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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을 좋아하시나요?

여성감독이 만든 여성성의 베토벤 영화 ‘카핑 베토벤’

본문

   
베토벤을 좋아하시나요?

위의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질문이라는 생각도 하실거구요.
그렇습니다. 프랑소와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연상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너무 알려져 무덤덤한 질문이 되어버린 브람스 대신에, 오늘은 베토벤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생뚱맞게 이 가을에 무슨 베토벤이냐고 질문들 하시겠지만, 요즘 TV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가 많은 공감을 사고 있습니다.
때 아닌 클래식 붐을 만들고 있고, 김명민이 분장한 독선적인 지휘자 역할(‘강마에’라고 부르더군요)은 말년의 베토벤을 떠올립니다.

한편, 안 그래도 경제난이 심각한데 배부른 클래식 타령이냐고 타박하시는 분들이 있으실 겁니다.
그러나 100불이 채 안 되는 월급으로 살아가는 러시아 국민들이 한 달에 한번은 30불씩이나 하는 음악회나 뮤지컬을 보러가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는 없는지요.

자본으로 침식당한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음악이 존재한다는 명제를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세상이 온통 고통만으로 점철되었을 때도, 음악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씻어가는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특히 클래식은 인간 무의식의 저변에 깔린 감정들을 건드리는 치유효과가 있습니다.

오늘 영화는 베토벤의 말년, 합창교향곡을 마지막으로 작곡하고, 귀가 들리지 않은 상태에서 지휘까지 고집하던 베토벤을 한 여인의 입장에서 조명한 영화, ‘카핑 베토벤(Copying Beethoven 2006)’입니다.

‘안나 홀츠(다이앤 크루거 분)’라는 가상의 인물을 관찰자 입장으로 내세운 이 영화는 폴란드 출신의 반체제 여성 감독 ‘아그네츠카 홀랜드’의 역작입니다.

베토벤을 다룬 이전의 영화 ‘불멸의 연인들’이 베토벤의 사랑에 초점을 둔 반면, ‘카핑 베토벤‘은 여자의 시각에서 신과 고독한 싸움을 하고 화해하는 인간 베토벤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그리고 있습니다. 또한 이 영화는 예술사 전반에 팽배한 남성성에 대항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현존하는 유명 여성 작곡가가 없는 현실에 대한 반론이기도 하지요.

비록 가상의 인물이기는 하지만 ‘안나 홀쯔’라는 여성은 영화 속에서 신과 베토벤의 교감을 다시 이끌어 내고, 베토벤의 고독한 영혼을 치유하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특히 온 몸을 씻어주는 장면은 마더 테레사를 연상하게 하지요.

   

베토벤은 기행과 공격성, 폭력적인 성향으로 많은 일화가 남아 있습니다. 실제 자신의 아버지는 폭력을 일삼는 주정뱅이였고, 그 고통을 잊고자 음악에 헌신한 기록도 있지요. 청각장애를 앓으면서(납 중독의 후유증이라는 과학적 해석이 있습니다), 자신의 기행으로 인해 주변의 인물들이 떠나가고 외로움만 가득한 상태에서 작곡된 ‘합창교향곡’은 심포니 연주회 사상 처음으로 인간의 코러스가 삽입된 것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던 베토벤의 말년이 만들어 낸 환상과도 같은 작품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공이 많이 든 장면 또한 합창 교향곡을 초연하는 장면입니다. 카메라의 동선, 빛의 움직임 등 매우 서정적인 화면 분할이 필요했다고 하는 이 시퀀스는, 베토벤을 몰랐던 사람이라도 저절로 눈물이 나오는 장면입니다.

더욱이 베토벤으로 분한 에드 해리스는 6개월간 합창 교향곡의 지휘에 몰두해서 악보 없이 오케스트라 지휘를 할 수준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45분의 합창 교향곡을 15분 정도에 요약한 이 시퀀스는 아마도 음악 영화의 명장면으로 남을 것입니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것이 있습니다. 흔히 알고 있듯이 베토벤이 천재라는 사실이 틀렸다는 것이지요.
모차르트를 천재라고 표현한다면, 베토벤은 음악에 재능이 있고 음악에 인생을 맡긴 광기의 노력파였다는 사실입니다.



임종을 앞두고 베토벤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음악은 신의 언어야. 공기의 떨림은 인간 영혼에 속삭이는 신의 숨결이지. 우리 음악가들은 최대한 가까이서 신의 음성을 듣고, 신의 입술을 읽지. 그게 아니라면 우린 아무것도 아니야.’

베토벤이 위대한 것은 바로 이 점에 있었습니다.
인간 한계에 괴로워하던 말년의 베토벤이 연상되시는지요. 어쩔 수 없음에 괴로워하고, 어쩔 수 있는 것에 온 몸을 던지는 우리 주변의 고통받는 사람들의 얼굴이 베토벤과 함께 겹쳐집니다.

희망은 꿈꾸는 자에게만 나타나는 또 다른 절망의 얼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희망임을 부정할 아무런 대안이 없지 않겠습니까. 여전히 사람이 희망입니다. 베토벤은 그걸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브람스와 베토벤의 음악이 여러분에게 조그마한 위안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작성자이영문 (아주대학교의료원 정신건강연구소장)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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