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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손이 속삭일 때

김제 금만사거리 포장마차 농아인 부부 김유한·박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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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닷컴]

   
시린 바람 부는 네거리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농아인 부부 김유한·박인순씨. 말없이 건네는 서로의 미소가, 속삭이는 서로의 손짓이 위안이고 기쁨이다. ⓒ 김태성 기자
읍이라고 하지만 네거리의 저녁은 소란스럽다. 김제 금만 사거리 모퉁이. 그 거리의 한 모퉁이에 노랗게 불을 밝힌 포장마차가 있다.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남자와 여자는 부부다. 김유한(48)·박인순(45)씨.

작은 포장마차 안의 두 사람은 고요하다. 주전자 꼭지로부터 빵틀에 밀가루반죽이 채워지는 소리, 혹은 다 익은 풀빵틀을 토드락 토드락 뒤집는 소리뿐. 풀빵이 알맞게 구워지는 냄새가 어쩐지 수선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이따끔 찾아오는 손님들도 말이 없긴 마찬가지다. 돈을 내밀고 사고 싶은 무엇인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그러면 부부는 흰 봉지에 그 따뜻한 것들을 채워 준다.

“대화가 통하는 드문 사람이었어요”

김유한·박인순씨는 둘 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농아인이다.
유한씨는 선천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었고 인순씨는 6살 때 열병을 앓고 나서 청각을 잃었다.
두 사람은 교회에서 만나 1986년 결혼했다. 여느 청춘남녀들과 같은 이유였다.“대화가 통하는 드문 사람이었어요.”

수화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두 사람. 서로의 장애는 결혼에 장애가 되지 않았다. 아프게 살아온 지난 시간들을 말하지 않아도 알아줄 그 한 사람이기도 했다. 사랑하게 된 사람이 농아인이라서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두렵지만 받겠다”는 그 마음으로 이 세상에 온 세 아이들을 차례차례 만났다.
갓 태어난 아이가 고고성을 울릴 때(운다고 느꼈을 때), 그 때마다 부부는 울었다. 나의 고통을 내 아이가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었다.

   
ⓒ 김태성 기자
듣지 못하는 엄마는 아기에게 딸랑이를 흔들어주었다. 아기가 딸랑이를 흔드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그러한 일이 기적처럼 눈물겨웠다.
작은 아기를 키우는 것은 내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엄마라고, 저것은 나무라고, 이것은 사과라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아이가 처음 만나는 이 세상의 사람과 물건과 풍경과 사건들을 하나하나 가르쳐 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말을 배우게 하려고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보내 놓고는 아이들이 참 보고 싶었다.
두고두고 미안한 일이 있다. “위험한 물건 그러니까 칼이나 가위, 뜨거운 물 그런 것에 아이가 다가가면 말은 할 수 없고 마음은 급하고… 그러니까 아이를 심하게 윽박지르거나 야단쳤어요….”
다행히 아이들은 저희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을 알았다. 아이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소리는 엄마 아빠가 “사랑해라고 속삭이는 손짓”이었다. 엄마 아빠가 수화하는 것을 보면서 자란 아이들은 아기가 엄마에게 모국어를 배우듯 자연스럽게 수화를 익혔다.

이제 대학 1학년인 큰아들 성수(23)씨와 군복무중인 민수(20)씨는 타지에 나가 있지만 화상통화로 곧잘 수화를 나누고, 문자로 마음을 주고받는다. 곧 중학생이 되는 막내딸 선미는 오빠들의 빈자리를 명랑하게 채워주고 있다. 세 아이들은 어느 새 세상과 부부를 소통하게 하는 통로가 돼 줄 만큼 자랐다.

아내 덕이라고, 남편은 말한다. 들을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면서 거리에서 장사하고 집에 돌아가서도 지치지 않고 아이들을 보듬은 아내 덕이라 한다. 아내는 남편 덕이라 한다. 그가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누구나 말할 만큼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아버지인 덕분이라고 한다.

    ⓒ 김태성 기자 말없이 건네주고 건네받는 따뜻한 흰 봉지

인순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부터 한복일을 했다. 큰아들이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그 일을 하다가 주문이 줄면서 그만 두었다. 이리 농아학교에서 중학교를 마친 유한씨는 미장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쳤다. 이제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다가 간식거리를 팔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간식을 먹을 때는 사람들이 다 행복해 하잖아요.”

잠깐이라도 따뜻한 기쁨을 줄 수 있는 먹을거리를 만드는 일은 좋은 일이겠다 싶었다. 붕어빵 굽는 기계를 직접 만들어 붕어빵 장사를 하다가 품목이 늘어나면서 지금의 포장마차를 운영하게 됐다.

부부가 이 곳에서 포장마차를 한 것은 13년째.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키다 보니 허물없이 가까워진 이웃들이 많다. 노점상 단속 때문에 쫓겨나곤 하면서도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던 데는 부부의 자리를 지켜준 주변 상가 사람들의 도움이 컸다.

“이이들은 좌우지간 참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애. 뭔 말은 안허고 서로 눈짓만 허고 살아도 서로 통하고 사는 것이 참 좋아 뵈여. 말은 통해도 맘은 안 통해서 만날 왈그락달그락 하고 사는 사람들이 부끄럽제.” 금만 사거리에서 김밥가게를 하는 함영부씨는 부러 쫓아나와서 이웃자랑을 해준다.

부부는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한다. 계란빵과 풀빵과 와플파이를 굽고 핫도그를 튀긴다.
요한씨도 인순씨도 풀빵을 팔 때가 제일 기분이 좋다. 하나, 둘, 셋, 넷. 천원짜리 한 장이면 봉지에 제일 많이 담아 줄 수 있는 것이어서 어쩐지 미안하지가 않다. 제일 값싸지만 제일 많이 팔리는 풀빵인지라 팥은 특별히 좋은 것을 쓴다. 재료도 재료지만 매번 알맞게 구워내려고 정성을 쏟는다. 그래야 바삭하면서도 부드럽다. 엄지를 치켜세우며 ‘맛·있·어·요’라고 금붕어처럼 입모양을 벌리는 손님들의 말없는 칭찬이 그들을 이 거리에 당당하게 서게 하는 힘이 된다.

어쩌다 부부의 사정을 모르는 손님이 뒤에서 주문을 하면 듣지 못한다. 영문을 모르고 기다리던 손님이 손으로 툭툭 치면 그제야 부르는 걸 알게 된다. 손님들은 부부에게 괜스레 미안해하고 부부는 손님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이제 웬만한 김제 사람들은 그이들의 사정을 다 안다. 말없이 그 따뜻한 것을 건네주고 건네받는다.

    ⓒ 김태성 기자 천 마디의 말 대신 미소

여름엔 아스팔트의 지열이 올라오고 겨울엔 사통팔달 네거리의 바람이 몰아치는 부부의 일터. 사실 추위야 반갑다. 어지간히 추운 날씨라야 포장마차엔 손님들이 는다. 두툼한 옷을 걸치고 두 사람은 시린 바람을 견딘다.

“누구나 이만큼은 힘들겠지요.”
유한씨는 ‘장애인이니까’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조금 불편할 뿐이다. 그 불편함 때문에 차별을 받지 않는 세상이라면 좋겠다.

네거리의 두 사람. 아무리 세상이 시끄러워도 오직 서로에게 열중할 수 있는 ‘재능’이 두 사람에겐 있다. 음악을 들으려고 하나의 이어폰을 낀 연인같이 두 사람은 고요의 소리를 함께 듣는다.
생각해 보면 등뒤에서 무슨 위험이든 생길 수 있는 네거리. 날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고맙다고, 내가 등돌리고 있는데 나를 지켜주는 세상이 고맙다고 부부는 생각한다.

부부는 잘 웃는다. 습관이다. 어릴 때부터 항상 웃었다. 말 대신 미소. 어쩌면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부드러운 무기였다.
“이 세상에 태어나 누구 욕하는 말도 누구 비방하는 말도 입에 담아보지 않았어요. 할 수 없었으니까요. 하하”

남들보다 조금은 무거웠을 것 같은 그 삶 앞에 쓰다 달다는 말 한 마디 내놓지 않고 살아온 부부. 속삭이는 서로의 손짓이 내내 위로였고 기쁨이었다.

*김유한·박인순 부부 인터뷰는 큰아들인 김성수씨의 수화 통역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작성자남인희 기자  namu@jeonlad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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