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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과 섞음이 낳은 상생의 맛

전주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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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네스 펠트로, 마이클 잭슨, 니콜라스 케이지, 휴 잭맨, 르네 젤위거 등 해외 톱스타의 공통점은? 비빔밥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할리우드 여배우 기네스 펠트로는 2년 전 미국 한 TV 토크쇼에 출연, 장수식 다이어트 중에서도 한국 비빔밥을 가장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한국식 흰 쌀밥에 콩나물, 작은 배추, 김치, 두부 등을 얹어 비벼 먹는다고 요리법까지 자세히 소개했다.

팝계의 영원한 ‘오빠’ 마이클 잭슨도 몇 년 전 한국 방문시 비빔밥에 반해 자기 숙소로 여러 차례 비빔밥을 시켜 먹었다. 덕분에 그가 묵은 S호텔 한식당의 ‘마이클 잭슨 비빔밥’이 한동안 잘 팔렸다.

외국인도 비빔밥을 좋아하는 이유 ‘비비는 재미’

이들이 비빔밥을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맛, 색깔, 영양(=이른바 웰빙)이 좋다, 먹기 편하다(=젓가락질이 줄어든다), 재료와 장소에 제한이 적다 등등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이유가 있다. 바로 ‘재미있다’는 것이다. 아는 서양 친구 한 사람은 비빔밥에 세 번 놀랐단다. “처음 비빔밥을 본 순간 예뻤고, 그것을 비비는 아이디어가 재미있고, 마지막으로 무척 맛있었다”고 했다. 이 중 두 번째 이유, ‘비비는 재미’야말로 이방인들에게 비빔밥을 각인시키는 핵심이다.

한국 사람은 익숙하지만 외국인에겐 생소한 것이 비빔과 섞음이다. 대저 한국인은 뭐든 섞고 비빈다. 통화 기능에 사진기, 동영상, 음악, 컴퓨터를 결합시킨 한국의 ‘비빔형’ 휴대폰에 노키아, 모터롤라 등 서양 유명 휴대폰들이 나가 떨어졌다.

서양식 무대에선 공연자와 객석이 나뉘지만 한국의 마당에선 양자가 호흡한다. 얼쑤형, 추임새형 마당이 식탁의 비빔밥과 일맥상통한다. 일본의 ‘벤토우’와 비교하면 이런 비빔의 특징은 차이가 분명하다. 벤토우도 비빔밥처럼 서민식이고 실용식이지만 원리는 정반대다.

벤토우는 밥상을 축소한다. 여러 가지 밥과 반찬을 제한된 작은 공간에 오밀조밀하게 배치한다. 비빔밥과 달리, 칸을 치고 내용물을 섞지 않을수록 벤토우답다. 얹어 먹고(=돈부리) 칸을 막아 먹는(=벤토우) 대신 비벼 먹고(=비빔밥) 말아먹어야(=국밥) 직성이 풀리는 것이 우리의 식성이다. 오죽하면 술자리에서까지 ‘한 잔 말아라’(=폭탄주)가 자욱히 날아다닐까.

    수십 가지 재료를 섞어서 혼연일체 새 맛을 내

기업에서 요즘 유행하는 화두 중 하나가 ‘컨버전스’ (Convergence)다. 사전적 뜻은 ‘집합’ ‘수렴’ ‘동시발생’ 등이다.

다양한 계기를 한 곳에 모아 조화시킨다는 점에서 ‘상생’ ‘화합’의 속뜻도 있다. 국밥, 쌈밥, 다기능 휴대폰, 마당, 폭탄주 등 ‘비비고 섞고 마는’ 한국의 문화양태는 가히 컨버전스의 전시장이다.
그 전시품 중 으뜸은 두 말 할 것 없이 비빔밥이다. 외국에 한국의 컨버전스를 판다면 비빔밥을 상품 리스트 맨 위에 세워야 할 것이다. 수십 가지 재료를 섞어서 혼연일체 새 맛을 내는 것은 맛 이상의 상징적 의미가 있다. 외국인들이 비빔밥을 비비는 동안 그들은 ‘재미있게’ 한국 문화의 정수를 탐구하는 것이다.

비빔밥은 일차적으로 한국의 대표음식이다. 전주비빔밥은 서열상 그 이후다. 안동 헛제사밥이나 강원도 산채밥, 충청도 싹밥이 모두 비빔밥이다. 걔 중 요리 격이 높다 해서 평양, 진주, 전주의 3대 비빔밥이 유명하지만 찾아보면 전국이 모두 비빔밥 고을이다.
이름 없는 촌부도 무를 나박으로 썰어 밥그릇 아래 깔고 간장과 참기름 쳐 쓱 비벼 먹으면 그게 바로 그녀만의 무 비빔밥이다. 뭐든 비비고 섞는 DNA가 어디 갈까.

전주 물로 키운 콩나물에, 담는 그릇은 놋그릇이 제격

그렇다 하더라도 전주비빔밥이 한국제일, 세계제일인 것이야 부인할 수 없다.
일단 전주비빔밥 소릴 들으려면 반드시 전주 물로 키운 콩나물을 써야 한다. 잔뿌리가 달렸고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야지 이빨 씹히는 맛이 무처럼 설컹설컹한 서울 콩나물은 아니다.

전에 서울의 한 ‘전주집’에서 비빔밥을 시켰다가 손가락만큼 두꺼운 콩나물이 나오는 것을 보고 한숨을 쉰 적이 있다. 또 담는 그릇은 바닥이 옴팍하고 묵직한 놋그릇이어야 제격이다.

개인적으로 돌솥 비빔밥은 혀가 꺼끌꺼끌하고 입이 타는 듯해 권하지 않는다. 비싸더라도 놋그릇 비빔밥을 주문해야 온기와 습기를 제대로 맛볼 수 있다. 이밖에 순창고추장을 베이스로 하는 양념과 노란 치자로 물들인 청포묵 등을 음미할 만하다. 나머지 복잡한 레시피는 일일이 말할 수 없다.

비빔밥뿐 아니다. 찾아보면, 전북은 그야말로 컨버전스 천지다. ‘가맥’(=길거리 맥주 또는 가게맥주)이란 게 있다. 슈퍼와 포장마차를 섞어놓은 전북만의 특산 주점이다. 슈퍼 안에 맥주집이 있으니 주머니 부담이 없고 안주도 다양하다.

외지인들은 가맥의 발상에 신기해한다. 그러나 뭐든 편하게 섞는 시각에서 보면 맥주를 주점에서만 먹는다는 것이야말로 팍팍한 고정관념이다.

또 다른 예가 밥집이다. 한 서울 친구가 전주시 교동의 허름한 밥집 유리창을 보고 놀랐다. 시래기국, 국수, 라면 등 요기 거리 메뉴와 함께 같은 크기 글자로 ‘막걸리’를 써 놨던 것이다. 막걸리는 술집에서만 파는데 여기가 밥집이냐, 술집이냐, 대강 그런 놀라움이다.
비빔밥의 고장, 어울림과 컨버전스의 도시 전주에 들러보시기 바란다.

글=임용진 <언론인·전 새전북신문 발행인>


전주비빔밥 소릴 들으려면 반드시 전주 물로 키운 콩나물을 써야 한다. 그릇은 바닥이 옴팍하고 묵직한 놋그릇이어야 제격이다.

순창고추장을 베이스로 하는 양념과 노란 치자로 물들인 청포묵 등도 음미하시라!
작성자임용진 (언론인·전 새전북신문 발행인)  webmaster@jeonlad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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