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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치 게임톡할 수 있을 때까지

4차산업혁명과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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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장애인 게임 접근성 향상을 위한 보조기기 지원 사업' 우수사례발표 '다가치 게임톡' 단체사진
 
카카오게임즈 주최의 우수사례 발표회 ‘다가치 게임톡’에 초청 받았을 때 나는 여러모로 놀랐다. 작년에 처음 기획돼서 올해 두 번째로 진행된 ‘다가치 게임톡’은 장애인 게임 접근성 향상을 위한 보조기기 지원 사업의 성과와 우수사례를 공유하는 행사다. 매년 보조공학기기 박람회가 개최되는 대한민국이기는 하지만 게임 접근성이라니? 물론 게임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장애인으로서 이러한 시도는 두 손 들고 환영할 일임이 분명하다. 비록 내가 중증의 근육병으로 인해 두 팔을 거의 못 쓰지만 말이다.
 
카카오게임즈 본사에 마련된 행사장은 게임 회사 하면 상상해봄직한 온갖 요소가 실재해 눈을 즐겁게 했다. 카페 같은 분위기, 휠체어들이 오갈 수 있는 널찍한 공간, 행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그러나 자유롭게 움직이는 관계자들, 그리고 장애인들. 지원 사업에 선정돼 맞춤형 보조기기를 지원 받고 게임에 보다 가까이 접근하게 된 대상자와 그 가족 혹은 활동지원사들이 저마다의 형태와 속도로 행사장에 나타나는 광경은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재밌었다. 아마 비장애인이라면 절대로 쓰지 못할 이야기겠지만 진짜 재밌었다.
 
행사는 ‘다가치 게임톡’에 대한 소개로 시작되었다. 장애인 유관기관을 비롯한 게임 관련 단체, 장애거주시설, 뇌병변 비전센터, 그리고 경기도재활공학센터 이용자 등에 광범위한 홍보가 이뤄졌고, 서울과 경기의 지체장애인, 뇌병변장애인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았다. 평소 게임과 게임 접근성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특정 유형의 장애를 가지고 특정 지역에 거주하고 있어야지 신청이 가능한 구조였다. 그럼에도 신청의 열기는 뜨거웠다. 신청자의 자택과 경기도재활공학센터에서 이뤄진 두 차례의 평가를 통해 최종적으로 대상자로 선정된 약 서른 명이 최대 약 230여만 원 상당의 맞춤형 보조기기를 지원 받았으며 그것을 통해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도록 훈련도 받았다.
 
실제 대상자들 중 우수사례자로 뽑힌 4명의 대상자가 차례차례 발표하면서 행사가 이어졌다. 나와 같은 근육병이 있는 오십대 남성 A씨는 침대형 휠체어에 누운 채 마이크에 대고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스스로를 게이머라고 소개할 만큼 게임에 진심이었다. 원래도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분투해 왔을 그에게 지원사업이 지원한 것은 게임 접근성 향상만이 아니었다. 게임이라는 게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보니 게임을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전자기기를 더 잘 활용할 수 있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마우스로 총도 쏠 수 있지만 엑셀 편집도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A씨는 지원 받은 장비를 통해 게임뿐만 아니라 재택근무를 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받는다며 생활비 마련과 자립 생활에도 영향을 준 지원사업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표했다.
 
그다음으로는 십대 남성이었는데 유아 때 발생한 뇌출혈로 복합적인 장애가 생긴 탓에 어머니가 B씨 대신 발표를 했다. 발달장애와 심한 시각장애, 편마비 증세가 있는 아들을 학습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그의 모친은 스스로를 ‘나쁜 엄마‘라고 소개하며 B씨의 생애를 들려주었다. B씨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무서워하는지, 그리고 무엇에 욕심을 가지고 있는지 등. 거기 있는 모두는 순식간에 B씨에게 친근함을 가질 수밖에 없없다. B씨의 학습을 위해 게임으로까지 시야를 확장한 나쁜 엄마였지만 사실 그 자신은 게임에 대해 문외한이었다. 더더군다나 화려한 게임 이펙트를 보고 나면 발작을 해 하루 이틀씩 멍해지는 아들에게 도대체 어떻게 게임에 접근시키면 좋을지 고민이 깊었다. 게임을 좋아하긴 하는데, 그래도 역시 무리일까, 이게 다 나 좋다고 하는 일이 아닐까 자책도 하던 나쁜 엄마는 지원 사업을 통해 B씨가 좀 더 안전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게임이라는 게 생각보다는 희생되는 게 많은 매체라는 건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알 것이다. 손목이 덜 아프게, 목이 덜 아프게, 허리가 덜 아프게 하기 위해 사람들은 값비싼 게이밍용 의자와 키보드 마우스 같은 것들을 산다. 나쁜 엄마의 케이스는 우리가 장애인 지원 사업에 가지기 쉬운 선입견에 호통을 빽 친다.
 
세 번째 대상자 C씨 역시 십대이고, 여성이다. 뇌성마비로 발화가 안 돼 안구마우스로 쓴 글과 음성합성 기술로 구성한 발표는 정말 신박했다. 장애인체육 청소년선수로도 활동하고 있는 C씨는 게임을 좋아하는 아빠에게 영향을 받아 게임에 입문하게 되었다. 딸이 플레이할 수 있도록 게임기의 컨트롤러를 가지고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던 C씨의 아빠는 아예 전용 컨트롤러를 제작했다. C씨의 주먹보다 큰 조이스틱이 달린 컨트롤러는 그럼에도 경직이 심한 C씨에게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더는 아니었다. 지원사업을 통해 더는 부모님에게 의사표시하는 식으로 게임을 즐기지 않고 혼자서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된 C씨. 그에 대해 C씨의 부친은 재차 삼차 강조했다. 지원 사업이 단순히 딸이 혼자 게임을 할 수 있게 해주기만 한 게 아니라 딸이 혼자서 게임을 하는 동안 가족에게 시간을 준 것이기도 하다고 말이다. 그는 약간은 억누른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동안 여유가 없었다. 장애가 있는 딸을 중심으로 굴러가는 가정 속에서 부모는 자식을 위해 헌신하면서도 지쳐갈 수밖에 없다. 몸이 지치면 마음도 지치게 되고 결국 자존감 하락과 우울증으로 이어진다. 지원 사업은 한 가정을 살린 거라는 C씨의 부친에 말에 다른 대상자와 가족, 나와 내 가족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지막 대상자는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고 손도 제대로 쓸 수 없게 된 서른의 남성 D씨다. 그는 활동형 수동휠체어를 타고 노트북 앞에 앉아 헤드마우스를 사용해 능숙하게 프리젠테이션을 조작했다. 그는 사고 이후 자신이 사용해온 보조기기들을 설명하며 각각의 기기가 어땠는지를 이야기했다. 역시나 게임을 좋아하는 그는 사고 이후에도 보조기기를 사용해 스타크래프트라는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즐기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원 사업을 통해 지원 받은 헤드마우스를 사용해 그는 스타크래프트도 어느 정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현장에서 직접 카카오게임즈의 게임 '오딘'을 시연해 보이기도 했다.
 
△'다가치 게임톡' 행사 사진
 
사례 발표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모두가 모여서 이 지원 사업을 어떻게 더 나아지게 할 수 있을지 논의했다. 게임 접근성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들을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지원 사업의 아쉬웠던 점들이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행사 담당자는 의견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고 수첩에 받아적었다.
 
바로 옆자리에서 내가 보기로는 담당자님의 어깨가 점차 처져가는 듯했다. 사실 나도 담당자와 함께 대상자에게 질문을 해야 했지만, 자꾸만 지원 사업에 대해 뭔가를 묻거나 요구했다. 장애인 당사자로서 거의 평생을 게임을 하고 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시행착오를 겪어온 나로서는 대상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맞아, 맞아, 역시 이 부분은 부족하지 않아?’ 하면서 담당자를 향해 공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질의응답 시간 내내 지원 사업의 피드백 외에도 공감대가 형성된 이야기가 몇 가지 있었는데, 좀 아울러 말하자면 이런 사업을 통해 일종의 판이 깔렸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우수사례 대상자 모두가 평소에도 게임 접근성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저마다의 방식대로 분투해온 사람들이다. 그들이 그동안 느꼈던 진짜 장벽. 그것은 다름 아닌 완전한 무다. 사람이 뭔가 모르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는 일단 뭘 모르는지부터 확실히 알아야 하는 법이다. 스스로를 나쁜 엄마라고 칭한 B씨의 모친의 경우가 보여주듯, 그는 아들이 게임을 하게 해보려 했지만 게임 접근성은커녕 게임 자체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지원 사업은 보조기기 지원 이전에 게임 자체에 접근할 수 있는 안내서가 되어주었다. 이와는 반대로 C씨의 부친의 경우 게임은 물론이고 프로그래밍과 공학적 지식에도 훤했다. 아예 컨트롤러를 자체 제작하기도 했던 그였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딸의 상태에 잘 맞지 않았다. 만약 우리나라에도 장애인 게이머 커뮤니티가 있어서 이러한 경우들이 공유될 수 있다면 이 또한 게임 접근성으로 이어질 터였다.
 
또한, 보조기기에 대한 접근성 자체도 여전히 부족하다. 보조기기라는 게 워낙에 특수한지라 장애인조차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모른 채 살기 쉽다. 운 좋게 알게 돼도 저것이 정말 내 몸에 맞는지를 가늠하기란 또 다른 차원의 장벽이다. 보조기기를 수입해 판매하는 업체에서 제공하는 사진 몇 장과 설명 몇 줄로 몇십만 원에서 몇백 몇천에 달하는 보조기기를 덜컥 구매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공식 사이트의 영어로 된 상세 매뉴얼이나 해외 사용자들의 후기가 그나마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영어를 할 줄 알거나 최소한 번역 프트웨어를 아는 사람에게나 적용되는 이야기다. 만약 원 사업을 통해 깔릴 판에서 한국어 사용자들이 모여 경험과 보조기기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공유된다면 혹여 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한 사람이라도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 '다가치 게임톡'에서 사례발표 중인 대상자
 
담당자는 우리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실제로 고려 중이기도 하다고 했지만 공공기관 사업이라는 것의 특성상 그것이 어느 정도 실현 가능할지는 미지수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판을 꼭 카카오게임즈나 경기도재활공학센터에서 깔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이미 판은 깔리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게임 접근성은 그나마 사정이 괜찮은 장애인 소수의 사치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값비싸고 국내에서는 구할 수도 없는 보조기기들. 그중에서도 게임하는 데 쓰이는 장치들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장애에 대한 대한민국의 접근법 특성상 게임 접근성 또한 순전히 개인 혹은 가족의 사적인 문제일 뿐이었다. 장애인 등의 돌봄 문제가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라는 데 공감대가 생기기 시작한 요즘, ‘다가치 게임톡’의 출현은 그 자체로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다가치 게임톡’을 통해 게임 접근성을 높이는 법을 알게 된 대상자, 혹은 높이는 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비대상자들은 그들 하나하나가 대한민국의 게임 접근성 향상을 위한 판의 구성 요소가 될 것이다. 그들은 지원 받은 장치에 대한 경험을 공유할 것이고 그들과 비슷한 장애유형의 사람들은 해당 장치에 대해 전보다 더 많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대상자가 지원 받은 장치에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그 경험은 공유될 가치가 있으며, 그와는 별개로 대상자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또 다른 접근성 탐색의 여정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다가치 게임톡’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게임 접근성 향상을 위한 씨앗을 뿌려준다면 오년 뒤 십년 뒤 대한민국의 게임 접근성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흥분된다.
 
행사가 끝나고 여백 없이 꽉 찬 수첩을 내려다보는 담당자의 얼굴에는 정말이지 오만가지 감정이 담겨 있는 듯했다. 사실 접근성 향상을 위한 일이라는 게 당사자한테도 답 안 나오고 지난하기만 한 일이다. 그걸 이런 규모로 기획해 저렇게 다종다양한 사람들을 불러 모아 피드백을 모을 수 있다는 게 나는 너무나도 놀랍고 감사했다. 질의응답 막바지에 모두가 입을 모아 다시 한번 확인했듯이 ‘다가치 게임톡’은 단순히 보조기기만을 지원한 것이 아니다.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다가치 게임톡’이 대한민국의 장애인들과 그 가족들, 친구들 그 밖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다 같이 게임에 대해 톡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길, 염원하며 응원한다. 
작성자글. 최의택 작가 / 사진제공. 카카오게임즈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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