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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이 있는 삶' 그리고 '아직도 가야 할 길'

장애인 접근권

본문

▲ 1층이 있는 삶 소송 대리인단(왼쪽부터 김용혁 변호사, 이재근 변호사, 김영연 활동가, 이주언 변호사, 정다혜 변호사)
 
 
1층이 있는 삶?
이 여섯 글자는 누군가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 것이다.
도대체가 1층이 있는 삶이라니?
그럼 1층이 없는 삶도 있다는 말인가?
 
있다. 1층이 없는 삶은 오랫동안 있어 왔고, 지금도 많은 장애인들이 1층이 없는 삶을 살아간다.
 
‘1층이 있는 삶’을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2cm의 턱에 가로막히지 않고 누구든 자유롭게 어디든 갈 수 있는 삶’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부터 휠체어를 타고 바지런히도 쏘다녔던, 그러나 한 뼘도 안 되는 턱을 넘지 못하고 편의점과 카페 앞에서 숱하게 돌아서야 했던 나는 저 여섯 글자의 의미가 무엇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1층이 있는 삶 소송,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다
‘1층이 있는 삶’ 소송은 장애인단체 및 공익변호사 단체가 편의점(GS25), 카페(투썸플레이스), 호텔(신라호텔)과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장애인, 유아차 이용자, 노인 등 이동 약자들의 생활편의시설에 대한 접근권 보장을 위하여 제기한 소송이다. 장애인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장애인등편의증진법)과 그 시행령은 바닥면적 300㎡ 미만의 소규모 소매점을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의미 대상에서 제외하였는데, 이로 인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이 일상생활에서 편의점, 카페 등 소규모 공중이용시설에 접근권이 장기간 제한된 것에 대한 사업주와 국가의 책임을 묻는 것이었다.
 
2018년 소송이 시작된 후 1심과 2심은 장애인의 접근권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이 차별임을 인정하며,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과도하게 면제하는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이 위헌적 요소가 있음을 확인하면서도, 국가의 배상 책임에 대해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소규모 매장에 부여하지 않은 시행령을 국가가 장기간 개정하지 않은 점이 위법인지에 대하여 이례적으로 공개변론까지 열어 심리하였고 지난 2024년 12월, 원심을 파기하고, 국가가 장기간 편의시설 설치의무에 대한 시행령을 개정하지 않은 것이 위법하므로 원고들에게 각 1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하였다.
 
이는 장애인 접근권을 단순히 편의제공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존엄과 편등권을 실현하기 위한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국가의 입법 부작위에 따른 배상 책임을 명확히 한 첫 사례로서 큰 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도 이번 판결이 국가가 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가 되어, 향후 일상에서의 장애인 접근성을 개선하는 데 중요한 법적, 사회적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아직도 가야할 길, 남겨진 과제들
개인적으로는 현장에서 판결 선고를 들으며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기뻤다. 그러나 판결 후 한 달이 지난 지금,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우리의, 나의 현실을 돌아보면서 같은 질문을 반복하지 않을 수 없다.
 
‘1층이 있는 삶은 오는가?’
 
아니 질문을 바꾸어야겠다.
 
‘내 옆의 편의점에, 카페에 갈 수 있는가?’
 
쉽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
아니, 여전히 아니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장애인 등 편의시설 설치의무의 대상을 확장한 개정법령이 그 시행일인 2022.5.1. 이전에 설치된 건물에 대해서는 개정 전의 규정에 따르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즉, 개정 규정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소매점, 공중이용시설은 개정 전의 규정을 적용받는 결과 여전히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 현재 편의시설 설치 대상에서 제외되는 건물들의 수명이 상당히 길고, 전체 건물 중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건물들의 비중이 여전히 매우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와 같은 광범위한 접근성의 공백 상태가 앞으로도 장기간 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대법원도 보충의견을 통하여 이와 같은 점을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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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현존하는 건물 대부분이 개축될 장래의 어느 시점이 되어서 새 건물에 들어선 소규모 소매점 등에 장애인 편의시설이 설치될 때까지 장애인의 접근권은 제약된 상태에 머물게 된다. 장애인등편의증진법이 시행된 후 24년이 넘는 기간 동안 기존 건물에 설치된 수많은 소규모 소매점 등에 대하여 편의시설 설치의무가 면제됨으로써 광범위한 제한 상태가 이 사건 부칙조항을 통해 앞으로도 유지된다는 것은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다. 장애인등편의증진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권리협약이 장애인의 접근권이 실현되는 시점을 대부분의 건물이 개축되는 시점의 먼 미래로 유보하였다고는 결코 해석할 수 없다. 피고는 이 사건 개정조항과 이 사건 부칙조항을 개정함으로써 기존에 설치된 소규모 소매점 등에 대하여도 단계적으로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부과하여 장애인의 접근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여야 한다. 나아가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을 바닥면적 등 규모에 따라 일부로 제한하는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시행령의 접근 방식은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음도 언급하여 둔다.
 
 대법관 오경미, 대법관 신숙희의 보충의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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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질문을 해보겠다.
 
‘1층이 있는 삶은 오는가?’
 
반드시 올 것이다. 2018년에 시작하여 2024년 12월 마침내 벅찬 결과로 소송이 끝날 때까지 함께 한 여러 활동가님들, 변호사님들 그리고 이례적으로 공개변론까지 열어서 장애인 당사자들의 입장을 경청해주시고 의미있는 판결을 위하여 노력해주신 대법관님들까지. 그야말로 모든 분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였기에 이번 판결과 같은 의미 있는 전진이 있었다. 그 고마운 마음을 본 나는 우리가 결국 ‘1층이 있는 삶’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라 믿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1층이 있는 삶’이라는 완벽한, 그러나 아직은 손에 잡히지 않는 목표를 향해 나가는 과정에서 ‘지금 나와 내 옆의 휠체어를 탄 친구가 집 앞의 편의점에 들어갈 수 있는가’, ‘길 건너 거리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카페는 몇 개인가’에 대한 현실의 고민을 시의성 있게 해소해 나가려는 노력을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 기존 건물이 수명을 다하고, 부서지고, 새로 지어져서, 마침내 개정법령의 적용을 받아 경사로도, 엘리베이터도 설치되었을 때에, 나도 내 친구도 세상에 없다면, 그 친구가 편의점도, 카페도, 약국도, 병원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공개변론에서 정부 측의 대안으로 제시되었던 것처럼 그야말로 방에서 온라인쇼핑만 하다가 생을 마감한다면, 수십 년간 그런 폐쇄와 단절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면 ‘1층이 있는 삶’을 향한 우리의 노력은, 우리의 진심은 또한 얼마나 가슴 아픈가.
 
 
평범한 일상을 운에 맡기지 않아도 되는 삶
14살에 그야말로 아무런 이유 없이 척수에 생긴 혹 때문에 휠체어를 타게 되어 반년 만에 다시 돌아간 학교는 온통 갈 수 없는 곳 투성이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되자, 학교는 나의 교실을 어디로 정할지 논의했다. 당시는 연합고사 성적에 따라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비평준화 입시가 치러지던 시절이라 학교는 3학년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 조성에 공을 들였는데, 조용한 학습 환경을 위해서 3학년 교실은 학생들의 왕래와 소음이 적은 3층으로 배치하는 것이 관례였다. 문제는 휠체어를 타는 3학년 이재근 학생이 3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학교에 없는 상황에서, 이재근 학생이 속한 학급만 1층으로 배정할 것인가였다.
 
장시간 회의 끝에 나온 학교의 입장은 ‘안타깝지만 학생 한 명을 위해서 3학년 나머지 학생이 희생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나도 부모님도 별다른 이의를 하지는 않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그와 같은 생각이 당연했고, 1층 배정은 권리가 아닌 특혜를 바라는 것이었다. 담임선생님은 학급 친구들 중 네 명을 지원받아 ‘이재근 나르기 특공대’를 결성해주셨고, 친구들은 매일 등교와 하교 때에 맞춰 1층부터 3층까지, 3층에서 1층까지 나를 들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렸다. 졸업식 날 어머니는 ‘장한 어머니상’을 받으셨고, 1년 동안 3층까지 나를 들어주었던 고마운 친구들과 함께 기념사진도 남겼다. 당시엔 그것이 자랑이었고, 미담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찔하다. 어머니가 매일 내 등교를 시켜줄 수 없었다면, 담임선생님이 이재근 들기 특공대를 만들어주지 않으셨다면, 친구들이 나를 기꺼이 들어 옮겨주지 않았다면, 그 수백, 수천 번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중에 누구라도 실수로 계단에서 휠체어를 놓쳤다면, 이 모든 행운 중 한 가지라도 부족했다면 과연 내가 무사히 학교를 마칠 수 있었을까? 참 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호의, 겹겹이 겹쳐진 우연의 기반 위에 지금의 내가 두 휠체어 바퀴를 딛고 있다.
 
그러나 셀 수 없는 희생과 호의, 행운들이 겹치지 않더라도, 평범한 일상을 살 수 있어야 한다. 접근성은 그리고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편의시설은 그 출발점이자 전제조건이 된다. 바꾸어 말하면 접근성을 제한당하는 상황에서는 그 누구라도 평범한 일상조차 힘겹다. 학교에 다니고, 수업을 듣고, 직장에 나가서 일하는 교육과 근로의 기본적 장면부터, 커피를 마시며 친구와 수다를 떨고, 전시와 공연과 스포츠경기를 관람하는, 그렇게 나와 당신이 평범한 일상에서 어울리는 모든 일은 우선 두 바퀴로 그곳에 갈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세월이 흘러 집 앞의 건물이 허물어지고, 경사로와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반짝반짝한 새 건물이 지어질 30년, 50년 후까지 그 평범한 일상을 유보하여서는 안 된다. 그 평범한 일상을 당신은 잠시 유보하여 두고, 다음 세대가 혹은 그다음 세대가 그 이상을 누리도록 하자고 양보해서도 안 된다. 그 평범한 일상은 천천히 누리기로 하고, 당장은 누군가의 호의와 희생, 그리고 행운에 맡겨보자고 운에 기대서도 안 된다. 어쩌면 아무런 이유없이 불쑥 찾아오는 걷지 못한다는 불운이, 그렇게 ‘불운한 일생’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1층이 있는 삶’을 앞당겨 나가기 위한 노력들이 지금 시작되어야 한다.
 
보충의견 중 한 구절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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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에 대하여는 당사자인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면서 우리 사회가 또 다른 ‘투명인간의 도시’는 아닌지 항상 되돌아보아야 한다. ‘투명인간’의 도시에서는 투과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장애인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투명인간’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제도와 시스템은 투과 능력의 유무에 따라 장애와 비장애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이동권, 접근권이 제대로 보장된 사회에서라면 어디나 갈 수 있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은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닐 수도 있다. 장애인을 장애인으로 만드는 것은 그들을 배제한 채 비장애인이 그들 위주로 만든 세상인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의 모든 장애인이 차별 없이 권리를 보장받는 날이 앞당겨지기를 바라며 보충의견을 밝힌다.
 
대법관 오경미, 대법관 신숙희의 보충의견 中
작성자글. 이재근 법률사무소 리앤컴퍼니 변호사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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