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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의 의사소통

느림보 엄마의 성장 일기

본문

 
모든 자폐성 장애인이 말을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의 자폐인이 극히 제한된 언어를 사용하거나 무발화(의미가 있는 말을 하지 못하는 것) 상태로 평생을 산다. 우리 집 둘째 서희도 대부분의 의사소통을 몸짓과 표정 또는 억양으로 표현한다.
 
 
서희가 어른이 되어도 말을 못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슬프기보다는 걱정되는 마음이 더 컸다. 원하는 것을 표현하지 못하니, 남이 선택해 주는 대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수동적인 삶을 살게 될 까 봐. 그래서 어떻게 해야 서희가 선택하는 법을 배울까, 소통하는 법을 배울까를 계속 고민했다.
 
 
이런저런 시도를 해 보았지만, 서희에게 선택하기를 가르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희의 문제 가 아니라, 내가 너무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상대방의 특징을 알고 그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나는 서희의 특징도 자폐의 특징도 아무것도 모르고 비장애 아동에게나 적합한 방법을 그저 반복해서 서희에게도 적용하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말(구어)’이라는 의사소 통의 형태에 매여있어서, 발음은 커녕 발성도 안 되는 아이에게 평소 자주 요구하는 사물의 이름을 따라 말하게 하고, 그 이름을 말해서 요구하는 형태를 반복적으로 가르쳤다. 그러니 서희는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엄마 입 모양을 보면서 따라 하기 위해 다 쓰고, 무엇을 선택하거나 표현하는 것에는 전혀 주의를 기울일 수 없었을 것이다. 생각하면 지난 시간이 아까울 뿐이다.
 
 
 
▲   서희 의사소통 도구판
 
자폐가 있는 사람은 청각적인 정보보다 시각적인 정보를 처리하는 것이 훨씬 능숙하다. 그래서 무언가 가르칠 때도 말로 설명을 하는 것보다는 직접 시범을 보여주거나, 사진이나 그림 자료를 제시하면 의 미가 훨씬 잘 전달된다. 그리고 감각의 역치나 처리 과정도 비장애인과 다른 부분이 있어서, 눈으로 어 떤 동작을 본다고 해서 바로 내 몸으로 따라 하기 어 려운 경우도 많다. 그래서 자폐인이 어떤 행동의 시범을 본 것만으로 모방이 어렵다면, 물리적인 도움을 주어서 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후에 물리적인 도움을 점진적으로 제거하면, 점차 그 행 동을 자발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그림이나 사진을 음성과 동시에 제공하는 것 을 반복하면 나중에는 음성만 듣고도 원하는 것을 고를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미역국과 치킨 사진을 번갈아 보여주며, “미역국? 치킨?”이라고 물었을 때 “미~(미역국)”라고 대답을 한다면, 나중에는 음성만으로 “미역국? 치킨?” 물었을 때 “미~(미역국)”라고 대답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음성으로 대답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직접 사진을 만지거나 가리키는 것 이 대답이 된다.
 
 
비장애인들이 널리 쓰는 구어 의사소통을 보완하기 위해서 이렇게 그림이나 사진을 통해 의사소통 하기도 하고, 제스처를 통해 의사소통하기도 한다. 이렇게 구어 의사소통을 보완하거나 대체하는 의사 소통 방식을 보완대체의사소통(Augmentative and Alternative Communication, AAC)이라고 한다. 최 근에는 그림과 사진 위주의 AAC 앱이 개발되어 활 용되고 있고, 제스처를 통한 의사소통의 경우 국립 특수교육원에서 개발한 ‘손담’이 개발되어 장애자녀 부모지원 종합시스템 홈페이지를 접속하여 자료를 볼 수 있다. 서희와 나는 이 AAC 앱을 통해서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에 대해 소통할 수 있다. 주말에 중식당에서 배달로 점심을 때울 때, 서희에게 짜장면과 짬뽕 사진을 나오는 화면을 보여주면서 묻는다. 
 
 
 
▲  의사소통 도구판을 이용 중인 서희
 
 
 “서희야 너 뭐 먹을래?”
 
그러면 서희는 화면에 있는 짜장면 사진을 누른다. 앱에는 글자를 읽어주는 기능이 있어 휴대전화가 서희 대신 대답해준다.
 
 
“짜장면, 짜장면, 짜, 짜, 짜장면….”
 
 
한 번만 눌러도 되지만, 서희는 먹고 싶은 마음이 강 할수록 버튼을 여러 번 누른다^^;
 
 
놀러 가고 싶은 곳을 고르는 것도 마찬가지. 음식은 동기도 강하고 연습하는 횟수도 많다 보니 말로 대 답을 할 때도 많은데, 장소의 경우에는 아직 말로 대 답하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놀이터와 마트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서희야 나가자. 어디 갈래?” 라고 물으면 서희는 가고 싶은 곳을 손으로 콕 찍어 서 가르쳐 준다.
 
 
일상의 모든 부분을 사진이나 그림으로 소통하지는 못한다. 이미 나의 일상은 육아와 일 그리고 공부로 터지기 직전이다. 모든 일과에 대한 그림을 준비하려다가는 과로로 요절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처음에는 서희가 이미 알고 있는 간단하고 짧은 말로 설명을 해준다. 그래도 이해를 못 하는 부분은 다시 그림이나 사진을 보면서 설명해준다.
 
 
또, 서희의 일과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변하지 않는 일과는 서희가 다음 상황을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 게 해준다. 서희를 비롯한 많은 자폐인은 예측할 수 있는 환경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반대로 환경의 변 화가 심할 때는 불안감을 느끼고. 그래서 일과가 변 할 때는 다시 말로 설명을 하고, 이해하기 어려우면 그림을 이용해서 설명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부모인 나뿐 아니라, 서희가 자주 보는 치료사 선생님들, 특수학교 교사 선생님들, 활동지원 선생님들 도 함께 노력해 주신다. 그래서 서희는 점점 많은 것 들을 표현할 수 있는 아이로 자라고 있다. 나는 이렇게 성장하는 서희의 모습이 너무 자랑스러운데, 서희의 지난 시간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저 서희를 ‘말 못 하는 애’로만 생각할 때 너무 속상하다. 천천히 서희에게 말을 걸고 기다리면, 서희는 최선 을 다해 대답할 텐데….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서희와 가장 많이 소통하는 ‘나’의 존재가 사라졌을 때 서희가 얼마나 고립된 생활을 할지 몹시 걱정된다.
 
 
자폐성 장애인이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고 해서 의사소통의 욕구가 말을 하는 사람보다 적은 것은 아니다. 함께 어울려서 살고 싶어 하는 사회적 욕구를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가지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똑같이, 친구가 필요한 보통의 사람이다. 그러니 부디 말로 의사소통이 어려운 자폐인에게도 말을 걸어주고, 표현하는 것을 기다려 주고, 곁에 있 어 주면 좋겠다.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존재로 마음으로 받아들여 주면 좋겠다. 
작성자글과 사진. 이정화 자갈자갈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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