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가 왜 형벌인가요? > 현재 칼럼


장애가 왜 형벌인가요?

넷플릭스 <더 글로리>

본문

▲  (출처. 넷플릭스)
 
 
작년 연말부터 지금까지 방영된 드라마 중 가장 화젯거리인 드라마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넷플릭스의 <더 글로리>를 꼽을 것이다. 파트2가 공개 첫 주 만에 넷플릭스 비영어권 부문 1위를 차지하며, 관심과 화제, 찬사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쏟아지는 찬사만큼 이 드라마가 ‘좋은' 드라마인가? 더 정확히는 과연 ‘좋은’ 드라마는 무엇인가에 대해 계속 곱씹게 된다.
 
 
우선, 이렇게 많은 사람이 봤다는 것은 대중의 정서, 감성을 파고들고 공감할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파트2가 공개된 이후 현재까지 작품에 대한, 특히 메인 이야기인 학교폭력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드라마의 선한 영향력, 즉 담고 있는 메시지가 사회에 던진 의미가 컸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작가의 주제의식과 이를 표현하고 전하는 필력, 감독의 연출력, 배우들의 연기력 등만을 놓고 보면, <더 글로리>는 분명 ‘좋은’ 드라마, ‘웰 메이드(잘 만든)’ 드라마가 맞다.
 
 
그러나 ‘좋은’의 판단에는 객관적일 수 없는, 어떤 사람이, 어떤 관점에서, 무엇을 보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상대적인 기준들이 개입되지 않나? <더 글로리>는 정말 ‘좋은’ 드라마인가? 내게 묻는다면, 좋은 부분들을 가릴 만큼 실망스러운 부분이 컸던 드라마였다고 답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이 지면에서는 모두가 알고 공감하는 칭찬을 더 보태며 논점을 흐리느니, 실망스러운 점들을 중심으로 써보려 한다.
 
 
우선, 결말이다. <더 글로리> 제작발표회에서 김은숙 작가는 “피해자들은 현실적인 보상이 아닌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를 원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결국 가해자들의 반성과 사죄는 없었고, 단죄로 끝나버린다. 가해자들의 진심 어린 참회와 이로 인해 바뀐 그들의 삶을 비추지 않고, 그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이런 원시적이고 개인적인 복수가, 과연 피해자 ‘문동은’의, 현실의 ‘문동은’들의 상처받은 영혼을 진정으로 위로하고 구원했을까? 그저 분풀이가 아닌, 한발 더 나아간 피해자들의 진정한 ‘치유’와 ‘영광’에 대해 제작진 이 진중하게 고민했는지 의문이 드는 결말이었다.
 
 
이 권선징악의 스토리에서 가해자들이 받게 되는 형벌들은 또 어떠한가. ‘박연진’의 곁에서 모두를 떠나버리게 해 영혼을 파괴하고, ‘전재준’의 두 눈을 멀게 하며, 남의 고통에 크게 웃던 ‘최혜정’의 목소리를 빼앗아 간다. 맞춤형 형벌이라는 평들도 있지만, 결국 정신장애를 입히고, 시각장애를 입혀 죽이고, 언어장애를 입히는 등 죄의 대가를 신체 일부의 영구적 손상, 즉 장애를 입히는 것으로 물었다. 사회 전반에, 또 제작진의 내면에 뿌리내려진 ‘장애 = 형벌’, 업보라는 장애 혐오의 인식이 어김없이 녹아든 것이다.
 
 
▲  (출처. 넷플릭스)
 
 
또한 ‘문동은’의 첫 번째 가해자였던 엄마, 핏줄이라는 명분으로 ‘동은’에게 온갖 악행과 범죄를 저지른 엄마의 최후도, 정신장애로 진단받고 딸 ‘동은’에 의해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핏줄, 친족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형벌을 받았다며, 너도나도 당연해하고 통쾌해한다.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뉴스나 신문에서 봐 온 혈육에 의한 정신병원 감금 사건들이 연상되기도 했고, ‘제정신이면 저렇게까지는 못하지’라는 시선, 즉 정신장애에 대한 왜곡과 혐오를 부추길 수 있는 여지도 있었던 장면이라 우려스러웠다.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혐오와 분리, 격리를 당연시하는 것에 의식적 명분을 주는 수많은 드라마 속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이를 두고 대부분의 리뷰나 비평들은 그저 권선징악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그러나 권선징악이라 오히려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생각은 왜 못할까? 장애를 단순히 신체적 손상으로 보는, 의학적 관점에서 인식하는 과거에 머물면 장애는 결함, 결핍, 무능, 개인이 짊어져야 할 형벌 이 되는 것이다. <더 글로리>에서 장애가 징벌의 도구가 된 것 역시 이런 인식의 끈을 끊어내지 못한 것에서 기인한다.
 
 
이런 과거지향적인 인식들이 그동안 장애를 신체적 손상이라 한정 짓는 오류를 정당화시키며, 장애를 위치적, 사회적 차별로 진행되는 것, 상호관계성에서 인식해야 하는 대중의 의식 확장을 방해해 온 것은 아닐까? 대중문화의 영향력은 이미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커 졌다. 특히 영상콘텐츠 속 과거의 머문 세계관과 인식이, 시대적 흐름인 다름이나 다양성을 배척하면서, 다름에 대한, 장애에 대한 왜곡과 혐오를 비롯해, 배척과 배제, 분리 정책을 당연시 하는 사회적 차별의 일차적 가해를 줄 수 있다. 그래서 권선징악이라 일축하는 것에, 가해자들에게 내려진 형벌이 장애라는 것에, 실망하고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 (출처. 넷플릭스)
 
 
10년 전, 어느 신문사의 ‘장애아 키우는 형벌, 덜 수 있나요?’라는 기사 제목을 보고 충격을 받 았던 기억이 있다. 21세기에 이런 장애 혐오의 문장을 쓸 수 있는 기자의 인식도 충격이었지만, 이를 용납하고 올려준 데스크의 인식에 치기 떨렸고 그 의도가 무엇일까 의문이 들었다. 인터뷰한 부모들은 치료비부담과 교육 시설 부족 등을 이야기하고, 기사 내용도 이를 짚어주고 그래서 방치되는 상황과 환경을 이야기하며 정부의 지원과 정책, 제도 마련의 시급함을 알리는 기사였는데, 제목만 읽고 지나가는, 아니 내용까지 읽은 독자들에게도 결국 무엇이 남았을까? 부모의 어려움을 앞세우며 사회와 정치의 문제를 뒤로 숨겨, 결국 장애 당사의 당연한 권리와 의견을 우선해야 하고 존중받아야 하는 돌봄과 치료, 교육의 문제를 오도시킬 여지가 많다. 의도한 것이라고 했고, 아니라고 해도 심각하지 않지 않나?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자리인 미디어 즉 언론과 영상콘텐츠 속 이런 인식과 (당사자의 관점에서 좀 더 살피고 생각하지 않는) 이렇게 쉽게 쓰고, 쉽게 보여주는 행태가, 결국 대중의 인식을 한발도 앞으로 내딛지 못하도록 꽁꽁 묶어두고 있는 족쇄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이런 족쇄에 우리나라 대중문화 전반의 투자부터 제작현장, 제작진의 인식이 매몰 된 것은 아닌지.
 
 
한 예로 이 드라마에서도 "백설 공주는 일곱 난쟁이와도 살았어. 왜? 걔들은 광산에서 금을 캐니까~"라든가, "재준아 넌 모르잖아~ 알록달록한 세상" 같은 대사는, 아무리 캐릭터를 찰떡같이 설명하고, 상황에 찰떡인 표현이라도 쓰면 안 됐던 대사다. 의도치 않았더라도 실제 키가 작거나, 성장장애, 색을 구별하기 어려운 사람들 등에 대한 편견, 혐오, 조롱, 비하가 담겨 있고, 이를 조장하는 표현들이 아닌가. 무엇보다도 이런 표현들이 누군가에게는 비수일 수 있고, 상처를 건드리는 것일 수 있다.
 
 
‘장애는 나에게 무엇이냐’고 내게 묻는다면,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장애가 있었고, 장애를 가진 몸 그 자체가 나라고. 내가 힘들다고 불편하다고 느끼는 부분들 대부분이 나의 장애로 인해서 보다는 비장애인 중심에 맞춰지고 돌아가는 세상 때문이다. 교과서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사실이다. 그러니 당신들의 짐작만으로 형벌이라고, 할 수 없다고, 부담스럽다고 동정하고 예단하지 말라.
 
 
내가 생각하는 나의 장애와 다르게 바라보고 비추는 이런 드라마 속, 세상 속 시선과 모습들을 마주해야 하는 것, 이로 인해 마주하는 현실의 무게가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고통이고 형벌이라는 생각은 왜 못 하는지.
작성자글. 백수정 대중문화비평 활동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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