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시 쎄뜨로 댕겼더니 오만 정이 붙어 불었어” > 문화


“항시 쎄뜨로 댕겼더니 오만 정이 붙어 불었어”

인도네시아 며느리 마리아나와 시어머니 모복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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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닷컴]

   
함평 대동면 향교리에 있는 집 앞의 배추밭. “오메 그 머나먼 디서 어찌코 여그까장 왔을꼬 생각하문 짠하게만 보여. 메느리라고 생각해본 적 없어. 항시 딸이라고 생각제”라고 말하는 시어머니 모복순씨와 마리아나씨, 그리고 아들 동현, 동건. ⓒ 김태성 기자
“아야, 거그 바구리 잔 가져온나 하문 홱 틀린 것을 들고 와 불어. 뭣을 시키들 못해. 말이 안 통헌께. 보라꼬 앙거서 말로만 했으믄 하래가 다 가 불었을 것이여. 근께 뭣을 하든 어디를 가든 항시 메느리랑 쎄뜨로 댕겼제.”

하지만 ‘쎄뜨로 댕긴’ 것이 영 불편하고 보람없는 일만은 아니어서 몸이 붙어 다니는 새
정도 다갈다갈 붙고 말았다.

지금은 ‘콩떡같이 말하믄 찰떡같이 알아듣는 사이 비슷하게꼬롬 된’ 시어머니 모복순(67·함평 대동면 향교리)씨와 인도네시아에서 온 며느리 마르하마 스리 마리아나(29)씨.

“오메 그 머나먼 디서 어찌코 여그까장 왔을꼬 생각하문 짠하게만 보여. 한나도 미운 디 가 없고. 메느리라고 생각해본 적 없어. 항시 딸이라고 생각제.”
시어머니가 말하는 ‘그 머나먼 디’는 인도네시아의 자와띠모르. 그 곳이 마리아나씨의 고향이다. 발리에서 비행기로 7시간, 차로 13시간 걸리는 시골마을이다.

항상 딸이라고 생각한다는 시어머니는 마리아나씨를 ‘마리’라고 부른다. “큰손지 이름 붙여서 ‘동현엄마야’라고 불러도 쓰제만 그러문 웬지 메느리 같잖애. 나는 근께 딸같이‘마리야’라고 불러.”
마리아나씨도 시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른다.

“어머니보다 엄마가 더 좋아요.” 외국인인 마리아나씨에게도 어머니, 혹은 어머님은 무언가 더 어렵고 친근하지 않았나 보다. 시집와서부터 줄곧 시어머니 시아버지를 엄마, 아빠로 불렀다. 그렇게 한 가족이 되어 살아온 세월이 5년여.

“처음에 한국사람 왜 잘 안 웃을까 생각했어요”

머나먼 한국땅에 시집오는 것이 두렵고 막막하지는 않았을까. “우리 동네 친구도 한국남자랑 결혼해 살고 있어요. 그 친구 있어서 걱정 많이 안했어요. 남편 착한 얼굴, 착한 마음씨 하나 믿고 왔어요.”

군청에서 청소용역직으로 일하고 있는 남편 이민수(34)씨는 청각장애인. 말이 잘 안 통하니 힘든 일들 왜 없었을까마는 그녀는 “괜찮아요. 안 힘들어요”라는 말뿐. 그 끄트머리에 웃음까지 매단다. 마침 놀러온 동네 이웃 말하길, “언니는 항상 웃어요”. 웃음은 그녀가 가진 특별한 힘이고 바닥나지 않을 재산이다.

“처음에 한국사람 왜 매일매일 화났을까 생각했어요. 왜 잘 안 웃을까 생각했어요.”
더운 나라에서 왔으니 가을 겨울 추워서 힘들었을 법도 하련만 그것에 대해서도 그녀의 대답은 “한국의 가을 너무 아름다워요. 인도네시아는 1년 내내 더우니까 똑같으니까, 한국 봄여름가을 겨울 있는 게 좋아요”.
매사 긍정적인 쪽으로 받아들이기, 그녀가 살아가는 법이다.

    마리아나씨에게 가장 큰 고민은 아이 교육. 출산 전부터도 걱정은 많았다. “우리 아기 얼굴 까맣게 태어나면 어떡해, 날마다 날마다 걱정했어요. 밤마다 밤마다 기도했어요.” 피부색이나 국적에 따른 우리 사회의 차별과 편견이 그녀에게 그런 절박한 바람을 갖게 한 것이리라. ⓒ 김태성 기자 “사투리할라 하다 본께 우리 메느리가 심들었을 것이여”

시어머니가 며느리감으로 원한 조건은 단 하나. 딴 건 필요없고 오로지 ‘야문 놈!’.
“근디 그 원대로 돼 불었어. 우리 메느리가 여간 야물아. 항시 고맙제. 농촌 살고 장애도 있응께 아들 여우기 심들었는디 이 머나먼 디까지 와서 우리 아들이랑 잘 살아준께.”

그래서 멀리 사는 사돈네랑도 좋게 지낸다. 며느리한테 친정엄니 용돈 부쳐 드리라고 돈도 자주 챙겨 주고, 집수리도 해주고 논도 사주었다.
“뭐이든 잘해드리고 싶어. 나는 서울에 딸 시집보내 놓고도 보고 자퍼서 눈물난디 그 냥반은 얼매나 딸이 보고 싶겄어.”

그이는 며느리한테 한국 음식을 빨리 배우라고 채근한 적도, 맛없다 타박한 적도 없다 한다.
“한 번은 멸치를 무쳤는디 즈그 고향 인도네시아 식으로 무쳤어. 내 입맛에 안 맞어. 그래도 생전 내가 메느리 한 음식에 대고 맛없다 소리를 안해.” 이유는 하나. “그러믄 야코(기) 죽어서 요리 못허제!”

매사 적극적인 그이는 며느리가 한국말을 빨리 배우도록 갖은 정성을 들였다.
거울 빗 그릇 숟가락젓가락 냉장고 세탁기 옷장…. 무슨 말을 하든 “요 말은 인도네시아말로 뭐라 하지?”를 꼭꼭 물었다. 두 나라 말 사이에 짝대기 쫘악쫙∼ 긋기. 며느리 머리 속에 ‘한국말-인도네시아 사전’을 만들어주고파서 일상 속에서 어머니 나름대로 실천한 한국말 교습법이었다.
“근디 표준말로만 할 수 있가니. 내가 하는 말이 싹 다 전라도말인디. 사투리할라 하다 본께 우리 메느리가 여간 심들었을 것이여.”

한국말과 전라도말 뿐일까. 마리아나씨가 배운 말은 또 있다. 바로 수화(手話). 남편과 이야기하기 위해 그녀에겐 수화 역시 절실했다. “처음엔 어려웠어요. 지금은 (남편이랑) 말 잘 통해요. 남편, 보통사람이랑 똑같아요.”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한국말 공부를 위해서도, 같은 취미를 위해서도 연속극도 함께 열심히 본다. 고부간에 요새 제일 열심히 보는 드라마는 일일연속극 <너는 내 운명>.
“연속극 시작하문 메느리가 설거지 하고 있어도 내가 막 불러. 설거지는 이따 해도 된디 저것은 시간 가문 지나가 분다고 애가 탐서 불러. 메느리랑 같이 보문 재미지제. 연속극 봄서 메느리가 어려운 말 물어보믄 갈쳐도 주고. 제목 글자도 읽어주고. 근디 인자는 우리 메느리가 나보담 더 빨리 글자를 읽어 불어.”

“우리 아기 얼굴 까맣게 태어나면 어떡해, 걱정했어요”

청각장애인인 남편을 대신해 시어머니가 한국말을 애쓰고 가르쳐줘서, 또 한글교실도 열심히 다녀서 마리아나씨는 한국말을 거의 유창하게 하는 편이다.
“말하는 것은 괜찮아요. 쓰는 것 어려워요. 받침 너무 많아, 받침 어려워요.”
‘냉장고’ ‘거울’ ‘화장실’ ‘시계’…. 집안 곳곳 가구마다 물건마다 한글로 쓴 스티커가 붙어 있다. 마리아나씨가 공부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다. “아기 가르쳐줄려고…”.

마리아나씨에게 가장 큰 고민은 아이 교육이다. 아이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아이가 공부 못하면 행여 엄마가 한국 사람 아니라 공부 못한다고 할까봐 걱정이다. 아이가 공부를 잘 못할 경우 그 책임이나 비난이 고스란히 엄마 몫으로 돌아오는 게 대개의 이주여성들이 처한 현실.

얼마 전부터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큰아들 동현이는 이제 겨우 네 살이지만 마리아나씨도 벌써부터 은근한 압박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다른 문화권 안으로 들어와 살면서, 소수자로서 받는 압박은 출산 전부터도 시작됐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 아기 얼굴 까맣게 태어나면 어떡해, 날마다 날마다 걱정했어요. 밤마다 밤마다 기도했어요. 우리 아기 얼굴 까맣지 말라고….”

둘째를 가졌을 때도 마찬가지. 기도와 두려움은 계속 됐다. 동현이랑 둘째아들 동건이의 얼굴이 까맣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마리아나씨. 피부색이나 국적에 따른 우리 사회의 차별과 편견이 그녀에게 그런 절박한 바람을 갖게 한 것이리라. 이 사회에서 잘 살아가기 위해, ‘엄마를 닮지 말아라’ 하는 바람이란 얼마나 모진 슬픔인가.

    ⓒ 김태성 기자 이슬람 교도라 돼지고기 먹지 않는 며느리

결혼 전 고향에서 살면서는 당연하게 누렸던 것들이지만, 낯선 땅에선 어쩔 수 없이 스르르 포기하고 마는 것들도 많다. 종교생활도 그 중 하나. 인도네시아는 국민 대다수가 이슬람교도인 나라. 그녀 역시 이슬람교도이다.

“하루에 다섯 번 기도해야 해요. 기도 시간이 되면 알려주는 소리가 나요. 그것이 ‘아잔’(Azan)이에요. 서쪽을 향해 기도해야 하는데 한국 오니까 어디에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엄마한테 물었더니 서쪽 가르쳐줬어요. 하지만 꼭 아닌 것만 같아요. 그냥 이상해요. 그래서 마음으로만 기도해요. 이슬람사원에도 가고 싶어요.”

금식성월(聖月) ‘라마단’은 이슬람 최대축제. 그런 축제도 그립다.
이슬람교도라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그녀를 위해 시어머니는 냉장고에 쇠고기를 늘 챙겨 둔다. “축협에서 소고기 쎄일만 하문 한꺼번에 사서 갈라서 쟁여놓제. 우리만 (돼지)고기 먹고 있기는 미안헌께.”

한번은 돼지머리고기 삶아낸 솥을 마리아나씨가 씻었는데 그 국물이 닿아서인지 손에랑 팔에 온통 두드러기가 돋았던 적도 있었다 한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돼지고기 옆에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한다.

서로 다른 문화와 역사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한지붕 아래 사는 일이란 그렇게 서로를 알고 이해하고 배려해 가는 일이기도 하다.
성격 활달하고 노래랑 춤을 좋아하는 며느리는 면민의 날 노래자랑대회에 나가서 상도 타 왔다.
“우리 메느리가 현숙이 노래를 불른디 현숙이보담도 더 잘 불러 불어. 고렇게 잘해.”
그래서 “아따, 니 노래 좋아헌께 맘껏 불러 불어라”고 노래방 기계까지 사들여 며느리한테 선물했다.

“나 죽은 담에도 우리 메느리가 인심 얻고 잘 살아야지”

돼지고기말고는 이제 한국음식 그 무엇이든 잘 먹는 마리아나씨. 그래도 고향 음식 그리울 때가 많다. 무엇이 가장 먹고 싶을까. 그 음식은 특정한 종류가 아니었다. 바로 “엄마 음식!”
고향 맛 그리울 때면 고향 음식을 만든다. 광주 하남산단 근처 인도네시아 양념 파는 가게에서 재료들을 사다가 요리를 한다.

“(그 가게) 인자 알았어요”라고 기쁘게 말하는 마리아나씨.
‘인자(이제)’라는 전라도 사투리가 유난히 귀에 들어온다. 농사일도 잘 한다는 말을 하면서 ‘모내고’ ‘피 뽑고’란 말을 유창하게 했을 때처럼.
그런 말들과, 또 그런 말들이 담기는 생활과 익숙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들을 건너왔을 것인가.

“눈물나는 일이야 왜 없겄어. 근디도 항시 궂은 기색 없이 살아. 쟈가 속이 지픈 것이제”라고 말하는 시어머니는 어디 가나 며느리 자랑이 앞선다. “우리 메느리가 그라고 좋아. 야물고 낯깔 좋고 맴 보드랍고 살림 잘하고 애기들 잘 키우고….”

맘으로도 딸같은 며느리라 생각하지만 그렇게 자랑하는 속내는 또 있다.
“내가 우리 메느리 숭을 보고 나쁘게 말해봐. 남들은 더 시피 봐 불어. 여가 암도 없는디, 내가 앞으로 백 년을 살 것도 아닌디 우리 메느리가 나 죽은 담에도 동네 사람들한테 주변 사람들한테 인정받고 인심 얻고 어디 가든 환영받음서 잘 살아야 헐 것 아닌가.”
작성자남신희 기자  miru@jeonlad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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