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긴 걸까
노순택의 사진이 사람에게 _예순세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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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순택 |
보름간 열렸던 전시가 끝나는 날이었습니다.
오후 무렵이라 작품이 이미 철수된 건 아닌가 싶은 걱정도 했더랬죠.
다행히 작품은 벽에 걸려 있었고, 언제나 그렇듯,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그의 작품을 감상했습니다.
밖에 나오니, 내리던 비가 잠시 멈췄습니다.
날은 여전히 침침했습니다.
전시장 앞 작은 마당에 놓인 커다란 화환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보름 동안 한 자세로 서 있느라 지칠 대로 지친 모양입니다.
비에 젖은 녀석은 사망 일보직전이었습니다.
기력 없는 거인이었습니다.
한 때는 화려했을 그였겠지만, 한 때는 향기로웠을 그였겠지만, 그의 몸을 에워싼 모든 꽃송이들은 이미 생을 다한 뒤였습니다.
허나, 단 두 송이가 살았더군요.
가짜 백합과 가짜 붓꽃.
애당초 살아있던 것이 아니니, 살아남았다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진짜는 모두 죽고, 가짜는 여전했습니다.
한 가지 의문이 남았습니다. 누가 이긴 걸까.
작성자노순택(사진가)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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