이용해 표적구에 가까이 던져 이 점수의 합으로 승패를 결정한다.

보치아는 BC1, BC2, BC3, BC4 등급으로 나뉘는데, BC1과 BC2는 뇌성마비 중 손으로 공을 던질 수 있는 등급이고, BC3는 손으로 공을 던지지 못해 홈통이라는 기구를 이용해 공을 굴리는 등급으로 구분되는데, 한국 대표팀은 모두 BC3등급에 출전한다.
BC3 등급은 선수만 잘해서는 안 된다.
보조 장치의 이동과 공 준비는 보조자가 하기 때문에 선수와 보조자간의 호흡과 신뢰가 경기의 성패를 좌우한다.

이 때문에 다른 종목과 달리 각각의 선수마다 코치가 따라붙어 선수와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기자가 대표팀을 찾은 날 역시 개별적으로 훈련에 임하고 있었는데, 정호원 선수와 박건우 선수는 코치와 짝을 이뤄 함께 연습하고 있었고, 신보미 선수와 박재석 선수는 코치와 한 팀을 이뤄 던지기와 굴리기 연습에 한창이었다.

    ▲ 홈통을 통해 위치를 조정하고 있는 박건우 선수 ⓒ전진호 기자 보치아, 알고 보면 ‘재밌는 스포츠’

기자가 대표팀 훈련장인 제주도 서귀포시의 강창학 구장을 찾았을 때의 첫 느낌은 ‘다르다’였다.
그간 둘러본 전지훈련장 중 어떤 곳에는 그 흔한 아이스박스조차 없이 훈련을 받고 있었는데, 이들 훈련장은 ‘빵빵한’에어콘에 선풍기까지 돌아가고 있으니 그야말로 쾌적한 환경(?)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역시나, 대표팀 권철현 감독은 제주도까지 내려온 이유에 대해 “이만큼 시원한 상태서 운동할 수 있는 실내 체육관이 별로 없어서 이곳 제주도까지 내려오게 됐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얘기일수도 있겠지만, ‘시설이 훨씬 더 좋은 수도권에서는 경기장을 구할 수 없었나’라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이, 또 한편으로는 경직 때문에 심하게 더위를 타고 땀을 흘리는 뇌병변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코칭스태프의 세심한 배려가 인상 깊었다.

이번 베이징장애인올림픽 보치아 경기에는 정호원 선수를 비롯해 신보미, 박건우, 박재석 선수 등 총 선수 4명과 코치, 감독을 포함해 총 8명이 출전할 예정이다.
이중 정호원 선수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시설 또는 특수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
정 선수 역시 얼마 전까지 시설에서 생활했다고 하니 출전선수 모두 두 기관 출신인 셈이다.

이처럼 시설 등에서 많은 선수들이 배출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권철현 감독은 “보치아가 갖고 있는 경기 특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보치아는 공을 굴릴 때의 각도와 속도에 따라 순식간에 점수를 잃거나 딸 수 있는 경기이기 때문에 그 어느 종목보다 많은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이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특수학교와 생활시설에서 보치아를 ‘재활 프로그램’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많은 선수들이 배출되고 있다고.

하지만 이런 선수배출의 구조가 오히려 보치아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재활을 주목적으로 하다 보니 장애인체육으로 인정하려하지 않는 경향이 다분하고, 중증장애가 있는 선수들이 출전하는 종목이라는 이유 때문에 대표팀 내에서도 소외받기 일쑤라고.

권철현 감독은 “평평한 마룻바닥이 필수인 보치아 경기의 특성상 체육관에서만 연습해야 하는데, 일반 체육관에 가 ‘보치아를 좀 연습하러 왔다’고 하면 코웃음 치는 게 현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휠체어를 타고 체육관 안에 들어온 것도 못마땅한 마당에 생전처음 보는 운동기구를 가져와 운동을 하겠다고 하면 쳐다보지도 않은 채 거절하는 게 현실인지라 사실상 재가장애인이 보치아 운동을 즐기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BC3등급의 경우 선수의 지시에 따라 공을 올려주고 위치를 조정해줄 활동보조인이 필수인데, 지역사회에서 생활하는 장애인이 신변처리를 위한 시간조차 부족하게 책정된 활동보조서비스를 이용해 활동보조인과 함께 보치아를 즐길 수 있는 경우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

이 때문에 ‘인기 장애인스포츠’이긴 하지만 생활체육으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권 감독은 설명했다.

    ▲ 박재석 선수가 묵묵히 던지기 연습을 하고 있다 ⓒ전진호 기자 메달 못 따면 ‘시설행’, 메달 따면 그날로 ‘은퇴’

권철현 감독은 “심하게 말하면 특수학교에 다니는 친구가 고3이 되도록 메달을 따지 못하면 시설행이다. 시설에 가야 운동을 계속 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심하게 말하면 금메달을 딴 날이 은퇴 날이다. 80만원의 연금을 받으면서 굳이 시설에서 생활할 아무런 이유가 없기 때문에 지역사회로 나가는데, 지역사회에서는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이 전혀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은퇴할 수밖에 없다.”며 실업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호원 “계속 운동할 수 있게 된 것도, 대표팀에 선발될 수 있었던 것도 기적”

권 감독의 이 같은 설명은 정호원 선수가 대표팀에 발탁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고스란히 알 수 있다.

중학교 때부터 보치아를 시작한 정호원 선수는 각종 세계대회에서 금메달을 휩쓰는 등 ‘잘나가는’ 보치아 선수였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이후 원하던 직업훈련학교도 갈 수 없었고, 때문에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고. 고민 끝에 당시 한 시설 재활교사로 근무하던 권철현 감독에게 연락해 운동을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을 상의했단다.
방법은 하나, 시설에 입소해 운동을 이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지난 2005년 권 감독이 있는 시설에 입소해 꿈에도 그리던 운동은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됐지만, 운동시간 이외에는 방안에서 우두커니 먼 산만 바라봐야 하는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반년 만에 퇴소하며 보치아에 대한 미련을 접어야만 했다.

   
▲ 정호원 선수와 권철현 감독이 홈통을 조정해 타격준비를 하고 있다. ⓒ전진호 기자
그러나 정호원 선수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때마침 시설 재활교사를 그만둔 권철현 감독이 몇 개월간 무보수 자원봉사를 자청하며 정 선수의 코치가 돼줬고,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세계선수권 대회와 말레이시아 아태 장애인경기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또 있었다.
지속적으로 운동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보고자 시청 등에 ‘보치아 실업팀’ 창단을 제안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고.
‘취지는 좋으나 생활체육도 활성화되지 않은 마당에 어떻게 엘리트 체육에 지원할 수 있겠냐’는 게 시청 측의 입장이었으나 정작 장애인을 위한 생활체육에 대한 예산배정이 단 한 푼도 안됐던 게 당시의 상황이었다고 권 감독은 술회했다.

그렇게 또 운동을 접어야 하나 했는데, 또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 2007년 브라질 세계선수권 대회를 참가하며 우연히 알게 된 한 교포가 정 선수를 딱한 사정을 듣고는 흔쾌히 후원해준 덕에 계속 운동을 할 수 있었고, 대표선수로까지 발탁됐다.

정 선수가 한 인터넷 사이트에 후원을 요청하며, 자신을 소개하는 글을 다음과 같이 남겼다.

“중학교를 올라가서 보치아라는 것을 배우게 됐다. 내가 처음 대회에 나간 것은 중2때였는데, 그때 나가서 동메달을 땄다. 나는 보치아 하는 게 즐거웠다. 그런데 지금은 즐거움보다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어버렸다. 솔직히 인정하기는 싫지만 나 같은 중증 장애인이 현재 우리나라에서 독립해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서 연금 받는 것과 기초생활수급비로 조금 나오는 돈으로 해서 살아가는 방법밖에 없다...(중략) 만약에 내가 보치아를 못한다면 1, 2년 이렇게 집에서 지내다가 결국엔 시설로 들어가서 제때 주는 밥이나 먹고 하루 종일 방안에서 뒹구르고 밖에 사람들도 못 만나고 그렇게 지내는 것밖에 안 된다. 그러기엔 내 인생이 너무 허무하고 내가 아직 너무 젊고, 내가 가진 능력이 너무 아깝다. 꼭 그 선생님과 함께 해서 2008년 북경에서 내 꿈을 펼쳐 보이고 싶다. 그 다음엔 더 큰 꿈을 꾸고 싶다.”

   
▲ 정호원 선수의 전동휠체어에 붙어있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전진호 기자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말이 있다.
이번 올림픽에서 정호원 선수가 반드시 금메달을 따야하는, 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 있는 것 아닐까.
비록 의료적인 장애등급은 최중증의 선수가 모였지만, 메달을 향한 이들의 집념과 의지는 다른 종목의 선수들보다 더욱 다부지고 뼈에 사무친다.

이번 베이징장애인올림픽에서의 선전을 통해 ‘시설 혹은 은퇴’의 갈림길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꾸준히 운동을 계속할 수 있고, 다른 대표팀과 같이 지도자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길이 마련되기를 간절히 응원해본다.


<베이징장애인올림픽 보치아 대표팀 박건우 선수 인터뷰>


<베이징장애인올림픽 보치아 대표팀 권철현 감독 인터뷰>

작성자전진호 기자  01627296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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