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등록장애인 대통령과 차별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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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씨는 1971년 5월, 신민당 영등포 지역 지원 유세를 가던 중 박정희 독재 정권 사주로 의심되는 교통사고로 장애를 가졌다. 14톤 트럭이 갑자기 달려들어 그의 차를 들이받았다. 한쪽 다리에 장애를 입어 처음에는 지팡이를 짚으면서 걸었으며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는 휠체어를 이용했다. 그는 정당 총재 시절부터 장애인 당사자로 주목을 받았다. 96년 12월, 15대 대통령 선거가 있기 전 김대중 씨는 일산 자택에서 진행된 <함께걸음>과의 인터뷰에서 “나 자신도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먼저 밝히고 싶습니다. 나도 고관절을 다친 장애인이기 때문에 장애인에게 동병상련의 심정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자신이 직접적으로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어 좀 더 적극적으로 “그런 점에서 나는 내 자신이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활동을 하는 것이 장애인에게 격려가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라고 장애인들과 자신을 동일시했다. 그는 15대 국회의원 선거 때 장애인 직능 대표로 이성재 변호사를 영입했고 전국구 3번으로 국회 진출을 지원했다. 이 사실 자체는 장애인의 높은 정치적 자긍심을 주었다. 그는 반문명적 사회분위기 개선을 위해 집권 후 처음으로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공약하기로 했고 대통령이 된 이후, ‘국민과의 대화’에서는 장애인 당사자의 에바다 장애인시설비리 해결 질의에 대해 해결을 약속하기도 하는 등 장애인과의 입장의 동질성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제1차 장애인복지발전 5개년계획(1998~2002)의 출발도 김대중 정부 임기 시작(1988년)과 함께였다. 재임시절 2001년 5월 24일 ‘국가인권위원회법’으로 같은 해 11월 26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출범하면서 그 첫 인권 사건으로 제천시 보건소 장애인차별 사건으로 기록되었음은 장애에 대한 정체성과 권력과 정치, 인권 전반에 관한 상관관계, 상호 작용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부풀게 했다. 그래서 장애계는 그를 국내 최초 장애인 당사자 대통령이라 인정하고 그에게 지속적으로 장애인복지카드를 발급받을 것을 권유하고 압박했다. 후보 시절부터 끊임없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절름발이여서는 안 된다’라는 장애인 차별적인 흑색선전과 인신공격에 시달렸던 김대중 대통령은 끝까지 공식적으로 장애 등록을 하지 않았다.

△ <함께걸음> 1996년 12월호,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총재 인터뷰 기사
휠체어를 이용하는 그날까지도 그에게 장애인복지카드는 없었다. 그의 장남 김홍일 씨 역시 고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 중증 언어장애를 가진 장애인 가구가 되었어도 공식적으로 당국에게 장애 등록을 했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 또한 소뇌위축증 희귀병으로 중복 중증장애인이 되었으나 국가 통계 장애인이 되지는 않았다. 이들 모두 그 이유를 국가의 지원을 받을 만큼 어렵지 않아서였다고 에둘러 변명하기는 했으나 과거 우리 사회의 상류층이나 권력층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또는 보다 폐쇄적으로 자신이나 가족이나 가문의 장애를 열심히 감추거나 은폐하려 했다는 점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몹시 씁쓸함을 남겼다.
그가 드러냈던 장애에 대한 정체성은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나 휠체어 외교라는 상징을 남긴 대만 천수이볜 총통 부인 우수전 등과 비슷하게 정치적 업적을 남겼지만, 그럼에도 제도적으로, 공식적으로 장애인임을 끝까지 기록으로 남기지 않음으로써 장애인 국가 등록 제도의 모순과 그 문화적·정치적 낙인에서 대통령마저 그리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주었다. 이른바 권력층이 장애인임을 밝히는 것은, 말 그대로 장애 등록을 하느냐 마느냐 만의 뜻이 아니다. 문화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일반 대중들과 장애인 당사자들에게 장애인의 차별과 혐오에 대하여 보다 민감하고 저항하는 정치적 상징과 장애인에 대한 시민권의 의미를 가장 강력하게 지속적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이 문제는 중요하다. 권력의 후광 효과이자 배경 보호가 합의함을 뜻한다. 장애와 장애인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더 이상 부끄럽거나 약점으로 작용하지 않음을 천명하는 것이다.
21대 대통령 이재명 정부가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인식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는 아마 최초로 이미 한참 전에 장애 등록(지체장애 6급)을 한 현역 대통령일 것이다. 자신이 직접 발급 받은 장애인복지카드도 있을 터이다. 행정 분류상 심하지 않은 장애인으로 대한민국에 등록되어 주민센터에서 장애인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도 있다. 본인 스스로 2022년 대선 유세 때부터 장애인 당사자임을 자부하며 죽을 때까지 장애인으로 살아가겠노라 선언하기도 했다. 그는 소년 노동자 시절 왼쪽 팔에 장애를 얻었다. 산재 처리는 물론,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했고 일하는 동안 여러 번 다쳤다. 그는 과연 김대중 대통령이 보였던 장애당사자 정체성의 정치적 한계와 문제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과연 이재명 정부는 한 명 이상의 장애인 장관이나 차관을 임명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최초 장애인 장관은 김대중 정부 문화체육부 장관 김성재 교수(소아마비)이다. 그 이후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장애인 장관을 임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음에도 이제껏 장애인복지카드를 소유한 사람이 장관으로 임명된 적은 없다. 그나마 이재명 대통령을 희망적으로 보면 장애인 차별과 분리의 상징으로 생각했던 소록도를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 자격으로 방문하였다는 것인데 역사적으로 자행되었던 한센인에 대한 강제 이주 및 불임 수술 등에 공식 사과라도 하지 않을까 기대했으나 현직 대통령으로서 과거 장애인에 대한 국가 폭력을 반성하지는 않았다. 그가 임명한 김민석 국무총리는 은둔형 외톨이나 장애인 문제를 당사자의 관점으로 풀겠다며 약자의 눈이란 연구단체를 구성하고 총리 공보 실장을 장애 여성 최혜영 씨를 기용하는 등 상당히 진보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정작 차별금지법과 동성애 인권에 대해서는 굉장히 보수적인 입장을 굽히지 않아서 이재명 정권의 장애 감수성이나 인권 관점에 관한 의심의 시선을 거두기가 어렵다.
겨우겨우 생존을 이어가던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장애인 부모 강선우 의원을 임명한 것도 처음에는 놀랍도록 고무적이었다. 장애인 부모라는 입장과 관점이, 일하는 ‘여성’이라는 관계와 정체성이 그 누구보다도 권력관계에 분명한 인권과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차별금지법을 치열하게 추진하게 하리라 믿었다. 기존의 대통령이나 김민석 국무총리의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모순적인 모습에도 우리가 희망을 품었던 이유는 그녀만큼은 그녀를 둘러싼 장애인 문제와 성평등의 문제와 같은 권력 문제에 있어 전향적인 페미니스트 장관이 되어주리라 애써 신뢰했기 때문이다. 직전 정권보다야 복지와 인권, 인식은 나아지겠지만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장애인 당사자도 이재명 대통령이 천명한 것처럼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시민의 권리를 동등하게 누릴 수 있을지 현재로는 알 수 없다. 지금 논의의 중심에 있는 차별금지법에 큰 빚을 지고 있는 장애인차별금지법도 비장애인 대통령 노무현 때에야 완성되었다. 관심이나 의지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분명하지만, 그 입장은 엄밀히 말하면, 단지 갈등이 없거나 여유가 있을 때, 지금 정권이 적당히 해 주는 것이다.
갈등이 뜨겁거나 별로 여유가 없는 인권 사항이면 언제든지 나중으로 미루든지, 기계적인 중립으로 가겠다는 아주 보수적이고 시혜적인 태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오히려 UN장애인권리협약의 내용으로 있는 탈시설을 거스르는 듯한 태도를 보여 논란이다. 더구나 이재명 대통령은 과거에 현장 투쟁하는 장애인의 활동을 비하하거나 무시하면서 일부 관련 장애인 단체를 일방적으로 편든다는 비판을 많이 받은 적이 있다. 인권변호사 출신이라면서 드러난 지금의 인사와 행동과 관점은 실망을 넘어, 장애 문제를, 인권의 문제를 그렇게 본인들의 취사선택으로 손쉽게 표면적인 이미지로 알맹이 없이 소모하지 말라 비판해야 할 강력한 이유가 되고 있다. 일부 단체와 이해관계가 맞닿아 있는 장애인 부모니까 같은 여성이니까 일단 신뢰하자고 공개적으로 성명서까지 발표하고 있음에 단순 걱정과 안타까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장애인 당사자의 정체성 의미가 오염되는 건 참 슬프고 아픈 대목이다.
나와 같은 장애인 당사자나 장애인 부모들은 분명 작금의 차별금지법에 대해 큰 채무를 지고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두의 차별금지법을 만들어 내자는 주장이 많았다. 이에 장애계는 우리들의 혐오와 차별의 문제가 너무 심각하니 장애인차별금지법이라도 먼저 따로 만드는 것을 도와 달라며 인권단체들을 설득한 것으로 기억한다. 과거 인권단체에서 차별금지법 논의가 있었을 때, 인권과 차별의 문제는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동성애자를 배제하는데 장애인차별금지만 잘 될 리가 없고 여성과 난민을 혐오하는데 장애인만 통합하자는 말은 자체가 모순이니 말이다. 장애계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먼저’ 만들면 ‘나중에’ 모두의 차별금지법을 만들 때 장애인 단체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앞장서겠다 약속했었다. 나중에라도 모두의 차별금지법을 위해 함께 목소리를 높이겠다는 장애계는 다들 어디로 갔는지 그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역사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같은 장애인, 같은 여성, 또 아무리 진보적인 국회의원이더라도 그들의 권력들이 반드시 인권적이거나 정의롭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충분히 알 법도 한데, 같은 편이면 같은 편일수록 더 크게 비판하고 더 꼼꼼히 검증하고 더 철저히 그 채무를 갚아야 망하지 않고 오래 간다는 것을 모두 알 법도 한데. 늘 빚은 갚기 싫고 우리 편에게 더 엄격해지는 건 장애인이 비장애인 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인가.
작성자글. 김형수 장애학생지원네트워크 활동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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